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대 북중러? 비슷할 것 같지만 다른데…'북중러' 강조하는 속셈은?

[정욱식 칼럼] 한미동맹 이대로 좋은가? (4) 제도화 수준의 현격한 차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방중 소식이 한국과 국제사회의 시선을 단박에 끌고 있다. 그가 9월 3일 중국의 전승절 기념식에 참석키로 하면서 지정학적 파장이 만만치 않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주석 및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천안문 망루 위에 올라 중국의 역대급 군사행진을 참관할 예정이어서 한미일에 맞선 북중러 결속이 본격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낳고 있다.

그런데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프레임이 너무 쉽게 소비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러한 이분법적 재단은 사실 관계와도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지정학적 단층선에 있는 한국의 전략적 입지를 좁힐 우려가 크다. 실제로 사실상의 3자 동맹으로 치달아온 한미일 협력의 제도화 수준에 비해 북중러 연대의 제도화 수준은 '제로'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맹 구조부터 살펴보자. 주지하다시피 한미일 3자 사이에 공식적인 동맹 조약은 없다. 하지만 미국이 우월적 지위에서 한국 및 일본과 양자 동맹을 유지하면서 3자의 군사 협력을 준동맹 수준으로 격상해왔다. 이에 따라 한미일 3자 관계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압도적이다.

미국의 요구에 따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이 체결되고, 미사일방어체제(MD)를 고리로 삼아 집단적 자위권을 공유하려 하며, '프리덤 엣지'를 비롯한 3자 군사훈련이 강화되고 있는 추세는 이를 잘 보여준다.

북중러 사이에도 공식적인 동맹 조약은 없다. 조선이 중국 및 러시아와 양자 동맹을 맺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조선이 북중러 3자 관계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다. 가장 큰 영향력을 보유한 중국은 북중러 관계를 한미일 관계에 준하는 수준으로 결속하는 데에 관심도 없고 그래서 거리를 둬왔다.

진영화와 신냉전을 반대해온 중국이 전승절을 계기로 이러한 방향으로 갈 가능성도 낮다. 또 중러 연합훈련은 존재지만, 북러·북중 양자 훈련이나 북중러 연합훈련은 아직까진 없다.

회의체의 수준에서도 확연한 차이를 드러낸다. 한미일은 정상회담부터 외교장관회담, 국방장관회담, 합참의장 회담 등에 이르기까지 다층적이고 고위급이 참여하는 회의체를 운영해왔다. 이에 반해 북중러에는 어떠한 3자회담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한미일 대 북중러를 동급으로 취급하는 것은 근거가 부족한 과잉해석이다. 우리가 이러한 해석을 자제하고 경계해야 할 까닭은 '말이 씨가 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국제질서의 다극화를 추구해온 이들 나라가 뭉치고 있다는 판단은 한국도 미국 및 일본 등과의 관계를 강화해 이들 나라에 맞서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낳기 쉽다. 그 폐해는 미일동맹에 '다걸기'를 했던 윤석열 정부 때 경험했던 것으로도 충분하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 들어서도 아직까진 허상에 가까운 북중러 결속을 초래할 수 있는 거대하고 일방적인 힘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한미·미일동맹과 한미일 군사협력의 방향을 중국 견제와 봉쇄 쪽으로 가져가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올가을 발표될 예정인 미국의 국가방위전략(NDS)의 핵심 기조가 본토 방어와 더불어 대중 억제, 특히 중국의 대만 흡수 시도 저지에 맞춰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기실 미국이 이런 방향으로 전략적 중심축을 삼으려는 시도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21세기 미국의 첫 행정부인 조지 W. 부시 시기부터 이러한 추세는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미중 전략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와중에 한국과 일본 등이 미국의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해 대규모 군비증강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대만에서 반중 성향의 민진당이 세 번 연거푸 집권해왔고, 중국의 시진핑 체제가 대만 통일의 사명을 더욱 강조하고 있기에 우려의 깊이는 더해진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국제질서의 다변화와 신냉전"을 언급하면서 전략적 지위를 다지려는 조선에 유리한 공간을 제공해줄 수 있다. 조선은 중국이 자신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면서 관계 강화를 도모해주길 바라는데, 한미일이 중국을 '공동의 적'으로 삼으려는 경향이 강해질수록 중국도 조선의 요구를 들어줄 공산이 커지기 때문이다.

'트럼프 변수'가 어떻게 작용할지 두고 봐야 하지만, 조선은 한미일과의 관계 개선의 미련을 버리고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를 도모해왔다. 그래서 '동북아 신냉전'이나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에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이러한 대결 구도가 가져올 경제적·안보적·외교적 손실과 위험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하여 우리는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프레임을 쉽게 소비하거나 이러한 방향으로 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오히려 어렵더라도 많은 나라들과 시민들이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공통의 의제'를 발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다루기로 한다.

▲ 왼쪽부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연합뉴스

※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 최근에 <달라진 김정은, 돌아온 트럼프>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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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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