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작가인 경하는 제주에서 폭설을 뚫고 버스를 갈아타며 친구 인선의 집으로 향한다. 제주도에서도 외진 중산간으로 가는 길. 오랜 시간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경하는 인선의 어머니와 비슷한 노인을 본다. 어쩌면 노인에게 버스는 혼자 고립되지 않고 세상과 닿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일 수 있다. "외딴집에서 버스정류장까지 삼십분 넘게 걸어야" 한다면, 대중교통이 내 집에서 가깝지 않다면 세상과의 거리도 더욱 멀게 느껴지지 않을까.
대중교통이 가깝다고 느낄 때 우울증 위험은 낮아진다
2024년 국제학술지 <예방의학>에 발표한 연구에서 일본 치바 대학의 마츠모토 교수 연구팀은 대중교통 접근성에 대한 주관적 인식에 주목했다(☞논문 바로가기: 노인의 대중교통 접근성과 우울증 위험 발생률: 일본 노인학 평가 연구의 3년 종단 분석). 연구팀은 일본 25개 시군에 거주하는 65세 이상 성인 4947명의 자료를, 자동차를 이용하는 사람과 이용하지 않는 그룹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다시 두 그룹 내에서 대중교통 접근성이 주관적으로 좋다고 느낀 그룹과 부족하다고 느낀 그룹을 나누었다.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으면서, 대중교통 접근성이 부족하다고 느낀 이들은 접근성이 좋다고 느낀 이들에 비해 우울증 발생이 1.6배 높았다(95% 신뢰구간: 1.05-2.42).
특히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는 고령자에게 대중교통에 대한 주관적 인식은 중요하다. 근린 환경이 좋다고 인식하게 되면 걷기나 신체활동, 장보기 등 우울증을 예방할 수 있는 건강한 행동과 사회활동도 이어질 수 있다.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는 그룹에서 보행시간, 사회참여, 신선식품 상점의 이용 가능성까지 보정한 결과, 이 요인들이 우울 위험을 낮출 가능성을 설명하고 있었다.
대중교통은 사회와 연결되는 고리
자동차를 이용하는 그룹 내에서는 우울증 발병 위험에 차이가 없었다.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으면서, 주관적으로 대중교통 접근성이 나쁘다고 느낄 때만, 우울증 위험은 유의한 차이를 보였다. 다른 사람에게 신세 지지 않고 스스로 움직여 이동할 수 있도록 대중교통이 가까이 있다는 것만으로 노인 정신건강은 긍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연구팀은 일본 농촌 인구 감소로 대중교통 이용자가 감소하면서 기차와 버스노선이 지속적으로 폐지되고 있다고 전한다. 일본의 일부 지자체는 노선 통합과 버스 서비스 확대를 추진하지만, 노선 재편성은 여러 운영업체 간의 적자 버스 노선을 줄이는 동시에 주민 간 합의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문 닫은 버스회사
캐나다 서스캐처원 대학의 알하산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2025년 2월, 지방정부가 아닌 지역사회 주도로 시작한 무료버스 운영을 다룬 논문을 발표했다(☞논문 바로가기: 캐나다 서스캐처원 북부의 농촌 지역 간 무료 대중교통 사업의 약속과 위험: 혼합 연구 방법 분석).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도시 간 교통은 주정부 관할이 되었고 주정부 긴축 예산이 이루어졌다. 70년 동안 운영되던 공영버스 서비스인 서스캐처원 교통공사(STC)와 그레이하운드 버스회사는 2017년 폐쇄되었다. 문 닫을 당시, STC는 버스 41대를 운영하고 있었다. 253개 지역사회를 연결해 왔고 연간 280만 마일(약 450만 6163km, 서울-부산 간 거리를 1만 1414번 왕복하는 거리)을 운행했다. 지역 주민들은 당장 무엇을 타고 다닐지 대안을 찾아야 했다. 수익이 나지 않는 도시-지방 간 버스운행은 아무도 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역단체가 시작한 '우정'버스
캐나다 서스캐처원 주(인구 120만)에서도 북부 지역에 있는 농촌지역 라롱지(La Longe) 같은 곳은 고립된 이들이 많았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차에 태워달라고 하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었다. 특히 노인은 교통수단이 없으면 아파도 적절한 시기에 병원에 갈 수 없다. 단절된 지역적 특성 때문에 대중교통이 없어진다는 것은 농촌 지역사회 거주민의 취약성이 더 커진다는 것을 뜻했다.
