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하고 사과하면 조국의 시간이 온다

[오찬호의 틈새] 증거 조작이면 사면이 아니라 재심을 하라

잘못한 게 없다면, 그 불공정한 사회를 어찌 설명할 것인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조국혁신당이 비례대표 12석을 얻을 거라고 예상한 정치평론가는 아무도 없었다. 많아야 6~7석이었으니, 두 배가 넘는 결과였다. 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는 조국혁신당' 프레임이 잘 먹힌 결과라는데 이런저런 원인들이 무엇이든, 그걸 추동시킨 정서의 시작은 단연코 조국이라는 사람이다. 좋아서 혹은 애처로워서일 건데, 전자로만 687만 표라는 큰 덩어리를 설명하긴 힘들다.

일등 공신은 한동훈이다. 그는 '이조심판'이라는 말로만 유세를 했다. 이재명과 조국을 동시에 겨냥한 신박한 단어 조합이라 생각한 것 같은데, 한동훈은 여당의 대표였다. 청사진을 제시하며 믿어달라고 해야 할 위치였다. 대통령이 윤석열인데 무슨 청사진이 있겠냐고도 하겠지만, 그래도 계엄 전이었다. 게다가 윤석열은 취임 이후 줄곧 이전 정부 탓만 해왔기에, 저런 태도는 한심해 보였다. 야당이 부르짖는 국정심판과 같은 심판이 될 수가 없었다.

정치는 생물, 한동훈이 증명했다. 그가 말할수록 사람들은 찡그린다. 정치 초보의 티를 벗어나지 못한 특유의 가벼운 입담과 빈정거림 가득한 표정도 한몫했다. 이와 비례해 그전까지 조국을 안쓰러운 영역에서만 바라본 이들도 꿈틀거린다. 여러 생각이 교차되면서, 투표용지의 한 칸에 꾹 도장을 찍는다. 검찰이 심했다면서 말이다. 이 정서, 올해 대통령 선거를 거치면서 더 커졌다 이재명을 이기려면 국민의 힘은 밤낮 혐의가 어쩌고 재판이 어쩌고를 떠들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자연스레 표적 수사다, 별건 수사다 등의 이야기가 겹쳐졌고, 사람들은 그게 그만한 사건인지를 놓고 떠들다가 이렇게 말한다. "검사들이 너무하긴 하죠."

이 시대 정서를 가진 이들은 조국의 사면에 무조건 동의할까? 조국혁신당을 지지하고 이재명의 압도적 승리를 기원했으면 사면에 동의해야 할까? 검찰공화국을 비판하면 조국과 그 가족의 사법 판결이 완전히 틀렸다고 말하는 것인가? 검찰 수사의 희생양이라는 표현에는, 검사들이 증거를 조작해 없는 사실을 만들었다는 논리가 포함되는가?

조국 사냥이 있었다는 걸 부정하지 않는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는 말로 유명해진 윤석열은 알고 보니 죽기보다 누구 조언을 듣는 걸 싫어하는 인물이었다. 검찰총장 후보 자격으로 조국 민정수석과 인터뷰를 할 때부터 '건방지게 지가 뭔데 나더러 검찰개혁 어쩌고를 묻냐'면서 벼르고 있었을 거다. 그리고 자신은 문재인의 부하가 아님을 보여주고자, 대통령의 최측근을 탈탈 털었다.

여기에 분노할 수 있다. 가족을 도륙했다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다. 실형 판결을 못마땅해할 수 있다. 형량이 과하니 사면받길 희망하는 것도 자유다. 하지만 명명백백 무죄이기에 사면받아 마땅하다면, 이거 참 대화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조국은 잘못을 한 게 전혀 없다면, 그런 불공정 사회를 자녀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이다. 훗날 청소년들이 세 번의 재판에서 일관되게 드러난 분명한 사실을 물을 때, 다 조작이라고 할 것인가? 검사와 판사가 짜고 친 고스톱이 아니라면, 원래 아무런 문제가 없는 행동이었다고 할 것인가?

인정한다고 희생양이 되지 않는 게 아니다. 거칠고 잔인한 윤석열의 무도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강성' 사면 옹호론자들은 계속 다그친다. 조국은 무결하다고. 이상하다. 그러면 사면이 아니라 재심으로 명예를 회복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인정하고 사과하면, 바람이 불 거다

2019년 8월 9일 문재인 대통령은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조국 전 민정수석을 지명한다. "특목고 규제를 외치면서도 본인 딸은 외고에 의전원(의학전문대학원)을 보낸 내로남불의 대표주자"라는 야당의 비판은 전날부터 등장했다. 따분하고 게으른 비판이지만, 일단 아무 말이나 뱉고 보는 정치권에서 그것도 야당에선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조국이 개혁의 아이콘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외면하기는 불가능했다.

언론의 취재가 이어졌다. 이를 의도적이라면서 비난하는 사람도 있는데, 조국은 후보로 지명됨과 동시에 차기 대선주자로 급부상했다. 그만한 사람을 검증하는 걸 문제 삼을 순 없다. 키워드는 '특혜'와 '스펙'으로 압축되었다. 부모가 교사라는데 꼬박꼬박 장학금을 받았다는 건, '되게 부럽네' 정도로 넘어갈 수 있지만 고등학생이 연구소에서 인턴도 하고 논문도 썼다는 건 달랐다. 똑똑해서 그런 가 보다라고 생각하기에 앞서, 도대체 저런 곳에는 어떻게 들어가냐는 한숨이 나오는 걸 막을 수 없다. 어려운 논문 제목을 보면, 진짜 본인이 쓴 게 맞냐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현란한 스펙이 너무 많았다. 대학가에서는 '그게 공정이냐'면서 철저히 밝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등장했다.

