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교육학' 그리고 인권과 평화의 길을 열어간 이오덕

[기고] 이오덕 선생 탄생 백 돌을 기념하며

올해로 이오덕 선생님이 태어나신 백 돌이 된다. 내가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공부하겠다고 결심한 데에는 이오덕 선생님의 영향이 크다. 1970년대 후반에 학부 학생이었던 나는 동료들과 함께 야간학교를 만들고 공장에서 노동하는 청소년들을 가르쳤다. 이어서 가난한 지역의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시작했다. 수도권에서 흔히 달동네라고 부르는 지역의 아이들은 부모가 일하거나 무심한 탓에 많이들 길거리에 나앉아 있었다. 우리는 그 아이들에게 교육과 문화의 손길이 일찍이 닿으면 불평등을 넘어서는 힘을 가지게 되리라고 믿고, 야간보육학교에서 교사를 양성해서 유아원을 세웠다. 교사와 아이들과 함께 교육과 돌봄의 올바른 길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때에는 교육학 교재도 다채롭지 못했으나 교육의 길을 찾는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책은 거의 없었다. 나는 학부 전공이 교육학이 아니었고, 함께 일하는 동료 가운데 교육학을 전공하는 학생도 없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돌려가며 읽은 책이 이오덕 선생님의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1979년 출판) 그리고 파울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억눌린 자를 위한 교육>(1970년 영문판 출판)이다. 앞의 책은 농촌 초등학생들이 자신들의 삶을 이야기한 글을 선생님이 모아서 펴낸 책이다. 뒤의 책은 프레이리가 1960년대에 칠레의 농부들에게 글을 가르치면서 현실 상황을 놓고 대화한 경험을 엮은 책이다. 한 책은 앞으로 농부가 될 아이들의 글이고, 다른 책은 이미 농부가 된 어른들의 이야기이다. 나는 두 책을 같은 시기에 읽으면서 이오덕 선생님과 글쓰기를 한 아이들이 프레이리와 대화하는 농부들을 만나는 상상을 했다.

이오덕 선생님은 책 머리말에서 "어떤 글이라도 자기 자신을 찾아가지는 일에 도움을 준다는 데서만 뜻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상의 조그만 일이라도 자기 자신의 일을 자기의 말로 쓰고 싶어 하게 되면 훌륭한 지도가 이뤄질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신다. 아이들의 글은 글짓기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정직하게 쓴 글, 사람답게 느끼고 생각하고 행한 것을 쓴 글"이라는 글쓰기가 되어야 한다고 보태신다. 글쓰기는 자신과 대화하며 자신을 이해하는 일이고, 다른 사람과 대화해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다. 글쓰기는 자신의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이 살아갈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선생님의 도움말을 따르면, 교사는 글쓰기를 지도하면서 사투리를 표준말로 고치지 않고, 문법도 내용도 고치지 않아야 한다. 교사는 적게 가르치고 많이 격려하는 게 좋다. 그러면 아이들은 투박한 사투리, 곤궁한 형편, 힘든 노동도 자신의 한 부분으로 여기며 당당하게 성장할 수 있다. 아이들은 자신을 흐뭇하게 여기면서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삶의 조건을 바꾸는 힘을 기른다.

삶이 고단하더라도 글쓰기 덕분에 어느 정도의 희망과 긍지를 가지고 자신의 삶을 꾸려간다면 그건 놀라운 일이다. 교육은 자기를 이해하고 자기를 형성하는 '자기교육'이라는 믿음은 오래되었다. 그러나 상류 계층에게만 들어맞는다고 여겨진 그런 교육을 선생님은 농촌의 초등학교 아이들과 함께 멋지게 펼치셨다. 글쓰기는 교사와 학생이 마음만 먹으면 어쨌든 시도할 수 있고, 그림 그리기, 토론하기, 연극하기로 다채롭게 이을 수 있는 활동이다. 글쓰기는 다른 사람을 누르고 우월성을 뽐내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탁월성을 기르는 일이다. 글쓰기는 교육과 성장을 이끄는 중심 활동이 될 수 있다. 선생님은 '글쓰기 교육학'이라는 새로운 교육학을 창조하는 듯하다.

