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첫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낙마했다. 단순한 인사 실패로 치부하기엔 그 상징성과 시사점이 작지 않다. 교육개혁은 새 정부의 중장기적 지향을 말해주는 지표이며 특히 초대 장관의 교육철학과 실행력은 향후 그 성과를 가늠할 잣대가 된다. 이진숙 전 후보자는 거점국립대 총장 경력이 있고 대선과정에서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의 제안자 중 한 사람이자 여성이라는 점이 고려돼 첫 교육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그러나 후보자는 도덕성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교육철학과 실천능력이라는 필수자질부터 부족했다. 이 낙마 사태는 단순히 인사상의 검증 부족 차원이 아니라 새 정부의 교육개혁 의지와 방향에 대한 신뢰도에 흠집을 내고 집권 초의 국정동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조차 자아낸다.
‘빛의 혁명’을 통해 집권한 정부이니만큼 이재명 정부가 “진짜 대한민국 건설”을 외치며 사회구조 개혁의 의지를 다지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또 내란을 뒷받침한 검찰을 비롯한 기득권 카르텔을 해체하고 빚더미에 올라앉은 국가경제를 살려 민생을 챙기는 것이 급선무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렇지만 중장기적으로 그 못지않은 개혁이 요구되는 것이 교육부문이다. 교육은 눈앞의 생계문제만큼 시급하게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불평등이 대물림되는 구조 속에서 가장 폭발성이 큰 난제 중 하나다. 교육이 기득권적인 계급 재생산의 중심축으로 작동하는 한, 아무리 다른 분야에서 개혁이 진척되더라도 ‘공정’에 대한 사회적 신뢰는 회복되기 어렵다. 오늘날 청년들의 좌절, 지역소멸, 저출산추세, 과도한 경쟁풍토 등 국가위기를 구성하는 요소들 대부분은 바로 교육 불평등구조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구조화된 대학서열체제는 수도권 과밀과 지역의 공동화(空洞化)를 부추기고 교육문제를 넘어 국가의 균형발전을 심각하게 저해한다. 민주당이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교육부문의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배경에는 이 기획이 반드시 고등교육 영역만이 아니라 국정과제로서의 국토균형발전과 맺어져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권역마다 서울대에 버금가는 일류대를 세워서 서울 및 수도권 중심의 체제를 바로잡고 대입 과열을 완화하겠다는 발상 자체는 단순하다. 그렇지만 이 기획의 핵심은 지역살리기를 통해 수도권에 집중된 국가의 불균형 발전을 개선하자는 것으로 이 정부의 ‘진짜 대한민국’ 구상의 일환이라고 봐야 한다. 이번 낙마 사태가 개탄스러운 점은 이처럼 중차대한 목적에 부응하기에는 크게 모자란 인사가 교육부 장관 후보로 추천됐다는 것이다.
새 정부의 국정철학이 있다면 ‘실용주의’라고 할 수 있고, 그것은 이 대통령 자신의 소신과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진보냐 보수냐의 이념적 기준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하여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해결책을 통해 공익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이 실용주의가 행정적 유연성과 실행력이라는 강점과 결합하면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고 국민통합을 이룩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하지만 교육부문처럼 구조화된 기득권이 깊이 뿌리내린 영역에서 실용주의가 어디까지 개혁적 효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교육 불평등, 수도권 중심 서열체제, 엘리트 대학 독과점 관행 등은 실용적인 차원의 ‘개혁’을 넘어선 ‘변혁’적인 전망과 결합해야만 근본적 변화가 가능해진다. 과연 이재명식 실용주의가 기득권 구조의 혁파를 추진할 것인지 아니면 타협을 통한 일정한 개선에 그칠 것인지는 이 정권의 성취를 가늠하는 물음이라고 할 수 있다.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가 자신과 민주당을 ‘중도보수’라고 규정한 것은 선거국면에서 중도층을 공략하려는 전략인 면이 없지 않았다. 그렇지만 전통적인 보수가 극우화된 현재의 정치지형에서 민주당의 정치적 스펙트럼은 중도보수에서 진보에 걸쳐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재명의 실용주의가 먹고사니즘의 민생 회복 차원을 넘어서는 장기적 변혁전망과 어떻게 결합하느냐가 이 정부의 성격을 규정하는 관건이 된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은 그의 실용주의가 목적 자체라기보다 하나의 방법론이라는 점이다. 그 방법론을 통해 그가 추구하는 것이 민주적 평등사회의 구현임은 그의 핵심의제인 기본사회론에서도 엿보인다. 또한 그의 ‘실용적인’ 남북관계 인식에서도 분단체제 극복에 대한 전망이 전제돼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의 중도노선을 변혁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변혁의 전망과 맺어져 힘을 발휘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음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기득권 구조에 대한 비판의식과 결합할 때 비로소 실용주의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겠기 때문이다.
