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대학 마지막 학기에 한 기업의 인사업무 담당자가 진행한 취업 특강에 참여한 적이 있다. 당시 강사는 대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은 자기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I자형 인재'(I-shaped Talent: 한 분야에 깊이 있는)에서 자기 분야의 전문성은 물론 다른 영역에서도 기본 이상의 지식을 갖춘 'T자형 인재'(T-shaped Talent: 깊이와 넓이를 모두 갖춘)로 변화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당시 ‘참 너무하다’라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지금보다 2007년이 더 나았던 것 같다. 요즘은 무려 '육각형 인재'란다.
육각형 인재란 <트렌드 코리아 2024>에서 소개된 신조어다. 육각형이 의미하는 것은 외모·성격·학력·자산·직업·집안으로 이 조건을 모두 고르게 갖춘 사람이 바로 육각형 인재라는 것이다. 이 여섯 가지 조건을 살펴보면 은수저·금수저로 출신 배경을 계급화한 '수저론'처럼 개인의 노력이나 선택이 아닌 타고난 조건을 높이 평가하는 특징을 지닌다. 물론 기업이 출신 배경과 자산을 기준으로 인재를 선발하지는 않겠지만, 육각형 인재가 트렌드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 넘어설 수 없는 계급의 벽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청년 세대가 계급화된 사회를 수용하도록 강요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청년의 삶이 고달프다: 역대 최악의 고용률
그렇다면 청년들이 처해 있는 현실을 한 번 자세히 살펴보자.
 
지난달 청년층의 고용률은 45.1%로 17개월 연속 하락했다.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수준이다. 만 15세부터 29세까지 청년의 고용률도 지난 3년간 하락 추세로 나타났다. 게다가 지난 2월 발표한 통계청의 '2월 고용 동향'에 따르면 일을 하거나 구직활동을 하지 않은 채 그냥 쉬는 상태를 뜻하는 '쉬었음 청년(일시 멈춤 청년)'은 50만 4,000명에 달했다. 이는 통계 작성 이래 최초로 50만 명을 돌파한 수치이다. 이 중 비자발적 이유로 쉬는 청년은 72%이며, 가장 큰 이유는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 쉰다'라는 응답이었다.
한국경제인협회에서 지난 4월 발표한 '미취업 청년 대상 일자리 인식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취업 청년의 76.4%는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다고 인식하고, 구직 실패의 주요 원인을 '일자리 부족'과 '채용구조의 경직성'으로 꼽았다. 청년의 희망 연봉은 평균 3468만 원이지만 이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더군다나 비정상적인 비정규직 일자리가 고착되고, 경력자를 선호하는 경향으로 새롭게 노동시장으로 진입하는 청년들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점점 더 두터워지는 고용 장벽은 평범한 청년들이 꿈을 키우며, 미래를 준비할 힘을 빼앗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 부족과 질 낮은 일자리의 강요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의 역량은 계속 늘어난다. 그에 반해 노동 현장의 변화는 매우 느리거나 진전이 없다. 
SPC 노동자 사망 사건, 동해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 사건 처럼 위험한 일에 내몰린 노동자들은 여전히 많고, 개선은 한없이 느리다. 모성보호휴가를 쓴다는 이유로 퇴직을 권고 받거나,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과 복리후생 격차는 지나치게 크고, 비정규직은 사회제도로 자리잡았다. 취업 준비기간이 장기화되면서 고용 시기가 늦어지고, 퇴사는 빨라져 실제 노동 가능 기간이 줄어들었다. 일을 시작하지 않은 청년도, 일하는 청년도 노후를 걱정해야 한다. 
양질의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미취업 청년을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과 낙인은 청년의 심리적 위축으로 귀결된다.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무책임한 격언은 불안정 노동이 구조화된 현실을 가리고, 질 낮은 일자리에 내몰린 청년의 고통을 개인의 미덕으로 치환한다.
청년 자살률 OECD 최상위, 사망 원인 1위는 '자살'
일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사회구조 속에서, 일하지 못하거나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청년의 마음이 괜찮을 리 없다. 
2024년 사망원인통계 결과 한국 청년의 자살률은 OECD 최상위 수준으로 10~30대 주요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다. 2024년 10만 명당 전체 자살률은 29.1명으로 201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남성 청년의 자살률은 약 38.3명으로 여성 청년의 자살률인 약 16.5명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40대도 예외가 아니다. 40대의 사망 원인에서도 자살이 암을 누르고 1위를 차지하였다. 
많은 전문가들이 40대 자살 증가에 대하여 경제적 부담과 중년기 위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한다. 많은 아동과 청소년, 청년, 중년이 자살을 선택한다. 배우고, 일하고, 살아가는 대신 죽음을 택하는 이 비극적 현실의 메시지를 우리는 무엇보다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청년'의 진정한 의미: 정책 당사자로서의 청년
한국 사회에서 '청년'이라는 단어 속에는 이미 구조적으로 취약한 그들의 위치가 내포되어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더 이상 청년이 자살이나 포기를 선택하지 않도록, 계급론에 매몰되어 세상을 비관하거나 의지를 잃지 않도록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국가가 청년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충분히 공급하고, 일터에서 누구나 안전하고 평등하게 일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그 시작이 될 것이다.
한국 사회에 팽배한 계급론을 타파하고, 스스로 선택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일하는 사람의 존엄을 보장하는 사회구조와 분위기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청년의 목소리가 주변부로 밀려나지 않도록 청년 관련 정책에 그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는 이들의 목소리를 신중하게 듣고, 그들의 요구를 귀하게 반영할 수 있는 정책 소통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청년 문제를 단순히 노동 시장이나 사회복지 체계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청년 스스로가 그려나갈 수 있다면 그들이 매몰되어 있는 계급론의 타파도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벼랑 끝의 청년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미래세대가 포기하지 않도록 지금, 우리가 그들의 목소리에 응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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