프레이리는 착취에 시달리는 농부들이 자신들을 억압하는 체제와 억압 방법을 발견하는 '문제제기식 교육'을 제안한다. 프레이리의 교육학은 학생들이 자신의 의견을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면서 자기를 성찰하고 억압을 비판하는 힘을 기르면 삶의 주체로 성장한다고 믿는다. 그런 뜻에서 프레이리의 교육학을 '목소리 교육학' 혹은 '비판 교육학'이라고 부른다. '글쓰기 교육학'은 '목소리 교육학'과 '비판 교육학'과 맞닿아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1970년대와 1980년대 무렵 세계 곳곳에서 글쓰기와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을 발견하고 긍정하며, 의식을 향상하고 연대하는 운동이 번져가고 있었다. 노동자, 여성, 유색인, 식민지 주민, 장애인, 비주류 집단 같이 억눌려서 말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글로 쓰고 목소리를 내며 힘을 모으게 된 것이다. 불리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생활하면서 그들의 관점으로 그들의 선택과 역량을 이해하는 노력도 늘어났다. 폴 윌리스의 책인 <노동을 배우기-노동계급의 아이들은 어떻게 해서 노동을 직업으로 삼게 되는가>(1977년 출판)도 그 무렵에 충격을 준 책이다. 한국에서는 '학교와 계급 재생산'이라는 제목으로 펴냈다. 글쓰기와 대화 같은 활동은 지금도 우리 사회뿐 아니라 지구 곳곳에서 개인, 집단, 사회 성장의 버팀목 구실을 하고 있다. 글쓰기 운동을 우리 사회와 더불어서 지구 차원의 운동으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글쓰기 교육학 그리고 목소리 교육학과 비판 교육학이 서로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고 이해한다.

나는 이오덕 선생님을 모시고 어린이 권리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일한 적이 있다. 1995년에 '유엔 아동권리협약'을 우리 사회에서 널리 실천하려고 15개의 시민단체가 <어린이·청소년권리연대회의>를 만들었다. 그때에는 어린이단체의 수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내가 일하고 있는 <공동육아연구회>(현재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와 더불어서 <어린이도서연구회>가 참여했고 <인권운동사랑방>이 실무단체로 수고했다. 이오덕 선생님을 공동대표의 한 분으로 모시고, 내가 실무대표를 맡았다. <연대회의>는 5월에 '우리 아이들 어떻게 자라나'라는 연재를 <중앙일보>와 기획했고, 마지막 회로 이야기 자리를 만들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이오덕 선생님을 처음으로 뵙게 되었다. 선생님은 꼭 필요한 말씀만 하셨는데, 그게 기억에 남는다. 역시 글쓰기와 성장을 연결해서 "어린이는 무엇보다 자유롭게 말하고, 쓰고, 그릴 수 있어야 제대로 자랄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어린이권리조약을 지키지 않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란 걸 우리 모두 깨달아야 합니다. 그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라고 꾸짖으셨다.

1996년 6월에 <공동육아연구원>과 <한겨레신문>이 제대로 먹지 못해서 병들고 죽어가는 북녘 아이들을 돕는 운동을 시작하면서 이오덕 선생님을 권정생 선생님과 함께 자문위원으로 모셨다. 그리고 북과 협력하여 어린이병원과 콩우유공장을 북에 세웠다. 남녘 아이들이 북녘 동무들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그림편지 그리는 일을 펼쳤다. <남북어린이어깨동무>라는 평화시민단체를 만들었고, 그림편지를 북녘 아이들에게 전달하고 답장을 받아오는 일을 이어갔다. 남녘 어린이들이 세 번에 걸쳐 북녘을 가서 동무들과 만나고 평화를 다짐하기도 했다. 그동안 모은 그림을 오는 11월 중순에 미국 뉴욕에 있는 <유엔본부>에서 전시한다.

이오덕 선생님은 교육운동과 더불어서 아동권리와 교사권리 그리고 한반도 평화를 열어가는 길에 기꺼이 동행했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해 보여도 때로는 손해와 처벌을 각오하고 손가락질을 견뎌야 갈 수 있는 길이다. 사실 선생님은 독재 정권의 미움을 받아서 한동안 학교를 떠나야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도 우리말을 바로 쓰자고 말하면 '꼰대'라고 빈정대고, 북녘과 대화하거나 어린이 권리를 보장하자고 말하면 '빨갱이'라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많다. 선생님은 어린이들이 자유롭고 지혜롭게 성장하려면 어른들이 성장의 조건을 만들어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시고 그 책임을 실천하는 일에 앞장섰다. 수많은 물방울이 모여야 강을 만들고 바다로 흘러가지만 처음 떨어지는 물방울이 가장 용감하다고 하지 않던가? 이제 우리가 용기를 내어야 한다. 이오덕 선생님이 나신 100돌을 축하하는 모임이 11월 14일 오후 3시부터 서울시의회에서 열린다. 부디 많은 분이 참여하시기를 소망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