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절보다 더 예의주시 해야 할 SCO 정상회의, 중국은 무엇을 구상하고 있나

[기고] SCO정상회의 및 전승절 열병식의 전략적 메시지와 한국 외교

2025년 9월, 중국은 톈진과 베이징이라는 두 무대를 통해 세계를 향한 메시지를 발신했다. 상하이협력기구(SCO) 톈진 정상회의에서는 '다극화 세계'를 공식 천명했고, 베이징의 항일 승리 80주년 열병식에서는 '군사적 존재감'을 시각적으로 드러냈다.

외교와 군사, 제도와 역사를 결합한 메시지를 통해 중국은 미국 주도의 규칙 기반 질서에 맞서 국제질서의 다극화를 이끄는 리더 국가임을 자임하며, 미중 경쟁 구도 내에서 전략적 위상을 재확인하고자 했다.

한국에서는 3일(이하 현지시간) 베이징에서 열린 항일 승리 80주년 기념 열병식에 김정은 위원장이 참석해 북·중·러 지도자가 최초로 한자리에 모였다는 점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미·중 경쟁 구도에 장기적이고 구조적 영향을 미칠 2025 SCO 톈진 정상회의의 전략적 함의는 상대적으로 간과된 측면이 있다.

열병식 직전인 8월 31일부터 9월 1일까지 열린 제25차 SCO 톈진 정상회의는 창설 이후 최대 규모로 개최됐다. 의장국을 맡은 중국은 회의 준비를 위해 교통·도시 인프라 정비, 회의장 개보수, 수로·조명 개선, 도로·교량 정비까지 포괄하는 광범위한 도시 차원의 정비 작업을 진행했다.

이번 회의에는 20여 개국 정상과 10개 국제기구 대표가 참석했으며, 회의를 마친 뒤 주요 지도자들은 곧바로 베이징으로 이동해 전승절 행사에 합류했다. 두 행사가 시간상 연속성을 갖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중국이 외교적·군사적 메시지를 상호보완적으로 구성하려는 의도적 배치였다.

다만 두 행사의 성격과 목표는 분명히 구별된다. 항일 승리 80주년 열병식은 항일전쟁이라는 역사적 서사를 전면에 내세워 국민 통합과 공산당 지도력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장치였다. 최신 전투기, 미사일, 극초음속 무기 등 신형 장비와 약 1만 2000명의 병력을 동원해 군사력을 과시하는 한편,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등 우방 지도자들과의 공동 참석을 통해 대외적으로는 반(反)서방 연대의 상징성을 드러냈다.

반면 톈진 SCO 정상회의는 훨씬 장기적이고 제도적인 기반을 마련하는 자리였다. 회의에서 채택된 선언과 합의들은 다극화 질서 구축, 경제·안보 협력 심화, 서방 제재에 대응한 독자적 금융·무역 네트워크 형성 등 구체적 방향을 담고 있다. 중국은 이번 SCO 정상회의를 통해 SCO를 포괄적 지역 거버넌스 플랫폼으로써, 글로벌 질서 재편을 위한 제도적 설계와 외교 네트워크로써 확장하려는 전략을 더욱 구체화했다.

톈진 SCO 정상회의에서 회원국들은 '향후 10년(2026~2035)을 조망하는 발전계획'인 '톈진 선언'을 채택했다. 선언문에서 이들은 지정학적 대립의 격화가 세계와 지역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으며, 국제 무역과 금융 시장에 심각한 충격을 가하고 진단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부과 위협을 겨냥하여, 일부 서방 국가들이 자유무역질서를 훼손하고, 제재와 경제적 강압을 동원해 회원국들을 압박하고 있다는 비판을 담았다.

