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만의 정체성…결국 통했다" 이지호 관장, '글로벌 미술 허브' 더 큰 도약 준비

[인터뷰] 개관 5주년 전남도립미술관 성공 요인과 향후 계획

[편집자 주] 이재명 정부의 5개년 국정운영 방향은 5개 초광역권과 3개 특별자치도(5극3특)를 중심으로 한 지역 균형 발전에 맞춰져 있다. 최근 국정 청사진 발표와 함께 진정한 지방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 쏘아 올려졌다. 그간의 '호남 홀대'에도 지역 고유의 자원을 바탕으로 전국을 넘어 세계의 시선을 전남에 집중시키고 지역으로 발길을 향하도록 한 지역 내 다양한 '움직임'이 있다.

개관 5주년을 앞두고 있는 전남도립미술관은 그동안 '전남'이라는 지역적 정체성을 놓치지 않고 '현대미술을 기반으로 한 전통과 미래를 접목한 차별화한 전시'로 국내외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방 '소멸'의 위기 속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 오면서 앞으로 열릴 지방시대, 한 단계 더 큰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이지호 미술관장을 만나봤다.

▲이지호 전남도립미술관장이 프레시안과 인터뷰 하고 있다.2025.09.02ⓒ프레시안(박아론)

"앞으로 열릴 지방시대, 아직 채 알려 지지 않은 숨은 지역 문화 예술적 자산을 기반으로 국내외 예술계 다양한 협업을 통해 전남을 더 집중시킬 겁니다."

이지호 전남도립미술관 관장은 최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열릴 지방시대를 맞아 지난 4년간 지역 공립미술관 운영을 통해 확신한 전남의 발전 가능성을 전망하며 이같이 말했다.

이 관장은 "전남은 지역 곳곳에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지 않아 문화 예술적 자원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어 오히려 무궁무진한 성장 발전 가능성을 품고 있다"며 "해남 녹우당만 보더라도 군 단위에서는 관리하기 어려운 국가 유물 수준의 건물과 자료가 있고, 신안 출신의 대표 추상화가 김환기 등 숨은 인물과 작품, 유산들이 산적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도와 국가 차원에서 나서 각 기록, 보존 작업부터 각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문화 관광 자원화를 위한 움직임이 확대돼야 한다"며 "앞으로의 성장 발전의 축이 지역으로 옮겨질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지역 문화 예술계 허브로서 중추적 기능과 역할을 확장해 전남의 미래를 키울 또 다른 영역에서의 신성장 동력원이 될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시킬 예정이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근 국내 정치적 현실을 조망한 한국 작가들의 작품과 더불어 각국의 정세를 조망한 작가들과 협업한 전시기획 '점유하다(OCCUPY)'가 주목을 받는가 하면, '이건희 컬렉션', '조르주 루오' 등 여러 기획전이 연이어 국내외 언론, 미술계에서 주목받은 바 있다. 타 미술관과 차별화한 전략과 방향성은 무엇이었는지.

전남만이 지닌 독창적인 문화·역사 자산을 기반으로 지역성과 세계성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겠다는 전략 아래 기획 단계부터 타 지역 혹은 공립미술관과는 차별화한 전시를 선보여야겠다는 방향성을 수립했다. 이어 주제나 표현 방식이 유사한 지역 작가와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해외 작가를 함께 구성해 관람객이 서로 다른 문화권의 차이와 공통점을 한 자리에서 비교·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넘나들며 지역 작가들이 국내외 다양한 작가들과의 협업을 도모해 다양한 경험과 기회를 넓히고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어 지역 공립미술관으로서 지역 미술사와 아카이브 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해 전시와 더불어 해설 프로그램과 워크숍, 교육 콘텐츠를 마련하고자 했다. 이로써 전문적인 연구 성과를 대중이 쉽게 이해하고 체감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공립미술관으로서 공적 자산과 전시, 출판, 교육 등 사회 각계 기관 및 기업과의 협업을 배경으로 다양한 전시 기획을 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으나, 그만큼 지자체나 지역 인사들의 개입 등 여러 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한계도 있다. 추진 과정에서 어려움은.

지역 예술단체의 전시 개최 제안, 소장품 구입에 대한 권유, 언론기관의 홍보 협력 요청 등 여러 주체로부터 다양한 제안이 들어온다. 압력이 아닌, 지역 생태계가 미술관에 기대는 신뢰의 표현이자 현장의 요구를 가늠할 수 있는 신호다. 하지만 전남도립미술관만의 정체성, 방향성이 흔들리지 않고, 중장기 기획 방향과의 정합성, 연구·교육적 가치, 관람 접근성, 제작·보존 가능성, 예산 및 일정 리스크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최종 판단해오고 있다. 현장에서 중요한 것은 '정중한 소통'과 '예측 가능한 가이드'다. 미술관의 원칙은 단기적 요구보다 장기 비전과 공공적 가치를 우선하는 것이다. 정중한 설명과 대안 제시로 미술관의 신뢰와 품격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미술관을 운영해오고 있다.