인구 5200명의 라롱지에서 교육·사회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한 지역사회 단체(키키나크 우정센터)는 라롱지와 가까운 중북부 도시 프린스 앨버트(인구 3만7000명)를 오가는 무료버스를 운영하기로 한다. 이름하여 '우정버스'. 2시간 30분 걸리는 두 지역 사이 정류장 2곳에 선다. 연방정부의 운영 보조금을 통해 2022년 10월에 운영을 시작했고, 중간에 자금조달이 어려워 중단된 적도 있지만 2024년 6월까지 운행되었다. 연구팀은 지역 간 무료버스 운영에 대해 지역사회 기반 참여연구를 설계했고 2023년 7~12월까지 6개월 간 자료를 수집해 분석했다.
우정버스가 실어준 것은
2023년 7~12월까지 지역사회 구성원 616명이 버스를 이용한 횟수는 1185회. 1인당 평균 5회(중앙값 2.0), 최대 22회까지 이용했다. 무료버스 이용자들이 꼽은 가장 큰 목적은 "가족을 방문"(726명, 61%). 그다음이 "의료이용"(258명, 22%)이었다. 무료버스를 이용한 노인 중에서는 34%(87명)가 의료이용을 위해 버스를 탔다. 이용자 16명(여성 12명, 21~84세), 무료버스 운영·관리자 6명(남성 5명)이 참여한 심층인터뷰 결과에서도 무료버스의 장점은 단연 의료서비스 접근성 개선이었다. 연구참여자들은 무료버스가 있어서 프린스 앨버트 같은 시내 도시에 가서 치료받을 수 있고, 가족이 병원까지 함께 가줄 수 있다고 말했다.
무료버스의 점은 그뿐 아니다. 무료버스는 가족과 친구와 연결될 수 있는 능력이 되었다. "서스캐처원의 혹독한 겨울을 보내면서 가족과 친구를 방문하기 위해 가장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는 선택지가 무료버스였다. 버스 서비스를 계속 운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비극"이다.
독립성과 자율성을 유지하는 보루
"사람들에게 나를 태워 달라고 애걸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죠. (중략) 제가 여전히 독립적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특히 나이가 들면서 독립성과 자율성을 유지하는데 무료버스는 중요했다. "차량이나 교통수단에 접근할 수 없는 북부 지역 사람들이 의료 예약이나 장보기, 주말에 집에 오고 싶은 학생들, 병원에 있는 가족을 보러 가는 친척들을 위해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무료버스를 잃는 것은 자율성, 자유, 여행 능력을 잃는다는 뜻이 된다.
건강과 삶의 질을 떠받치는 공공서비스
연구팀은 무료버스의 한계 역시 지적한다. 지역단체가 운영하는 무료버스가 수요를 어느 정도는 충족해도 지역 간 대중교통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공공재정지원을 받지 못해 운영관리가 불안정하고 사업환경이나 도로 교통사고 등 교통체계 관리도 해결이 요원하다. 비용 절감을 위해 폐쇄된 서비스 공백을 메우고는 있지만, 이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서비스가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공공 차원의 더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지역쇠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한국 사회 역시 비도시 지역 주민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교통 체계의 공공성 강화가 필요하다. 여기에는 버스노선 유지 뿐 아니라 경제적 장벽 해소도 포함되어야 한다. 대중교통 무료화가 의료접근성 보장, 사회참여 개선, 취약계층의 이동권 지원에 강력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대중교통은 사람들의 사회적 연결과 존엄을 실어 나른다.
*서지정보
Alhassan, J. A. K., Fuller, D., & Woytowich, R. (2025). The promises and perils of a free rural inter-city transportation scheme: A mixed-methods study from Northern Saskatchewan. Canadian Journal of Public Health, 1-12.
Matsumoto, K., Hanazato, M., Chen, Y. R., Matsuoka, Y., Mori, Y., Yoshida, H., & Kondo, K. (2025). Proximity to public transportation and incidence of depression risk among older adults: A three-year longitudinal analysis from the Japan Gerontological evaluation study. Preventive Medicine, 191, 108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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