또한, 미·이스라엘의 대이란 압박과 군사적 위협을 강하게 규탄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는 미국과 서방이 주도하는 규칙 기반 국제질서에 대한 문제 제기이자, SCO 회원국들이 새로운 국제질서의 '다극화(multipolarity)'를 공식 천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 8월 31일(현지시간) 텐진의 메이장 컨벤션 및 전시 센터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 환영 만찬에 앞서 참석 정상들이 단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신화통신=연합뉴스

시진핑 주석은 이번 회의에서 SCO에 안보·경제 분야에서 실질적 협력을 담당할 새로운 기구 신설과 SCO 개발은행의 조속한 설립을 촉구하면서, 이를 통해 회원국들의 안보 협력과 경제 협력을 동시에 강화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톈진 선언은 중국이 SCO를 통해 '반(反)서방 규범 연대'를 제도화하려는 시도이며, 무역·금융 질서에 대한 비판은 미국과의 전략 경쟁을 '군사·안보 영역'에서 '경제·금융 규범 경쟁'으로까지 확장하려는 중국의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SCO를 제도적 차원에서 한 단계 격상시키려는 중국의 전략적 구상이다.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점은 2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과 러시아의 회담이다. 시진핑 주석은 양국이 독립적 발전과 부흥을 추구할 충분한 역량을 보유하고 있음을 강조하며, 대규모 프로젝트 협력과 이익 통합의 심화를 주문했다.

그는 양국 관계를 "영원한 선린 우호와 전면적 협력, 호혜 협력의 모범"이라고 규정하면서 중러 관계가 대국 관계 모범임을 부각했다. 푸틴 대통령 또한 양국 관계가 "전례 없이 높은 수준"에 도달했음을 강조하며, 미국을 겨냥한 전략적 협력 확대를 재확인했다.

이번 회담에서 양국은 에너지, 인공지능, 항공우주, 농업, 보건, 교육 등 다방면에 걸쳐 20여 개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 중 주요 이슈는 단연 '시베리아의 힘 2' 가스관을 통한 장기적 에너지 공급 계약이다. 몽골을 경유해 중국으로 연결되는 이 가스관을 통해 양국은 향후 30년간 연간 500억㎥의 가스를 유럽보다 낮은 가격에 공급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러시아가 러우전쟁 이후 에너지 수출을 아시아에 집중하려는 의도이자, 중국이 장기적으로 안정적 에너지 수급을 확보하는 중요한 성과라 할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유라시아 대륙 내에서 경쟁과 상호 견제라는 내적 긴장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정치·경제·군사·안보 전 영역에서 유례없는 전략적 협력을 공고히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양국의 이해관계는 더욱 밀착되었고, 상호보완적 필요가 갈등 가능성을 압도하면서 양국 관계는 사실상 유기적 협력체제처럼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협력 구도는 미·중 경쟁 구도 속에서 더욱 뚜렷한 함의를 가진다. 중국과 러시아는 브릭스(BRICS), 상하이협력기구(SCO),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국가들을 매개로 다극적 국제질서 구축을 제도화하고 있으며, 반미 연대의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은 단순한 전략적 협력을 넘어 미국 중심의 단일 패권을 견제하고 국제질서의 다극화를 주도하는 구조적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는 거시적 관점에서 국제질서의 변화일 뿐만 아니라 북한의 외교 전략과 동북아 정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이 예의주시해야 한다.

중러 협력이 구조적으로 공고화되는 상황에서 한국은 한미 동맹을 중심축으로 하되 에너지·경제·대북정책 차원에서 다층적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미중 경쟁 압력을 완화하고 외교적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경색된 한중·한러 관계를 회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 외교는 지정학적 긴장, 보호무역주의, 경제 블록화의 파고 속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고 국익 우선의 실용외교를 발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가오는 10월 경주 APEC 정상회의는 국익우선 실용외교를 추구하는 한국 외교의 시험대이자 외교적 지평을 넓힐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오늘날 한국은 복잡한 외교·안보 환경에 놓여 있지만, 동시에 전략적 레버리지를 확대할 기회도 맞이하고 있다. 미·중·러와의 실용외교, 동맹의 재구성,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복합적 전략을 통해 한국은 글로벌 핵심국가로서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할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 텐진 시내 곳곳에 걸려있는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 관련 가로등 배너. ⓒ최재덕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최재덕

최재덕교수는 성균관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하고 중국 베이징대학에서 박사학위(한중관계)를 받았고 모스크바국립대학 국제관계 박사후과정을 거쳤습니다. 이후 연세대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을 거쳐 대통령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전문위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