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결혼 서약 문구 중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가 있다. 영원한 사랑의 맹세이자 한 번 성립된 결혼은 그만큼 깨기 어렵다는 사회 통념이 반영된 구절이기도 하다.
이혼이 제도적으로 보장된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문구는 상징적인 것에 불과하지만, 과거 게르만족은 이혼을 위해 이 구절을 말 그대로 실행해야 했다. 부부 쌍방이 무기를 들고 결투를 벌인 것이다.
책 <사랑으로 읽는 세계사>(에드워드 브룩 히칭 지음·신솔잎 옮김·현대지성 펴냄·328쪽)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인류 역사 속 사랑, 성, 결혼 관련 50개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다룬다. 고대 신화부터 중세의 관습, 근현대 문명이 연애에 미친 영향까지 폭넓은 소재에 조각과 그림, 삽화 등을 함께 엮었다.
앞선 이야기로 돌아가면, 15~16세기 독일 검술 대가들은 싸움 교본에서 부부 간 결투 방법을 빼놓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부부가 합의에 이르거나 이혼을 발효할 마땅한 법적 장치가 없는 경우" 게르만족 관례에 따라 "결투 재판"을 벌인 데서 기인했다.
이들 교본엔 부부 결투 장면이 그림으로 생생히 묘사돼 있는데 신체적 우위에 있는 남성은 형평성을 위해 허리 깊이의 구덩이에 들어가 아내에 대항한다. 그림을 보면 아내는 불리한 위치에서 시작한 남편의 목을 조르고 헤드록을 걸고 돌을 넣은 천 같은 것을 휘두르며 남편을 처단하려 하지만 남편도 그냥 당하진 않는다. 남편은 구덩이에서 칼을 휘둘러 아내의 종아리를 베고 쓰러진 아내를 찌르려 시도한다. 결말은 "두 사람이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진 채로 숨이 끊어진", 그야말로 죽어서야 갈라설 수 있었던 부부다.
물론 죽어서까지 사랑한 부부도 있었다. 1370년대에 사망한 영국의 아룬델 백작 부부 석관엔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있는 조각이 새겨져 있다. 1956년 영국 시인 필립 라킨은 이 석관에 감동을 받아 "우리 중 살아남는 것은 사랑"이라는 구절로 끝나는 '아룬델 무덤'이라는 제목의 시를 쓰기도 했다. 1880년대 사망한 네덜란드 부부는 서로 다른 종교 탓에 함께 묻히지 못했음에도 각 묘지의 담장을 넘어 손을 맞잡고 있는 듯한 비석을 세워 죽음 후에도 함께 하길 기원했다.
책은 1300년대 포르투갈을 다스린 페드루 1세는 이를 넘어 죽은 여성을 왕비로 올렸다고 제시했다. 왕자 시절 아내가 죽은 뒤 불륜 관계였던 시녀 이네스 드카스트루를 비로 맞겠다고 부친에 간청했지만 부친은 오히려 이네스 살해를 명했고, 이후 왕이 된 페드루 1세는 그와 비밀리에 결혼했다며 이미 죽은 이네스의 시체를 파내 왕비 대관식을 치렀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대부터 대체로 발견되는 흔적은, '사랑 따로, 결혼 따로'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도 "심장이 터져 죽을 것만 같다"는 사랑 노래가 있었지만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에서도 결혼은 "기본적으로 사회질서를 공고히 하고 출산을 보장하는 경제적 합의"였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에 따라 가족이 결혼 상대를 찾아주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혼전 계약서도 작성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의 남성 동성 연인들과 그들이 여성과 꾸린 별도의 가정도 사랑과 결혼은 별개라는 시각을 반영한다.
그렇다고 간통을 처벌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함무라비 법전에도 간통죄가 명시돼 있다. 제우스의 혼외 관계가 묘사된 신화를 가진 고대 그리스에도 간통죄로 인한 처벌이 있었다고 한다. 비록 여성은 무겁게, 남성은 가볍게 처벌돼 적용 수위가 성별에 따라 달랐지만 말이다.
