민주주의는 국민주권주의에 기반하는 시스템이다. 국민주권이란 헌법 제1조가 천명한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조항에 의해 민주주의의 의미로 확정된다.
헌법에 사법권이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법원 역시 헌법기관이다. 헌법재판소에 대해서는 법원의 제청에 의한 법률의 위헌 여부 심판과 탄핵 심판, 정당 해산 심판, 국가기관 상호 간의 권한쟁의 심판, 법률이 정하는 헌법소원에 관한 심판 등을 관장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러한 여러 기구와 제도적 장치가 있지만 결국 민주주의는 선거에 의해 정부를 구성하고 선출된 국민의 대표에 의해 골간이 유지되며 입법·행정·사법이라는 3부에 의해 얼개가 완성된다.
주지하다시피 입법부와 행정부는 선출된 권력이다. 대의제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핵심 장치이다. 이에 반해 사법부는 행정부처의 장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이 임명권을 갖는 임명직이다. 법관은 대법원장이 임명하지만 대법원장과 대법관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런 이유로 삼권분립에 의해 3부가 상호견제와 균형에 의해 유지되는 제도가 민주주의이지만 여기서 갈등이 발생한다. 사법부가 선출권력이 아니기 때문에 결정적 상황에서 국민주권주의와 충돌할 수 있다. 이른바 민주주의와 헌정주의의 첨예한 대립이 발생한다. 이는 결국 공동체 구성원들의 합의와 사회의 관습·관행에 의해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헌법적인 규제와 통제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1일의 조희대 대법원장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공직선거법 사건을 전례 없이 파기환송한 것은 대법원이 대선에 개입하고자 한 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을 낳기에 충분하다. 공직선거법 사건에서 1심까지 6개월, 2심 3개월, 결심 3개월의 기한이 지켜지지 않았기에 대법원 판결을 신속히 내린 것이라는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대선을 불과 한 달 앞두고 이미 정당에 의해 대통령 후보로 정해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여당과 사법부 사이의 갈등으로 비쳐지는 여러 상황이 노출되고 있다. 국정감사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의 증인 출석이 국감의 최대 이슈가 됐고, 대법관 증원과 법관 평가제도, 재판소원 등 이른바 '사법개혁'에 대해서 여당과 사법부 사이의 갈등이 노출되고 있다.
여당은 선출권력의 민주적 정당성을 앞세워 사법부를 밀어붙이는 형국이다. 이 과정에서 사법부에 대한 입법부의 우월적 위치 여부가 논쟁의 대상이다. 헌정주의에 대한 문제 제기는 사법부에 의해 국민참정권이나 국민주권주의가 침해받을 수 있다는 논리와 직결된다. 결국 비선출권력이 민주적 정당성을 담보하는 선출권력에 대해 생사여탈권을 행사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대법관 증원과 법관평가제 도입, '법원의 재판에 대해서도 헌법에 위배될 때 헌법소원을 가능'하게 할 수 있도록 헌법재판소법 68조를 개정하는 논의들에 대한 법리적 논쟁과는 별개의 영역이다. 헌재법 68조에서는 '법원의 재판'에 대해서는 헌법소원을 금지하고 있다.
주권자인 국민이 선거로서 구성한 입법부가 주권자를 대표하여 권력을 행사하지만 사법권력 역시 비록 선출권력이 아니라도 헌법의 제도적 디자인에 의해 권력에 대한 견제의 최후 보루로서 기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왜냐하면 헌법은 국민의 정치적 결단이기 때문이다.
지난 3월의 지귀연 판사의 윤석열 전 대통령 석방, 5월의 파기환송,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박성재 법무부 장관 구속영장 기각 등의 크고 작은 이유 등으로 여당의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깔려있다. 야당은 야당대로 여당에 대한 반감으로 사법개혁의 정당성마저 무조건 부정하고 있다. 대법관 증원은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의제임에도 이를 이 대통령의 재판과 연관시키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 아닐 수 없다.
여당이 선출권력의 우위를 내세우지만 야당 역시 선출권력이고, 선거를 통한 대의제는 국민 49%가 반대해도 51%가 찬성하면 정권을 획득하는 다수결에 기반하고 있다. 사법부의 판단 역시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판단한 것으로 의율될 뿐이다. 이렇듯 입법·행정·사법 모두 완결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당사자들의 자제와 합의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우선 여당은 개혁의 대상인 사법부의 의사를 충분히 존중하고, 사법부도 적극적으로 개혁에 대한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 야당은 개혁의 당위성을 인정하고 개혁에 대한 반대로만 일관해선 안 되며, 사법개혁을 이 대통령의 재판과 연결시키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 후보에 대한 혐의가 인지된 상태에서 선출된 대통령에 대한 정통성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야당의 자제가 필요하다.
조 대법원장 역시 5월의 파기환송에 대해 왜 전례 없이 전원합의체 회부 후 9일 만에 속전속결로 파기환송 했는지 등에 대한 절차적 의심을 해소할 만한 명쾌한 설명을 내놓아야 한다. 이러한 것들을 기반으로 민주주의와 헌정주의 충돌의 위기를 해소할 수 있을 때 민주주의는 지속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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