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캄보디아에서 120억 원 규모의 사기 행각을 벌여 인터폴에 의해 적색수배가 내려진 한국 국적자가 주캄보디아 대한민국대사관을 찾았지만 대사관이 이에 대해 신고 등의 조치를 하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박정욱 당시 주캄보디아 대한민국 대사는 이 건에 대해 본부에 보고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2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외교부·통일부 국정감사에서 조국혁신당 김준형 의원은 외교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근거해 "박정욱 대사는 해당 건에 대해 본부에 전문을 보낸 적이 없다. 적색경보자를 놓아 줘서 사라지게 만들었던 것을 본부에 보고조차 안했다"고 밝혔다. 이날 감사에 출석한 윤주석 영사안전국장은 이에 대해 "맞다"며 사실을 확인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캄보디아를 거점으로 로맨스 스캠(연애를 빙자한 사기 행위)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조직 총책인 강 모씨는 지난해 11월 여권 연장을 위해 주캄보디아 대한민국대사관에 찾아왔다. 그런데 당시 캄보디아 대사관은 그가 인터폴 적색수배자인 것을 알고 있음에도 신고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 지난 22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현지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김현수 주캄보디아 대사대리는 "적색 수배 상태면 체포될 수 있으니 대사관은 (강 씨에게) 귀국 후 자수를 권고했다"며 "인터폴 적색수배는 즉각 체포 영장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인터폴에 바로 신고하지는 않았다고 답했다.
강 씨는 대사관을 빠져 나간 이후 귀국 및 자수를 하지 않았으며, 지난 2월 인터폴 공조로 현지 경찰에 체포됐다. 이후 석방됐으나 7월에 다시 구속됐다.
김 의원은 "이 사람(강 씨)이 이후에 범죄를 저지르면서 또 피해자가 생겼다. (캄보디아에서 한국으로 전세기편을 통해) 소환된 사람 중에 이 사람의 하수인"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박정욱 대사는 완전 직무유기한 것이고 ODA(공적개발원조)만 한 것"이라며 "한-캄보디아 간 영사협의회가 2009년에 있었는데 (한국인 대상 실종 신고가 늘어나는 데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이런 문제가 불거졌음에도 본부에 보고도 하지 않았다. 이 부분은 감사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박 대사는 캄보디아에서 해당 문제가 본격화됐던 2023년 대사로 부임했다. 외교관이 아닌 30년 경력의 산업부 소속 경제 부처 공무원이 임명됐는데, 부임 이후 ODA와 관련한 행보를 이어갔다.
1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박정욱 대사가 2023년 1월 12일 캄보디아 대사로 발령이 난 뒤에 거의 매달 ODA 관련한 회의를 한다. 분기별로 ODA 협의회를 주재를 하고 특임 공관장으로서 캄보디아 정부와도 ODA 관련한 협의를 계속한다. 예산이 늘었으니까"라며 박 대사의 관심이 ODA에 쏠려 있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같은 당의 차지호 의원 역시 이날 "각 대사관마다 해외 위난대응 도상훈련을 한다. 그 국가에서 나오는 특이한 상황이나 사고에 대비하기 위한 훈련인데 실시 내역을 보니 22년에는 교통사고 관련해서 했고 23년에는 정정 불안과 내전, 24년에는 교통사고에 대해 실시했다"며 "이건 (당시) 대사가 이 문제에 대해 전혀 인식이 없었다는 뜻"이라고 꼬집었다.
캄보디아 ODA와 관련해 검찰과 김건희특검은 통일교와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 등이 '건진법사'인 전성배씨를 통해 김건희 전 대표에게 고가 패션 브랜드의 가방과 사치품 등을 제공하고 캄보디아 ODA 사업을 청탁했는지 여부를 수사 중이다.
캄보디아 ODA 예산은 윤석열 정부가 캄보디아에 대외경제협력기금(Economic Development Cooperation Fund, EDCF)의 '민간협력전대차관' 방식으로 차관 지원 한도액을 큰 폭으로 늘리면서 증가됐는데, 민간협력전대차관은 EDCF가 제공하는 차관 중 하나다.
이 방식은 ODA 사업을 시행하는 정부나 민간 법인에 직접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국가의 금융기관에 자금을 지급한다. 이 때문에 실제 자금이 어떻게 집행됐는지 구체적인 내역을 파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민간협력전대차관은 1987년부터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기 직전인 2022년까지 단 한 차례만 예산으로 편성된 바 있다. 따라서 이같은 방식의 캄보디아 지원이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고, 이에 김건희 전 코바나컨텐츠 대표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캄보디아에서 온라인스캠범죄 관련 취업사기·감금 피해가 큰 폭으로 증가한 데 대해 조현 외교부 장관은 이날 감사에서 "저희 접근법에 근본적 한계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초국가적 조직범죄에 우리 국민이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연루되어 대규모로 유입되는 전례 없는 상황이 발생했지만, 외교부는 이러한 새로운 형태와 규모의 도전에 기존의 전통적 영사조력 시스템으로만 대응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 장관은 "주캄보디아대사관은 이러한 본질적 제약 속에서 고군분투하다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고 상황이 더욱 악화되기 전에 본부에서 대사관을 제대로 지원해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저희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라며 "대사관은 이미 문제가 발생한 이후의 대증적 조치만 취할 수 있었을 뿐인데, 원인이 되는 뿌리는 그대로 둔 채 증상만 제거하라고 하니 감당하기 어려웠던 측면이 있다. 나아가 이 사안은 외교부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인데도 범정부 차원의 대응을 견인하고자 하는 노력이 미흡했다"고 말했다.
그는 "외교부 차원의 국내 홍보나 한두 명 수준의 증원 노력을 넘어, 범정부 차원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다양한 정책 수단을 두루 활용할 수 있도록 견인하는 노력을 더욱 기울였어야 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조 장관은 "'코리아 전담반'을 11월 중으로 가동하고 주캄보디아대사관의 인프라를 확충하며 재외국민 보호 시스템을 개선해 나갈 것"이라며 "11월 초 경찰 2명을 추가 파견하고, 행정직원을 신규 채용할 예정이며, 현지 교민을 영사협력원으로 추가 선발할 예정"이라고 향후 계획을 설명했다.
이어 그는 "아울러, 내년부터 공관 정원에 경찰주재관 1명과 해외안전영사 3명을 추가하기 위해서도 유관 부처와 적극 협의 중"이라고 덧붙였다.
조 장관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 캄보디아 측의 적극적인 협조를 지속 견인하는 것"이라며 "외교부는 캄보디아와 인근 지역의 치안·수사 분야 역량 강화를 위한 ODA 지원을 검토해 나갈 것이며, 상황 진전 여부를 보아가며 캄보디아에 대한 여행경보 재조정 필요성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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