▲이지호 전남도립미술관장이 큐레이터와 전시 관련 대화를 나누고 있다.2025.09.02ⓒ프레시안(박아론)

-여러 어려움 속에서 미술관의 방향성이 "통했다"는 것을 느낀 순간은.

여러 한계와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의 방향이 맞구나'라는 확신을 준 순간들이 있다. 대중성과 예술성을 결합한 전시가 관람객에게 깊은 울림을 준 경우다. 벨기에 작가 리너스 반 데 벨데의 '나는 욕조에서 망고를 먹고 싶다'와 허영만 작가의 '종이의 영웅, 칸의 서사' 전시는 서로 다른 매체와 접근 방식을 통해 현대인의 일상을 새롭게 조명했고, 관람객이 작품 앞에서 오래 머물며 웃거나 사색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미래가 된 산수 : 미구엘 슈발리에, 이이남'전은 디지털 기술을 통해 동서양,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예술 세계를 구현하며, '전통이 이렇게 새롭게 변주될 수 있군요'라는 관람객의 반응을 이끌어냈다. '인간의 고귀함을 지킨 화가 조르주 루오' 전시는 종교적·인간적 고뇌를 강렬한 색채와 형상으로 풀어내, 세대를 초월한 감동을 전달해 약 17만명 관람객이 미술관을 찾았다. 2023년에 선보인 두 번째 이건희 컬렉션 전시는 작품과 함께 작가들이 남긴 에세이, 화문, 편지 등의 기록을 전시장에 구성해 "작품만이 아니라 작가의 숨결과 시대의 공기까지 느껴졌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또한 단일 전시로 약 8만명의 관람객이 내방하기도 했다.

-지역적으로 전남에서 미술을 발전시킬 좋은 터전인 이유는. 그럼에도 한계가 있다면.

전남은 오지호, 김환기, 천경자 같은 한국 미술사의 거장들을 배출한 '예향'이다. 전통과 역사를 기반으로 작가들에게는 독창적인 창작 영감을 제공하는 매우 매력적인 환경이다. 이런 배경 덕분에 작가들이 전통과 현대를 잇는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 있다. 기본적으로 도민들의 역사적 수준이 높으며, 학구열이 있다. 하지만 미술계의 네트워크나 시장 인프라, 창작 지원 시스템이 수도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한계도 분명 있다. 신진 작가들이 장기적으로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작품 발표 기회, 안정적인 창작 공간, 그리고 국내외 교류 채널이 더 확충될 필요가 있다. 전남도립미술관은 강점과 한계를 모두 인식하고, 지역의 예술적 자산을 발굴·연구·전시하는 동시에, 해외 작가와의 교류전, 청년작가 지원 프로그램, 교육 사업 등을 통해 창작 생태계를 넓히고 있다. 전남이 ‘예술하기 좋은 지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지역성과 국제성을 아우르는 환경을 만드는 데 힘쓰고 있다.

-지난 4년간 전남도립미술관의 운영 성과. 국내 미술시장의 현재와 지역적 상황 속에서 우리 미술관이 나아갈 방향은.

그동안은 작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미술관이라는 하드웨어가 없어서 한계가 있었다. 전남도립미술관은 개관 5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도 지역성과 세계성을 아우르는 기획력과 안정적인 운영 체계를 바탕으로 빠르게 위상을 확립해 왔다. 타 국공립미술관이 대규모 인프라와 오랜 역사에서 오는 브랜드 파워를 강점으로 한다면, 저희는 남도의 독창적인 문화·예술 자산을 기반으로 한 차별화된 콘텐츠와 기민한 기획, 그리고 지역 밀착형 운영에서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다. 청년작가 지원, 교육·참여형 프로그램 등은 미술관을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창작과 연구, 교육, 지역사회 교류가 통합된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 결과 타 국공립미술관 대비 규모나 예산 면에서 제약이 있음에도, 기획의 독창성과 지역과 세계 연계성에서는 분명한 존재감을 확보하고 있다. 전남도립미술관이 나아갈 방향은 '지역성과 세계성의 동시 확장'이다.

-끝으로 향후 계획은.

남도의 독창적인 문화·예술 자산을 기반으로 한 연구와 전시를 통해 지역 작가와 콘텐츠의 가치를 심화시키고, 국내외 네트워크를 통해 확산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국내 미술시장에서 주목받는 매체·주제와 지역 고유의 미학을 접목해 차별화된 기획을 선보임으로써, 전남이 새로운 예술 담론의 발신지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 지역 작가의 지속 가능한 창작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작품 발표 기회를 확대하고, 국내외 기관과의 공동 프로젝트, 레지던시, 학술 교류 등을 통해 지역 작가들이 미술 시장과 글로벌 무대에 접근할 수 있는 경로를 마련할 예정이다. 지역의 미학과 국제적 흐름을 연결하며, 연구·창작·교육·교류가 유기적으로 순환하는 지역 기반 글로벌 미술 허브’로 자리매김하도록 노력하겠다. 앞으로도 도민 여러분께서 미술관을 편안하게 찾고, 전시와 교육,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시각과 감동을 얻으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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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아론

광주전남취재본부 박아론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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