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위의 거인들
얼마 전 아내와 영국 동부에 있는 중세도시 링컨셔를 방문했다. 링컨셔에는 유명한 링컨성당과 링컨성이 있다. 사실 나는 이곳을 지난 1995년 유학생 시절 방문한 적이 있다. 그래서 30년 만에 아내와 함께 찾으니 젊은 시절 과거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며 더욱 지난날의 추억과 감상에 젖었다.
링컨셔의 언덕 위에 우뚝 솟은 링컨성당과 링컨성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천 년 전 건축가들이 후손들에게 던진 도전장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 이거 한번 넘어봐!"라고 말하는 것 같다고 할까.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는 아직도 이 도전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하고 있다. 21세기의 우리가 만드는 건물들은 물론 더 높고 더 복잡하지만, 과연 천 년 후에도 사람들이 경외심을 품고 바라볼 건물을 짓고 있는가? 현대의 유리 궁전들이 중세 석조 건축물만큼 영혼을 울릴 수 있을까?
링컨성당, 하늘을 찌른 야망의 증거
링컨성당에 도착하자마자 느낀 30년 만에 인상은 "아, 이 사람들 정말 미쳤구나"였다. 좋은 의미에서 말이다. 링컨성당은 1072년에 건설이 시작되었다. 노르만 정복 이후 윌리엄 1세의 명령으로 렘프리우스(Remigius) 주교가 건설을 시작했고, 초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은 1092년에 완공되었다. 하지만 1185년 지진으로 크게 손상되어 고딕 양식으로 재건축되었고, 이 재건축 작업은 13세기 중반까지 계속되었다.
특히 링컨성당은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 약 200년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중앙 첨탑이 160미터 높이에 달했는데, 1549년 첨탑이 무너진 후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링컨성당은 당시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넘어선 최초의 건물이 되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이 되었고, 첨탑이 무너질 때까지 2세기 이상 그 지위를 유지했다. 생각해보라. 13세기 영국인들이 4500년 된 피라미드를 넘어서겠다는 야망을 품었던 것이다. 이게 바로 중세 영국인들의 "할 수 있다!" 정신 아닌가.
성당 내부로 들어서면 "딘의 눈(Dean's Eye)"과 "주교의 눈(Bishop's Eye)"이라 불리는 두 개의 장미창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딘과 주교가 서로 눈치게임을 하는 것처럼 남북에서 마주보고 있는 이 창문들은, 마치 "누가 더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들 수 있나" 하는 중세판 경쟁 프로그램 같다.
빅토리아 시대의 작가 존 러스킨은 이 성당을 "다른 어떤 성당 두 개와도 맞먹는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성당이 건축사의 교과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앵글로-노르만 로마네스크 양식부터 초기 영국 고딕 장식까지, 마치 건축학도들을 위한 야외 박물관이다.

링컨성, 권력의 게임이 벌어진 무대
링컨성당 부근에 있는 링컨성은 윌리엄 정복왕이 11세기 후반에 기존 로마 요새터에 건설한 주요 중세 성곽이다. 정복왕답게 거창하게 시작했지만, 이후 이곳에서 벌어진 일들을 보면 영국사의 드라마틱한 순간들이 모두 압축되어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인물은 니콜라 드 라 헤이(Nicola de la Haye) 부인이다. 성의 사령관으로서 1217년에 성을 방어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여성이 군사적 지휘권을 행사한 드문 사례다. 요즘으로 치면 여성 CEO가 적대적 인수합병을 막아낸 격이랄까.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1644년 영국 내전 중 링컨 공성전(攻城戰, 성城을 공격攻하는 전투)에서는 왕당파가 의회파에 패배했다는 기록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복왕이 왕권 강화를 위해 지은 성에서 왕권이 제한되는 순간을 맞게 된 셈이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이보다 극적일 수 있을까.
현재 링컨성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마그나카르타 원본이다. 현존하는 네 개의 마그나카르타 원본 중 하나와 숲 헌장(Charter of the Forest은 1217년 영국에서 제정된 중요한 문서로, 마그나카르타와 함께 발표된 동반문서)을 볼 수 있다.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이 문서를 보고 있으면, 800년 전 귀족들이 존 왕에게 "좀 제발 정신 차리고 나라를 다스려라"라고 외쳤던 절규가 들리는 듯하다.
성벽 위에서 바라본 천 년의 풍경
21세기에 대대적인 복원을 거쳐 성벽을 따라 걸을 수 있는 유리벽 산책로 "월 워크(Wall Walk)"가 건설되었다. 이 현대적 개입이 처음에는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실제로 걸어보면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성벽 위에서 내려다보는 링컨 시내는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중세의 거리 구조가 그대로 남아 있어 천 년 전 이곳을 걸었던 사람들의 발자취를 상상해볼 수 있다. 다만 당시에는 하수도 시설이 없었으니 냄새는 상상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링컨셔 평야를 바라보는 전망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왜 로마인들이, 그리고 이후 앵글로색슨족과 노르만족이 모두 이곳을 요충지로 택했는지 한눈에 이해할 수 있다. 군사적 관점에서 보면 적의 움직임을 멀리서부터 파악할 수 있는 천혜의 입지다. 관광객 입장에서는 인스타그램 사진 찍기에 최적의 장소다.

시간의 역설 속에서
링컨에서 며칠을 보내면서 느낀 것은 시간의 상대성이다. 천 년 전 돌 하나하나가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에서,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SNS를 확인하고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
이런 대조가 우스꽝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동시에 인간 본성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천 년 전 사람들도 권력을 추구했고, 사랑했고, 질투했고, 꿈꿨다. 그들이 남긴 돌덩어리들이 여전히 우리를 압도하는 것은,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열정과 야망이 시대를 초월하기 때문이 아닐까.
귀갓길에서
링컨을 떠나면서 차 안에서 바라보니, 성당의 첨탑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간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던 이 구조물이 이제는 주변 현대식 건물들 사이에서 겸손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높이로는 밀렸을지언정,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만큼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현대의 마천루들이 과연 천 년 후에도 이런 감동을 줄 수 있을까?
링컨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은 진정한 위대함은 높이가 아니라 깊이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미래로 나아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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