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장관과 경제장관의 '경솔한 입'

[기고] 새 정부의 운명이 달려 있다

'코스피 5000'은 이재명 대통령이 내건 새 정부의 상징적 약속이다. 그런데 이 나라 경제정책의 실질적 사령탑인 경제부총리의 말 한마디로 이재명 정부의 이 약속은 완전히 빛이 바랬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19일 국회에서 코스피 주가순자산비율(PBR)를 묻는 국회의원의 질의에 곧바로 답변을 하지 못하다가 배석해있던 주변 기재부 참모들이 '10'이라고 하자 "10 정도 안 됩니까?"라고 답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PBR은 1.0 수준이다. 주식시장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커녕 가장 기본적인 개념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주식시장 활성화를 강조하면서 이 PBR 개념을 누차 언급한 바 있었다. 더구나 이날 구 부총리는 주식시장과 직접적 관련이 적은 "기업 경쟁력"이나 "남북관계" 등등만을 나열하면서 구태의연하고 기계적인 동문서답으로 답변했을 뿐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어느 나라의 장관인가

지난 1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한 조현 외교부 장관은 타이완 유사시에 우리가 개입해야 하냐는 조국혁신당 김준형 의원의 질문에 "유사시라는 것이 어떻게 시작"되었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다면서 "대만 유사시 상황이라는 것이 여러 종류가 있기 때문에"라고 말해 상황에 따라서는 개입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취했다.

외교부 장관의 이 발언은 심각한 문제를 지니고 있다. 사실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 개입 문제'는 심지어 내란수괴 윤석열 정부에서도 명확히 선을 그어왔던 사안이었다. 구체적으로 지난해 1월 22일 신원식 당시 국방부 장관은 <코리아헤럴드>와 인터뷰에서 "대만을 둘러싼 충돌이 있다고 하더라도 주한미군을 빼간다는 전제를 한 질문은 적절치 못하다. 우리가 이런 질문을 하면 미국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우리의 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 질문이다. 주한미군도 그런 얘기를 전혀 하지 않고 있고, 지나친 가정이다. 단호히 '노(No)'를 해야 한다"라고 답변한 바 있다.

이에 앞서 이달 3일에 <워싱턴포스트>가 게재한 조현 외교부 장관과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조현 장관은 "중국이 이웃 나라들에 다소 문제가 되고 있는 또 다른 문제도 있다"면서 "중국에 역내 문제에서도 국제법을 준수하기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일본과 잘 협력할 것"이라며 "모든 이런 일들은 우리 동맹인 미국과의 좋은 협력 속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외교 분야 인사들은 어떠한 한 가지 사안에서도, 어떠한 말 한마디에도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개 두루뭉술하고 애매한 표현이 등장한다. 외교 담당자, 특히 외교 수장의 발언으로서 이 정도로 '솔직하게' 속마음을 노출시킨 경우는 거의 보기 어렵다. 일부러 의도를 드러내려는 고의적인 발언이거나 아니면 전일적으로 충만된 친미반중 사고방식의 본능적 발로라고밖에 달리 해석될 수 없다. 그것은 이 나라 외교를 책임지는 위치에 있는 수장으로서는 결코 드러내서는 안 되는, 완전히 '비외교적' 행태에 속한다.

우리 사회는 대개 관료들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그들이 유능하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공직에 근무했던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 나라의 적지 않은 고위 관료들의 가장 탁월한 특장(特長)은 주어진 과제의 실행 능력보다도 바로 '아부의 능력'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두에 소개한 경제부총리의 어이없는 동문서답은 당사자도 문제지만 주변에서 거들었던 '참모'들의 행태를 봐도 그 '능력'은 이미 증명이 되고 있다. 그 참모들도 기재부 내에서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라는 직원이라고 평가되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 나올 수 있었으리라. 최근 커다란 논란을 빚었던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10억 원으로 정한 것은 바로 기재부였다.

엊그제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박근혜 정부 때의 한일 양국 간 위안부 및 강제징용 합의를 번복할 수 없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인터뷰 기사를 게재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시민단체들이 곧바로 이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물론 이 대통령의 본뜻은 김대중 ⸱ 오구치 선언문을 뛰어넘는 새로운 양국 간 선언이 필요하다는 취지였을 것으로 생각하고 싶다. 이 역사 문제는 국가정체성과 연결되어 있어 용인해준다고 하여 넘어갈 수 있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이 지점에서도 이 문제의 저변에 대통령을 둘러싼 외교 참모들의 뿌리 깊은 외세의존적 경향성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 직속 인재위원회를 가동하라

최근 국정 운영 지지율 하락이라는 여론조사 결과들이 잇따르고 있다. 물론 쏟아져 나오는 여론조사를 모두 신뢰할 수는 없다. 정권 출범 이후 점진적인 지지율 하락이란 필연적 현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최근의 하락 현상에는 새 정부에 부합하지 못한 각료들의 언행이 반영된 측면 역시 부인할 수만은 없다.

인수위도 없이 시간에 쫓겨 정부가 구성된 만큼 인선 문제에 있어 시행착오가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점은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더욱 문제가 되는 점은 각료들의 언행이 확실하게 잘못되었을 때도 그 어떤 사과나 시정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분명한 것은 차후 이러한 문제들이 계속 이어질 경우 정부의 신뢰도가 급속하게 추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일련의 문제에 있어 반드시 확실한 개선 조치가 뒤따라야 하며, 만약 여의치 않을 경우 해당 장관에 대한 단호한 교체 조치가 있어야 한다. 인사는 만사다. 정권의 성패를 가름하는 핵심적 관건이다. 이 중차대한 인사 관련 프로그램을 근본적이고 구조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직속의 인재위원회가 강력하게 가동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새정부 경제성장전략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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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준섭

1970년대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학생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몸담았으며, 1998년 중국 상하이 푸단(復旦)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2004년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일했다.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2019), <광주백서>(2018), <대한민국 민주주의처방전>(2015) , <사마천 사기 56>(2016), <논어>(2018), <도덕경>(2019)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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