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성과 뒤에 다시 버려진 '위안부' 피해자들

[기고] 지워지지 않는 역사, 남는 것은 진실이다

연이은 한일·한미 정상회담이 끝났다. 여론은 대체로 안도하는 분위기다.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기에 앞서 일본 이시바 시게루 총리를 찾은 것이 "신의 한 수"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30여 년간 일본의 진정한 사죄와 반성을 요구해 온 '위안부'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또다시 내팽개쳐졌다. 정치적 편의주의와 한일관계 개선이라는 명분 아래, 피해자들은 희생양으로 전락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회담 직전 일본 극우 매체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과거 합의를 뒤집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야당 시절, 2015년 한일합의를 강력히 비판하던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정상회담에서는 일본의 요구대로 "1965년 한일기본조약을 기반으로 역사 문제를 다룬다"는 데 합의했고, 이어진 한미회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왜곡된 발언에 오히려 화답했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양보가 아니라 피해자들의 투쟁과 국제사회의 정의 기준을 무너뜨린 역사적 참사다.

기대가 컸던 만큼 배신감은 크다. '광장의 힘'으로 당선된 대통령은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는 행보로 희망을 주었지만, 위안부 문제 앞에서는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후퇴했다. 정상회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조차 "너무 나갔다"는 우려를 표할 정도다. 사실 이러한 퇴행의 뿌리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유엔 쿠마라스와미 보고관이 제시한 국제 기준 ― 국가범죄 인정, 공식 사죄, 법적 배상, 가해자 처벌, 진상 규명, 교육 ―은 수십 년 전부터 명확했으나, 한국 정부는 단 한 번도 이를 지켜내지 못했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일본군 문서와 피해자 증언은 범죄의 증거로 남아 있으며, 국제사회와 유엔은 수차례 일본 정부에 공식 사죄와 해결을 촉구해왔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이 역사는 계속 가르쳐지고 있다. 어떤 거래를 하더라도 사라지는 것은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신뢰일 뿐이다. 남는 것은 역사적 진실이다.

이번 사태는 분명한 교훈을 남겼다.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 한국 정부는 더 이상 피해자를 대변할 자격이 없다. 국가 주도의 인권문제 해결을 정부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제 우리는 다시 원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국제 기준에 근거해 세계 시민들과 연대하며 정의를 요구해야 한다. 또한 한국이 단순한 피해국에 머무르지 않고,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이 저지른 가해 책임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공식 사죄와 해결에 나설 때, 대한민국은 후대에 부끄럽지 않은 역사를 남길 수 있을 것이다.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한일 정상 소인수회담을 하며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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