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성남 '야구 사랑', 지방선거 노림수 깔았나?

[이종성의 스포츠 읽기] 전통의 축구 도시들은 어쩌다 야구 도시를 꿈꾸게 됐나

2025년 한국 스포츠에서 나타난 하나의 흥미로운 변화는 지방자치단체의 야구에 대한 관심이 급상승했다는 점이다.

울산시는 지자체 최초로 프로야구 2군 시민야구단을 창단했고, 성남시는 축구와 육상 경기가 펼쳐지는 성남 종합운동장을 야구 전용구장으로 바꿔 2028년부터 프로야구 경기를 유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전북발전연합회도 "전북이 11번째 구단을 유치해 지역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나섰다.

이 같은 지자체들의 경쟁적인 야구 사랑 탓에 전통의 '축구 도시'가 '야구 도시'로 변모할 가능성이 생겨났다. 프로축구팀 울산HD와 성남FC의 연고 도시인 울산시와 성남시가 그 대표주자다. 그렇다면 왜 이 축구 도시들은 야구 도시로 변신하려는 걸까?

신상진 성남시장이 야구를 선택한 이유

기본적으로 울산시와 성남시가 야구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올해 1200만 관중 시대를 연 프로야구의 폭발적인 인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내년 6월 지방선거가 실시된다는 점도 고려한 것이다. 정치인들 입장에선 축구보다 인기가 크고 지역 경제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야구가 선거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 셈이다.

21세기에 열린 지방선거에서는 그동안 야구보다 축구가 중요했다. K리그에는 지자체가 운영하는 시도민구단이 많기 때문이었다. 현재 K리그 1(1부리그)에는 5개 시민구단이 있고 K리그 2(2부리그)에는 10개의 시도민구단이 존재한다. 내년 시즌 3개 시도민구단이 K리그 2에 합류하면 K리그 전체의 시도민구단 숫자는 18개로 늘어난다.

이 팀들이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K리그를 '세금 리그'라고 비판하지만, 적지 않은 시도민 축구 팀의 구단주로 있는 지자체장 입장에서 시도민구단 운영은 정치적으로 이익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신상진 성남시장(국민의힘)의 입장은 달랐다. 그는 지난 2022년 시민구단 성남FC를 민간 기업에 매각하는 것을 고려해 봐야 한다고 밝혔다. 매년 100억 원 씩 성남시가 성남FC를 위해 돈을 쓰는데, 성적도 안 좋을뿐더러 이재명 대통령의 성남시장 시절 성남FC 스폰서십 비리 의혹이 제기되면서 구단 이미지마저 악화된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그해에 성남FC는 2부리그로 강등됐다. 신상진 시장은 2023년에는 성남FC의 매각 의사를 철회했다. 대신 구단이 일심 단결해 바닥에서 치고 올라가는 한편의 드라마를 만들자고 했다. 하지만 성남FC는 아직까지 1부리그 승격을 하지 못하고 있다. K리그를 7번이나 제패했던 성남FC의 전신인 성남 일화가 만들었던 영광의 시대는 이제 성남시에서는 옛말이 됐다.

그러자 관심을 야구로 옮겼다. 성남시는 올해 3월 야구전용구장 건립 계획을 발표했고 KBO(한국야구위원회)와 프로야구 경기 개최를 위한 성남시 야구전용구장 조성 MOU(양해각서)도 체결했다.

마침 성남시의 야구장 건립 계획이 발표된 후 프로야구 NC다이노스의 홈구장인 창원NC파크에서 구조물이 떨어져 관중 1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NC다이노스와 창원시는 이 사고에 대한 책임 소재를 놓고 공방을 이어갔다. 급기야 NC다이노스는 연고지 이전을 시사했다.

이 때 NC다이노스가 성남시로 연고지를 옮길 것이라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다급해진 창원시는 NC다이노스 요구를 수용했다. 창원시는 경기장 시설 개선 등에 향후 20년 간 1346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창원시의 제안으로 NC다이노스의 연고지 이전은 수면 아래로 내려간 상황이다.

그럼에도 성남시는 2028년부터 프로야구 경기 유치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신축 예정인 야구장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려면 야구팀이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성남시는 신생 구단 창단이나 기존 구단의 연고지 이전 유치를 목표로 할 수밖에 없다.