8월 25일, 조국은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에 출근하면서 "아이 문제에는 불철저하고 안이한 아버지였음을 겸허히 고백한다. 당시 존재했던 법과 제도를 따랐다고 하더라도 그 제도에 접근할 수 없었던 많은 국민들과 청년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고 말았다"는 모호한 말을 한다. 아이를 더 강하게 키웠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니, 잘못에 대한 사과가 아니라 기득권이길 포기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정도였다. 그리고 8월 27일 윤석열 검찰총장의 지시와 한동훈 반부패강력부장의 지휘로 서울대 환경대학원,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단국대, 공주대, 한영외고, 동양대 등에 대한 전방위적 압수수색이 시작된다.

이날부터의 검찰 행보를 조국사냥이라고 한다면, 이를 토론할 생각은 없다. 정치검사들의 민낯이라도 해도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겠다. 하지만 1심, 2심, 그리고 대법원까지 일관되게 조국과 정경심의 어떤 적극적인 행위가 깊숙하고 분명하게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하나하나 열거하며 부부를 잡범으로 묘사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의 리트머스 시험지 색깔은 거기까진 아니다. 적극적, 깊숙이, 분명히라는 표현까지만 하겠다. 핵심은, 당시의 시대 분위기가 어떠하든 해서는 안 되는 정직하지 않은 것들이라는 거다.

검찰이 선택적 기소를 권력으로 사용하는 것, 또 검찰이 기소한 것만을 판사가 판단하는 것의 한계를 따져볼 순 있지만 증거는 사실이었다. 법리해석의 차원에서 다툴 순 있지만 부정하긴 어렵다. 검찰이 억지로 증거라고 밀어붙이는 것과, 없는 증거를 조작해서 만들어냈다는 것 사이의 간격은 꽤 크다. 이를 무시하니, 지지자들은 여전히 흥분한다. 동양대 표창장이 무슨 의미가 있냐, 인턴 안 해도 충분히 합격할 만큼 공부를 잘했다 따위의 말을 지겹도록 뱉는다.

조국 스스로가 털면 된다. 행위에 대한 정확한 사과, 딱 한 번이면 된다. 조국은, 기회가 없는 흙수저들에게 미안하다는 식의 애매한 말만 반복하다가 2023년 7월 23일에야 "부모인 저희의 불찰과 잘못이 있었음을 자성한다"고 밝혔다. 무엇에 대한 것인지는 여전히 빠졌지만, 행위에 대한 부정을 주장하지는 않겠다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한 걸음 더 나가야 한다.

털어내면, 기회가 꿈틀거릴 거다. 조국은, 다음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사면과 복권은 시간의 문제이지 2030년 3월 27일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줄 리 만무하다. 민주당과의 조율을 위한 정치공학적 계산이 필요하겠지만 분위기는 조국에게 너무나 유리하다. 첫째, 여당에 대선급의 경쟁력을 지닌 인물이 없다. 둘째, 야당은 알아서 무너지고 있다. 윤석열 하나를 끊지 못해 저 지경이다. 그 그림자를 겨우겨우 지우고 나면 누가 대선에 나올까? 안철수? 가능성은 있지만 2012년에 이미 바람을 스스로 걷어찼기에 힘이 많이 꺾였다. 그럼, 한동훈일 거다.

이 한동훈 덕택에 조국의 바람은 커질 거다. 2002년 당내 경선에서 공격받던 노무현에게 불던 바람, 2008년 총선 공천에서의 노골적 압박을 친박연대를 통해 극복한 박근혜에게 불던 그런 바람 말이다. 두 바람 모두 엄청났다. 노무현은 갑작스러운 정몽준의 지지 철회에도 흔들리지 않았고, 박근혜는 이후 대통령 선거에서 100만 표 이상의 차이로 여유롭게 이겼다. 스토리가 있으면 내러티브는 알아서 굴러간다. 칼춤이 있으니(스토리), 안타까워서 어째라는(내러티브) 감정이 요동친다. 정치란 그런 거다. 그 칼, 한동훈이 쥐고 흔들 거다. 그게 부채인 줄도 모르고.

그 바람을 원한다면, 조국이 매듭을 지어야 한다. 인정하고 사과해라. 그러지 않으면 대선 토론회에서 표창장 직인이 잘라 붙여진 것이니 아니니를 놓고 싸울 거다. 언론들은 그때 인턴, 그때 논문, 그때 생활기록부, 그때 장학금 어쩌고저쩌고 그러면서 진위 여부를 가린다고 난리를 칠 거다. 진흙탕의 깊이만큼 분열은 선명하다. 국가에 전혀 도움이 될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결단할 만하다. 사과할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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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찬호

오찬호 작가는 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2년 간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다. 친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사회학적 시선을 바탕으로 일상 속 평범한 사례에 어떤 사회구조가 얽혀있는지를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글을 쓰고 있다. 자기계발 강박이 능력주의로 연결되어 공동체를 어그러트리는 모습을 추적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2013)를 시작으로 대학의 기업화를 비판한 <진격의 대학교>(2015), 경쟁사회의 내면을 파헤친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2018) 등 많은 책을 집필했다. 최근작으로는 <세상 멋져 보이는 것들의 사회학>(2024), <납작한 말들>(202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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