교육부문에서 실용주의를 제대로 구현하자면 어떻게 기득권 구조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공정성 논리를 왜곡시켜왔고 그것이 공익을 현저하게 저해해 왔는지에 대한 인식이 필수적이다. 초대 교육부 장관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바로 이같은 문제의식이다. 즉 ‘서울대 10개 만들기’ 기획 속에 내포된 우리 사회의 기득권 구조로서의 서울 중심 서열체제를 완화하고 그와 연루된 지역소멸의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작업이야말로 진정한 실용에 값하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새 정부 경제정책의 기조를 ‘실용적 시장주의’로 지칭한 바 있다. ‘실용적’이라는 수식어는 시장을 중시하되 공익적인 차원에서의 개입의 필요성을 언명한 것으로 이해된다. 경제 영역과는 다른 교육 영역에서는 이 수식어가 더 본질적인 의미를 띨 수밖에 없다. ‘교육의 국가책임’이라는 기본공약은 마땅히 고등교육까지 포괄해야 하며 ‘서울대 10개 만들기’ 기획도 시장주의에 매몰되지 않는 국가개입을 전제로 하는 대학체제 개편을 통해 구현될 수밖에 없다.
정권 출범기인 지금이야말로 문재인 정부의 교육정책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촛불혁명을 통해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대한민국 최초의 교육대통령”을 앞세웠지만 첫 단추를 잘못 끼움으로써 파국적인 결과를 빚었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당시 김상곤 초대 교육부장관은 진보학계 출신의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인정받아 기용되었으나 기대와는 달리 박근혜 정부의 시장주의적 구조조정 정책을 답습했을뿐더러 더 악화시켰다. 이른바 ‘선택과 집중’이라는 미명 하에 상위권 대학에 대한 집중지원과 하위권 대학에 대한 징벌적 구조조정을 정책 기조로 내세웠다. 그 결과 교육 불평등은 심화하고 지방대 소멸은 가속화됐으며, 기득권 구조의 핵심인 대학서열체제는 더 강화됐다. 그리고 불평등구조에 대한 이같은 부실한 대처가 결국 ‘조국 사태’라는 이름의 반역을 초래한 공정성 시비의 빌미가 됐다. 빛의 혁명으로 탄생한 이재명 정부가 전임 정부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이유는 여기에 있다.
새 정부의 교육부와 그 수장인 장관은 무엇보다 지난 30년간 지속해온 시장주의 편향의 대학정책을 공공적인 고려를 우선하는 정책으로 전환해나가야 한다. 지금의 국면에서 시장주의적 교육정책은 수명을 다했고, 거기서 비롯된 서울 중심 서열구조의 폐해가 초저출산율과 지역소멸이라는 국가위기를 초래한 주 원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 성과를 중시하는 이재명식 실용주의가 강고한 교육기득권 구조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지 예단하기는 어렵다. 그만큼 교육문제, 특히 대학문제는 대학입시 과열 현상과 맺어져 있어서 국민정서를 자극할 수 있는, 어떤 점에서는 정치적 폭발력이 강한 면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 난제를 실용의 차원에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풀어나갈지의 과제가 초대 교육부 장관에게 맡겨져 있는 것이다.
따라서 초대 교육부 장관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실무능력 외에도 개혁의지를 뒷받침하는 교육철학이다. 우선 핵심 공약인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거점국립대 예산 증액이나 지역의 ‘일류대’ 만들기가 아니라 지역균형발전과 교육 공공성 회복을 위한 전략적 고리라는 점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이런저런 장애들이 있더라도 교육부의 수장에게는 이를 구체적인 정책으로 구현해낼 책무가 있다. 만약 이번에도 교육개혁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다면, 그 실기는 단지 인사 실패의 문제가 아니라 정권 전체의 운명을 흔드는 악재로 번질 수 있다. 이재명 정부가 교육개혁을 ‘빛의 혁명’의 한 축으로 삼겠다면, 그 첫발을 바르게 내딛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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