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제주도청이 서귀포시 가파도에 내년부터 220억 원을 들여서 'RE100 마을'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8월 말, 금한승 환경부 차관이 유엔사무총장 기후특보와 기후 위기 해법을 모색한다면서 '가파도 탄소중립섬(Carbon Free Island)과 같은 마을 단위 에너지자립 시범사업'을 소개했다고 한다.
9월 말에는 한중일 환경장관회의(TEMM26)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 산둥성 옌타이를 방문한 김성환 장관(당시 환경부)이 제주 서귀포시 가파도와 중국 산둥성의 창다오섬에 디젤발전기를 없애고 풍력과 태양광, 에너지저장장치(ESS), 히트펌프 만으로 전기와 열을 공급하는 '탄소제로섬'에 도전하는 내용의 '한-산둥 환경협력 강화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10월 24일에는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에너지자립섬 조성 현황을 점검하기 위해 직접 가파도를 방문하기도 했다. 기후에너지부는 '2035년 제주 탈탄소 녹색문명 실증을 향한 첫 단계'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이미 가파도는 제주도가 2012년 발표한 '카본프리 아일랜드 2030 by 제주' 계획의 1단계 대상이었다. 지난 2012년 5월, 당시 우근민 도지사가 2030년을 목표로 제주도 내 모든 전력을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공급하고, 전기차로 100% 전환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1단계 시범지역으로 선정한 가파도에 250㎾(킬로와트)급 풍력발전기 2기(총 500㎾)와 48가구에 각 3㎾씩 총 174㎾의 태양광 발전, 그리고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설치했고, 준공식도 개최했다.
하지만 각 장치 간의 연계성이 부족하고 설비 용량도 달라서 이후 추가 예산을 확보해 에너지 저장장치를 확대하기도 했다. 그렇게 투입된 예산이 146억 원이라고도 했다. 2016년에는 디젤 발전기를 멈추고 풍력, 태양광 발전기에서 생산한 청정 전기를 에너지 저장장치와 연계해 일주일간 공급하기도 하는 등 재생에너지가 상당한 양을 차지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현재 풍력발전기 2기는 철거된 상태이고, 디젤발전기가 매연을 내뿜으며 우렁차게 가동되고 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언론사, 제주도의원들은 다시 가파도에 과거보다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해 이름만 바꾼 채 유사한 사업을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래서 정부는 과거와는 다를 것이라고 해명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다.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와 함께 충분한 에너지저장장치(ESS)와 백업설비를 갖춰 전력공급 안정성을 강화하고, 과거와는 달리 히트펌프 보급 등 소비 단계까지 재생에너지 전환으로 확대하는 개념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기획 단계에서부터 유지관리를 염두에 두고 관련 예산을 확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전문 연구기관에 의뢰해 과거 사업 실패 원인을 찾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용역을 발주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속담처럼 과거의 실수를 나중에라도 바로잡으려는 시도를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여러 가지 아쉬움과 질문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가파도의 실험은 정말 실패했느냐는 질문에 답하려면, 무엇이 성공이고, 무엇이 실패인지에 관한 규정부터 해야 한다. 지금은 아니지만 과거에는 충분히 재생에너지로 생산 공급을 하던 시기가 있었고, 그 당시로서는 성공이라고 볼 수도 있는 면도 있지 않은지 따져봐야 한다. 또 에너지 설비의 물리적 내구연한과 함께, 특히 염분의 영향이 더 크고, 고장 발생 시 유지·보수 인력의 즉각적 투입이 어려운 섬 지방이라는 특성을 평가의 참고 요소로 포함해야 한다. 성공과 실패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단계가 있으므로 명확한 기준 없는 섣부른 판단은 위험하다.
나아가 연구개발(R/D)과 실증 사업은 이 세상에 필요하지만 아직은 없는 것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므로 무조건 성공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성공보다는 실패의 가능성이 더 크고, 오히려 실패를 거듭해 나가는 과정에서 성공의 실마리를 찾는 연속적인 과정이라고 봐야 한다. 상용 제품을 구매 설치해 가동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므로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야 한다.
따라서 지금 다시 추진하는 가파도 RE100 마을 사업이 과거의 실패 낙인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더욱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 섬의 에너지 자립을 위한 새로운 기술을 도입 적용하는 실증 사업 성격인지, 아니면 이미 충분히 연구 개발이 완료되어 시장에서 공급되고 있는 설비들을 최적의 조합으로 설계 배치하는 상용 보급 사업인지 방향 설정을 먼저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미 추진했던 사업을 반추해 과거의 경험을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한다. 단순히 신규사업을 위한 기존 사업의 검토 차원을 넘어서, 사업의 배경 및 전개 과정, 문제점의 발생과 대응 조치, 주민들의 반응과 의견, 시사점과 정책적·기술적 개선 방향, 그리고 관련된 기초 자료를 모두 수록하는 '백서'를 만들고 공개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제주도는 에너지 기본 조례에 '에너지 백서' 발간에 대한 근거를 두고 있고, 2020년에 첫 백서를 발간 한 적도 있으므로, 다시 두 번째 에너지 백서를 통해 가파도를 비롯해 2005년의 마라도, 그리고 2009년의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 등 대한민국 에너지 전환 1번지인 제주도에서 그간 추진해 왔던 재생에너지 실증 및 상용 보급 사업에 대한 꼼꼼한 기록과 분석 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재생에너지 개발 및 보급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과 생각을 경청하고 사회적 수용성 증진 방안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행정조직과 연구기관, 그리고 기업의 담당자들은 시간이 지나면 교체되고 그러한 과정에서 자료도 사라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므로, 지금부터라도 자료를 다시 수집하고 관계자의 증언을 기록해서 미래 시점에서 과거를 평가할 수 있는 기초 자료로 남겨야 한다. 과거를 제대로 돌아보지 않고, 미래로 나아가려 한다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비싼 수업료를 반복해서 낼 필요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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