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가 지난 9월 29일 2028년도 신입생 입학전형 주요사항을 발표하면서 지역균형전형을 30%까지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또 지금까지 시행하던 정시 지역균형전형을 폐지하고 그 정원을 수시모집으로 이전키로 했다. 지역균형전형은 지방 고교 출신 학생들을 일정 비율로 선발하는 제도로, 서울대는 이를 통해 지역 간 교육격차를 완화하고 비수도권 일반고 학생들에게 입학 기회를 부여해왔다. 현재 서울대 입시에서 지역균형전형은 수시와 정시를 합쳐 20% 수준에서 적용되고 있다. 이 방침이 그대로 시행되면 2028년도 입시에서 서울대는 수시전형만으로 30%의 지역균형 신입생을 선발하게 된다.
서울대의 이같은 변화가 시사하는 바는 작지 않다. 입학전형 방침을 발표하면서 밝히고 있다시피 "공공성과 다양성 실현, 그리고 학교 교육을 성실하게 이수한 우수 인재를 선발한다는 전형의 취지를 충실히 구현하기 위"한 전향적인 조치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학 서열체제의 정점에 있는 서울대가 교육 불평등을 완화하는 방향의 입시제도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수능 중심의 선발인 정시모집에서 지역균형전형을 배제함으로써 정시에서 유리한 수도권 특히 강남지역 출신의 이점을 상쇄시켰고 이같은 시정 의도는 지역균형전형에서 특목고를 제외한 데서도 드러난다.
서울대의 방침은 최근 들어 확대되고 있는 '지역인재전형'과 상통하고 또 상보적이다. 이 전형은 지역거점국립대, 특히 의치대 등 인기학과에 자교 권역 내 학생을 일정 비율 이상으로 선발하게 하여 지역의 인재유출을 막고 지역균형발전을 유도한다는 데 그 취지가 있다. 서울대는 수도권 소재 대학이지만 각 지역거점국립대와는 다른 '전국적'인 위상을 가진다. 따라서 서울대의 지역균형전형 확대는 지역 간 고교들 사이의 균형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전국형 지역인재전형'이라고 불릴만하다. 물론 서울대의 변화가 서울 중심의 대학서열체제를 완화하는 데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수도권의 여타 중심대학들, 즉 연고대 및 성대 등 이른바 사립 일류대들도 이 흐름에 동참한다면 지역적 균형과 계급적 다양성을 확보하는 효과는 뚜렷할 것이다.
한국은행의 '지역별 비례선발제'와의 연관
서울대의 지역균형전형 확대 방침은 작년 8월 서울대에서 열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과 한국은행의 공동 심포지엄에서 제기된 '지역별 비례선발제'를 떠올리게 한다. 이 심포지엄에서 한국은행 연구팀은 대학입시경쟁의 과열이 "저출산과 만혼, 수도권 인구집중과 서울 주택가격 상승" 등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유발해왔다고 보고 이에 대한 대처방안으로 지역별 비례선발제를 도입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한국은행은 △그동안의 입시경쟁이 사교육비 증가로 가계에 큰 부담을 주고 교육기회 불평등을 초래했고, △이 불평등이 소득계층과 거주지역에 따른 상위권대 진학률의 큰 차이로 이어졌으며, △그 결과 사회경제적 지위의 대물림 심화와 교육적 다양성 부족에 대한 우려를 불러 일으켜왔다는 점을 지적한다. 지역별 비례선발제는 서울의 상위권 대학들의 입학정원 대부분을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에 따라 선발하여 이 격차를 줄이자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행의 이 과감한 제안은 언론의 조명을 받기는 했지만 서울대를 비롯한 해당 대학들의 반대와 무관심으로 일과성 화젯거리에 그치고 말았다. 그 결과 이 제안에 담긴 한국사회의 핵심문제에 대한 인식의 중대성도 묻혀버렸다. 대학입시 과열과 서울 중심의 대학서열체제의 폐해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다른 곳도 아닌 일국의 통화정책을 관장하는 한국은행이 이 문제를 제기한 것부터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는 이 대학문제가 초래한 사회구조의 왜곡이 통화정책의 정상적인 운용조차 불가능하게 할 정도로 심각해져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국은행의 문제의식과 제안은 대학문제의 해결이 저출산과 지역소멸이라는 국가적 위기극복의 필수요건임을 환기한다.
사회통합전형의 확대조정이 해결책이다
한국은행의 지역별 비례선발제 제안은 서울 상위대학들의 자율적인 참여를 전제로 하고 있어 정책 차원과는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지역불균형을 완화하고 그와 연계된 계급불평등의 시정을 지향한다는 점에서는 적극적 시정조치(affirmative action)의 성격을 가진다. 사회적 하위층에 대학입시에서 특례를 적용해온 이 행정조치는 미국에서 50년 넘게 시행되면서 미국사회의 인종적 불평등을 시정하고 사회적 다양성을 확보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비유럽권에서도 브라질, 인도, 남아공 등은 대학진학에서 인종적 계급적 하위층에 대한 우대조치를 입법화해 상위권 대학에 많게는 50%까지의 쿼터를 부여하였다. 한국에서 사회통합전형으로 불리는 기회균형전형과 지역균형전형도 바로 이 정신에 입각한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입시제도를 도입하지 않더라도 현행 대입 전형제도 내에서 불평등에 대한 적극적 시정조치를 시행할 여지가 없지 않다. 지역균형전형과 기회균형전형은 각각 '지역'에 대한 보정과 '계급'에 대한 보정의 목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현행 제도에서 기회균형전형은 10% 이상을 의무화하고 있고, 지역균형전형은 10%를 권장하고 있다. 정책적으로 사회통합전형의 비율을 상향 조정하면 한국은행이 제안한 지역별 비례선발제의 효과를 구현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가령 비유럽권의 사례처럼 최대 50%까지 이 균형전형을 확대하면 현재 국가적 위기의 한 원인이 되어온 대학입시에서의 지역 불균형 및 계급 불평등에서 비롯되는 불공정성은 크게 완화될 것이다.
얼핏 보기에 사회통합전형을 전체 신입생의 절반 수준으로 대폭 확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듯도 보인다. 입시제도만큼 국민적 관심이 첨예하고 이해관계가 부딪치는 영역도 드물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통합전형을 확대해온 최근의 추세를 고려하면 변화의 조짐이 엿보인다. 서울대의 경우를 보면 그것이 더 분명해진다. 서울대는 현재 지역균형전형을 20%, 기회균형전형을 10-12% 수준에서 운영하고 있다. 2028년도 입시에서 지역균형전형을 30%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으므로 여기에 기회균형전형을 향후 10%만 더 늘리면 두 전형을 포괄하는 사회통합전형은 50%로 조정된다. 그런 조정이 이루어지면 서울대는 한국은행이 제안한 지역별 비례선발제를 실질적으로 달성하는 셈이 된다. 만약 수도권의 다른 상위권 대학들도 서울대 수준의 균형적 입시제도를 도입하게 된다면 대학서열체제가 심화시켜온 수도권 일극주의와 지역소멸의 위기도 상당 부분 개선될 것이다.
대학 입시제도를 손대는 일이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사안임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대학입시 과열로 나타난 대학문제와 교육 불평등이 국가위기의 주된 원인으로 드러난 국면에서 신정부는 이 문제의 중장기적인 해결을 추구해야 마땅하다. 빛의 혁명이 부과한 진정한 민주주의의 구현은 구조화된 교육 불평등의 해소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