성남 일화를 시민구단 성남FC로 바꾼 건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의 업적으로 남아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재선을 노릴 것으로 보이는 신상진 시장에게도 프로야구 팀 유치는 중요한 치적이 될 수 있다. 단순한 야구장 건립이 아니라 경제적 운영을 할 수 있는 구체적 계획에는 연고 야구팀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 신상진 성남시장과 허구연 KBO 총재가 경기 성남시 성남시청에서 야구 전용구장 건립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후 기념 촬영하고 있다. ⓒ성남시

울산시는 왜 '꿀잼도시' 아이템으로 야구를 택했나

울산시는 지난 21일 프로야구 2군 시민야구단 창단을 공식화 했다. 이는 전국 지자체 가운데 최초의 시민야구단 창단이다. 이에 따라 울산 시민야구단은 내년부터 프로야구 2군 리그인 퓨처스리그에 참여하게 된다.

당초 울산시는 1군 프로야구단 창단을 계획했다. 하지만 1군 프로야구단을 운영하려면 한 해에 예산이 1000억 원 정도 소요된다. 더욱이 다른 프로야구 구단들의 동의를 얻어야 1군 리그에 참여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울산시는 2군 리그에 합류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울산 시민야구단의 한 해 예산은 50억 원 이상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시의 시민야구단 창단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롯데 자이언츠가 울산 문수야구장을 제2 홈구장으로 사용해 왔지만, 최근 3년 간 울산에서 치러진 1군 홈경기는 단 12경기에 그쳤다.

여기에 NC다이노스 효과도 있었다. NC다이노스는 올 시즌 관중 사망 사고 이후 안전점검이 필요했던 홈구장 창원NC파크를 잠시 떠나 울산 문수야구장에서 홈 경기를 펼쳤다. 프로야구 관람에 굶주렸던 울산 야구팬들에게 NC다이노스의 울산 홈 경기는 가뭄 끝에 단비였다.

이와 함께 전국의 특별시와 광역시 가운데 프로야구 팀이 없는 곳은 울산이 유일하다는 점도 시민야구단 창단의 필요성을 제공했다.

김두겸 울산시장은 "프로야구 1200만 관중 시대에 울산도 이제 변방이 아닌 중심으로 나서야 한다"며 "시민야구단 창단을 계기로 '꿀잼도시' 울산 브랜드 가치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야구에 관해선 전향적으로 접근한 김 시장과 울산시는 정작 전통적인 울산의 상징 스포츠인 축구를 정치 도구화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우선 올해 울산HD의 홈구장인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의 3층 관중석 색깔이 빨간색으로 교체됐다. 울산HD를 상징하는 컬러가 푸른색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결정이었다.

구단 측은 좌석이 붉은색이 될 경우 팬들의 반대가 우려된다는 입장을 전달했지만, 울산시의 산하기관인 울산시설공단은 이를 고려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김두겸 울산시장의 소속 정당인 국민의힘의 컬러가 빨간색이라 좌석의 색깔도 이렇게 바뀐 게 아니냐는 비난이 잇따랐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미 2024년 울산시가 운영하는 울산 시민축구단의 유니폼 색상도 푸른색에서 붉은색으로 교체됐다. 갑작스러운 유니폼 색상 변경에 구단주인 김두겸 시장의 정치적 노림수가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던 이유다.

물론 성남시가 추진 중인 프로야구 경기 개최나 울산시의 시민야구단 창단은 의미가 있다. 국민 스포츠로 확고하게 자리잡은 프로야구 경기를 시민들이 관람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복지이기 때문이다.

울산시의 시민야구단은 더 많은 야구 유망주들이 프로 무대에서 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프로야구 경기가 열리는 날 주변 상권이 활성화 될 개연성도 있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성남시나 울산시의 야구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그저 지방선거를 앞두고 재선을 노리는 시장들의 정치적 셈법에 지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성남시와 울산시가 야구를 정치적 도구가 아닌 도시에 새로운 활력을 만들고 경제 활성화를 위한 촉매제로 활용할 수 있을지 유심히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울산 문수야구장 ⓒ울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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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성

<프레시안> 스포츠 전문기자 시절, 스포츠와 사회·문화·역사가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구조에 주목했던 언론인 출신 학자다. 이후 축구의 본고장 영국으로 건너가 드몽포트대학교에서 '남북한 축구사'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학교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야구의 나라>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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