모스 부호로 밀어 나누고 구혼 광고…근대 문명 속 연인들
근대 문명 발달은 연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현재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는 사적인 대화가 너무나 쉽게 가능하지만 휴대폰이 없던 시대, 나아가 전화가 없던 시대에는 부모님과 함께 사는 연인들이 부모님 눈을 피해 연락을 주고 받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책은 19~20세기 초 연인들 사이에서 암호를 통한 연애 편지가 유행했다고 설명했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은 두 번째 아내와 모스 부호로 밀어를 나눴고 프로포즈까지 모스 부호를 통했다고 한다. 물론 꽃말, 의미가 담긴 우표 등 더 보편적인 '암호'도 공존했다.
열기구가 발명되자 하늘에서 결혼식을 치르는 연인들도 생겨났다. 1888년 미국에서 웨딩카까지 열기구로 띄워 결혼식을 올린 부부는 불시착해 늪을 헤치고 걸어 나와 결국 기차를 타고 신혼여행 길에 올랐다고 한다. 1824년 영국에서 약혼녀와 함께 열기구에 오른 한 남성은 추락 사고에 직면하자 열기구 무게를 줄여 약혼녀의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스스로 기구에서 뛰어내려 사망하기도 했다.
최근 사용되는 연인 찾기 수단인 데이팅앱 이전엔 신문의 구혼 광고가 있었는데 "대머리지만 여성이 원한다면 가발을 쓰겠다"는 간절한 호소부터 "출근한 사이 돼지들을 돌봐줄 여성이 필요하다"는 지나치게 솔직한 요구까지 다양한 내용이 발행됐고, 이를 통한 사기 사건까지 일어났다고 한다.
책은 제시된 에피소드들에 따르면 상사병의 존재가 인정될 정도로 절절한 사랑이 존재하고 혼외자의 존재로 사랑과 성이 뗄 수 없는 관계였음이 증명되는데도 사랑과 결혼이 왜 현대에 들어서야 일반적으로 결합되게 됐는지에 대한 역사적 배경 설명 등 현대 독자들이 가질 수 있는 의문을 풀어주진 않는다. 사랑에 대한 각 에피소드가 일어날 수 있게 한 사회적 배경, 계층 및 성별 권력관계, 지배구조, 빈곤 상황, 신분제 등과의 연결 고리도 탄탄히 설명돼 있지 않다.
하지만 사랑의 상징인 하트(♥)의 기원,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 '키스'에 그려진 것이 정말 사랑인지, <신곡>을 쓴 단테 등 역사 속 유명인의 사랑, 연인들이 주고 받은 특이한 정표, 중세 여성 억압의 상징으로 여겨진 정조대의 실체 등 사랑과 관련된 호기심 어린 질문들을 누구나 읽기 쉽게 다룬다.
책은 사랑과 결혼이 결합된 현대를 살아간 천문학자 칼 세이건 부부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1977년 발사된 무인 우주 탐사선 보이저호에 실린 레코드판엔 인간의 뇌파가 기록됐다. 이 '골든 레코드'는 보이저호가 지구 밖 문명을 마주칠 경우 이들에 지구를 소개하는 자료로 제작된 것이다. 골든 레코드에 실린 뇌파엔 작업에 참여한 앤 드루얀의, 세이건에 대한 '사랑에 빠진 뇌가 내는 소리'가 "폭죽" 소리처럼 기록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1981년 세이건과 결혼한 드루얀은 남편 사후 칼과의 만남은 "우연"이였지만 "그 온전한 우연이 이토록 관대하고 또 이토록 친절"했다며 "광대한 우주에서 광활한 시간에서 우리는 서로를 찾고 20년이나 함께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광대한 우주에서, 광활한 시간에서 우리는 서로를 찾고 20년이나 함께할 수 있었"고 "이 우주에서 서로를 만난 것은 아주 멋진 일이었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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