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의회(크네세트)가 요르단강 서안지구 합병안을 예비승인한 것 관련 JD 밴스 미 부통령이 "모욕감을 느꼈다"며 반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서안 합병 땐 이스라엘이 미국의 지원을 잃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가자지구 휴전 합의 뒤 미국이 고위 인사를 이스라엘에 끊임없이 보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정권이 휴전을 깨지 않도록 단속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을 보면 밴스 부통령은 23일(이하 현지시간) 3일간의 이스라엘 방문 일정을 마무리하며 취재진에 전날 이스라엘 의회의 서안지구 합병안 예비승인에 대한 질문을 받고 "기괴한 일"이라며 "그게 정치적 쇼였다면 매우 어리석은 쇼였다. 개인적으로 모욕감을 느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서안지구는 이스라엘에 합병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정책은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합병은 없다는 것"이라며 "상징적 투표를 원한다면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린 분명히 그게 만족스럽지 않다"고 못 박았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날 백악관에서 취재진에 관련 질문을 받고 "서안지구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며 "이스라엘은 서안지구에 대해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합병 불허를 천명한 바 있다.
같은 날 공개된 미 시사주간 <타임>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합병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그런 일이 일어나면 이스라엘은 미국으로부터의 모든 지원을 잃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안지구 합병 불허를 "아랍 국가들에게 약속했다"고 강조했다. 이 인터뷰는 지난 15일 전화를 통해 이뤄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의식 중인 아랍국들은 23일 이스라엘 의회의 합병안 예비 승인을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냈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요르단 등 아랍·이슬람국 15곳은 이 성명에서 이러한 시도는 "국제법에 대한 노골적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바레인, 아랍에미리트(UAE)가 이스라엘과 공식 외교관계를 맺게 한 아브라함 협정을 1기 집권의 주요 외교 성과로 내세우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 협정을 사우디로 확장하는 것을 염원하고 있다. 그는 <타임> 인터뷰에서 사우디와의 합의가 "매우 가까워졌다"며 사우디가 올해 안에 아브라함 협정에 합류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의회의 합병 투표와 거리를 뒀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23일 성명을 통해 해당 표결은 "JD 밴스 부통령 방문 기간 불화를 조장하려는 야당의 고의적인 정치적 도발"이라고 주장하며 집권 리쿠드당은 찬성표를 던지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총리실은 리쿠드당 지지 없이 이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낮다고 설명했다.
<AP> 통신은 전날 많은 의원들 기권 속 25대 24로 예비승인된 해당 법안이 최종 가결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봤다. 집권당이 반대하고 있는 가운데 법 제정을 위한 향후 3번의 투표에서 120석 중 과반 찬성을 얻을 가능성이 낮고 네타냐후 총리 또한 법안 지연이나 무산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을 방문한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23일 취재진에 서안지구 합병 표결이 가자지구 휴전에 "역효과"를 낳고 "평화 협정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아랍국 의식 트럼프, '가자 휴전 깨질라' 미 고위 인사 끊임없이 이스라엘 보내 '비비 시팅'
트럼프 정부는 가자지구 휴전을 안정시키려 시도 중이다. 가자지구 휴전 합의 뒤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해 스티브 위트코프 미 중동 특사,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제러드 쿠슈너, 밴스 부통령, 루비오 장관 등 미 고위 인사들이 이스라엘에 끊임없이 방문해 네타냐후 총리를 단속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 일간 <가디언>, <AP>를 보면 이스라엘 언론들은 이를 "비비(네타냐후 총리 애칭) 육아(Bibi-sitting)"로 부르고 있다고 한다. 네타냐후 총리와 그의 우익 연정 파트너들이 가자지구 휴전을 훼손하는 행위를 지근거리에서 끊임없이 감시한다는 의미다. '비비 시팅'은 네타냐후 총리가 예전 선거운동 때 자신을 유권자들이 믿고 자녀를 맏길 수 있는 "비비 시터(Bibi-sitter)"로 홍보한 데서 따온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타임> 인터뷰에서 가자지구 휴전 관련 "아시다시피, 내가 그(네타냐후 총리)를 막았다"며 네타냐후 총리에 "당신은 전세계를 상대로 싸울 수 없다. 세계가 당신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전세계에 비하면 아주 작은 나라"라고 설득을 시도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이 카타르를 공습하는 "실수"를 저질렀고 이는 "끔찍"했지만 그 결과 "모두가 하나가 됐다"며 카타르 공습이 가자지구 휴전 계기가 됐음을 설명했다.
휴전 2단계 협상의 쟁점이 될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무장 해제 관련 밴스 부통령은 23일 취재진에 아직 구성되지 않은 국제 안보군이 하마스 무장 해제를 주도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무장 해제에 "시간이 걸릴 것이며 안보군 구성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휴전 합의의 기반이 된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가자지구 종전안엔 가자지구에 "임시 국제안정화군"을 배치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지만, 전문가들은 무장 해제를 포함해 하마스와의 직접 충돌 우려로 여러 나라들이 파견을 꺼릴 것으로 관측했다. 밴스 부통령은 가자지구에 "미군은 배치되지 않을 것"이며 미군이 "평화 감시와 중재" 역할만 맡을 것이라고 밝혔다.
구호단체 "가자지구 인도적 상황 여전히 재앙…이스라엘이 구호품 반입 거부"
가자지구 휴전은 지속되고 있지만 구호단체들은 트럼프 종전안에서 약속된 가자지구 전면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엔(UN) 사무총장 부대변인 파르한 하크는 카타르 알자지라 방송에 휴전 발효 뒤 단 하루도 가자지구에 유엔 구호 트럭이 600대 이상 진입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가자지구는 전쟁 전에도 하루 500~600대 구호 트럭을 필요로 했다. 하크 부대변인은 "이스라엘 당국이 더 많은 검문소를 열어 더 많은 트럭 반입을 허용하길 원한다"고 밝혔다.
옥스팜, 국경없는의사회, 노르웨이난민위원회 등 41곳 구호단체들은 23일 공동성명을 내 이스라엘 당국이 휴전 합의 뒤에도 구호단체들의 가자지구들의 구호품 반입을 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지난 10~21일 국제 비정부기구(NGO)들의 가자지구 구호품 운송 요청이 99건 거부됐고 유엔 기구의 요청조차 6건 거부됐다고 밝혔다. 이들 단체는 이러한 행위는 "휴전 합의의 정신과 조건에 대한 위배"라며 이스라엘에 "합의와 국제법을 준수해 인도적 지원이 자유롭게 이뤄지게 할 것"을 촉구했다.
<로이터>는 팔레스타인 비정부기 PARC의 대외관계 책임자 바하 자쿠트가 "휴전이 시작된 지 2주가 지났지만 가자지구 상황은 여전히 재앙적"이라며 어린이와 여성, 취약 계층이 여전히 최소한의 영양 수요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이 문제 삼는 숨진 인질 주검 반환도 여전히 완료되지 않아 23일까지 28구 중 15구만 이스라엘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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