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일 전 주일대사, 광복 80년, 한일수교 60년을 맞이하면서

강 전 대사 "'과거사' 현재와 미래의 문제... 진정성있는 사과·반성있어야"

을사늑약 체결 120년, 광복 80년, 한·일 국교 정상화 60년을 맞은 올해, 한·일 양국은 셔틀 외교 복원과 한·미·일 협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과거사’ 문제와 국민 감정, 그리고 양국 정치 환경 변화는 여전히 두 나라 관계를 흔드는 요인이다.

▲강창일 전 주일대사.ⓒ프레시안

프레시안은 강창일 전 주일대사를 만나 한국이 주도적인 외교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전략과, 한·일 관계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조건에 대해 들어봤다.

다음은 강창일 전 대사와의 일문일답이다.

프레시안 : 올해는 을사늑약 120주년, 광복 80주년, 한일수교 60주년이다. 한·일 양국은 셔틀 외교 복원에 공감대를 형성했고, 북·중·러 공조에 대응하는 한·미·일 협력을 강조하고 있는데, 한국이 이들 열강 속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강창일 전 주일대사 : 한국은 이미 1인당 국민총생산에서 일본을 추월했다.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총소득은 3만 6천여 달러로, 인구 5천만 이상 국가 중 여섯 번째 위치에 있다. 더 이상 빈곤한 변방의 후진국이 아니라, 경제력·군사력·총생산·IT 문명·문화콘텐츠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글로벌 선도국가로 자리 잡았다.

이제는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를 표방하며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당당히 내야 한다. 우선 미국·일본과는 확고한 외교 전략을 바탕으로 안보·경제 등 전 분야에서 손을 잡아야 한다. 중국·러시아와는 전략적 제휴를 강화하고, 특히 경제 분야에서 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 북한과도 긴장 완화 정책을 통해 관계를 복원하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진지한 협상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프레시안 : 이재명 대통령은 "일본과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과거사’ 문제는 분리해 해결한다"는 투트랙 접근법과 실용외교를 강조하고 있다. 정부에 지속 가능한 한·일 관계 방안을 제언한다면?

강창일 전 주일대사 : ‘과거사’ 문제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일이다. 지우려 해도 지울 수 없는 사실이 존재하며, 이를 직시하면서 양국의 현재와 미래를 논해야 한다. 강도 행위를 반성하지 않는다면 한시도 마음 놓을 수 없다.

일본은 한국을 자극하는 행동을 삼가고 상처 치유에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한국도 과거에 지나치게 얽매여 무언가를 취하려는 정략적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특히 ‘과거사’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프레시안 : 일본 주류 정치인들이 한국 침탈에 대한 책임이나 사과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일본 정부나 사회적으로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나 성찰의 움직임은 있는가?

강창일 전 주일대사 : 우경화된 인사들은 ‘식민지 근대화론’이나 ‘합법적 병합’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또 “사과했는데 왜 시끄럽게 하느냐”는 식이다. 반성과 사죄는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진정성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과거사 문제 해결을 위한 진심 어린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를 전제로 한·일이 손을 잡아야 하고, 진정한 이웃이 되어야 한다.

프레시안 : 현재 일본의 정치적 상황이 한국에 미칠 영향은 무엇인가?

강창일 전 주일대사 :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은 중의원에 이어 참의원에서도 과반을 지키지 못해, 여소야대 국면이 리더십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일본은 1994년 공직선거법 개편 이후 여소야대 상황이 지속돼 왔고, 연립 정권이 자주 등장했다. 현재도 그런 상황이다.

이시바 총리가 장기 집권할지는 미지수다. 오래 가지는 못하겠지만, 당장 대안이 보이지 않아 연말까지는 버틸 것으로 본다. 그는 ‘과거사’에 대해 열린 시각을 가진 좋은 파트너이므로, 재임 중에라도 양국 관계 회복에 기여하길 바란다.

프레시안 : 한국과 일본 간 정치 지도자의 교체가 한·일 외교의 연속성을 약화시킨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강창일 전 주일대사 : 정부의 연속성은 무시할 수 없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비정상’과 ‘사유화’가 외교 무대에 드러나 국격을 떨어뜨리고 국민 자존감에 큰 상처를 줬다. 얻는 것은 없이 일방적으로 퍼주면서 ‘굴욕외교’, ‘굴종외교’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재명 정부에서는 이를 정상으로 되돌려야 한다.

프레시안 : 일본 젊은 세대의 역사 인식이 기성세대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강창일 전 주일대사 : 한국은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선진국이며, 양국 젊은 세대는 이를 잘 알고 있다. 일본 기성세대는 인정하기 싫을 수 있지만, 수평적·대등한 관계를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히 K-콘텐츠의 세계적 위상과 한국의 경제력 성장을 인정하면서 과거의 우월감은 크게 줄어들었다. 이제 젊은 세대는 타자화·객관화된 시각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경향이 일반화돼 매우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프레시안 : 한·일 양국이 반드시 협력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강창일 전 주일대사 : 한국의 진취성과 도전성, 일본의 섬세함과 치밀함이 결합하고 양국의 기술·자본·시장이 손을 잡으면 엄청난 시너지가 날 것이다. 상호 존중을 원칙으로 협력한다면 그 파급력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을 것이라 확신한다.

프레시안 : 한·일 과거사 ‘합의’를 위해 가장 중요한 선결 요건은 무엇인가?

강창일 전 주일대사 : 우선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한국도 담대하게 미래를 보고 접근해야 하며, 감정적 반일주의나 맹목적 친일주의는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역사 왜곡과 조작이 있어서는 안 되고, 상식적인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봐야 한다. 결국 서로의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역지사지’ 자세가 필요하다.

프레시안 : 외교적 접근과 ‘과거사’로 인한 국민 감정 사이의 괴리를 메우기 위해 정치·외교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가?

강창일 전 주일대사 : 부정하지 말고 안고 가야 할 짐이다. 진정한 이웃이 되겠다는 마음가짐과 상호 존중이 중요하다. 그것이 양국과 국민 모두에게 이로운 길이다.

프레시안 : 23일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는 길에 일본에서 정상회담을 하기로 했다. 어떻게 전망하는가?

강창일 전 주일대사 : 자주 만나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국 트럼프 정부 시절의 관세전쟁이나 방위비 문제처럼 한국과 일본이 같은 처지에 놓이는 경우가 있다. 이제는 공동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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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창민

제주취재본부 현창민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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