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만 해외입양인 기록, 정부 책임 하에 '쿠0 창고'로 이관됩니다"

[토론회] 해외입양인들 "입양기록은 회복불가능…기재부, 긴급 예산 편성해야"

"입양의 중심에는 약속이 있습니다. 보호하고 돌보겠다는 것입니다. 그 약속이 결과적으로 냉장고에 보관되는 것으로 귀결되면 어떨까요? 7월19일, 약 20만 명 한국 입양인의 기록이 민간 입양기관에서 아동권리보장원(NCRC)의 책임 하에 정부로 이관됩니다. 70년의 입양 역사는 출생증명서, 가족등록부, 배경정보, 의료기록, 편지,여권, 사진, 그리고 옷이나 장난감도 포함됩니다. 이 모든 것들이 냉동창고, 더 구체적으로 쿠팡 배송창고(냉동 창고로 쓰이던 건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입양관련 기록물들. ⓒEARS 제공

▲입양기록이 임시 이관될 곳으로 예정된 냉동 창고로 쓰이던 건물. ⓒEARS 제공

7일 국회에서 열린 '해외입양기록의 윤리적 이관과 국가책임에 관한 토론회'에서 해외입양인이자 건설사업관리자인 정나영(Mary Bowers) 씨는 이렇게 지적했다. 입양기록물 이관은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의 비준을 위해 2023년 7월 개정된 '국제입양에 관한 특례법'에 따른 것이다.

정나영 씨는 임시보관 장소이긴 하나, 이처럼 기록물 관리 시설로는 부적합한 '배송창고'가 장소로 선정된 이유로 "기획재정부가 NCRC의 '입양 라치비움(도서관, 기록관, 박물관을 결합한 전용시설)' 건립 계획 관련 예산을 절반 이상 삭감했다"고 지적했다.

한국전쟁 직후 시작된 한국의 해외입양과 관련해 입양기록의 조작, 오류, 삭제 등은 입양인들의 가족찾기 과정에서 수십년 동안 제기됐던 문제다. 지난 3월 진실화해위원회가 해외입양과정에서 인권 침해 여부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인정된 사실이다. 또 본인에 대한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입양기관의 방어적 태도 등의 문제로 해외입양인들은 자신의 입양기록에 대해 제한된 접근권을 가졌었다.

때문에 70여년 만에 20만 명에 가까운 해외입양인들의 입양기록이 민간 입양기관에서 정부로 이관된다는 사실은 처음엔 입양인들에게 크게 환영받았다. 하지만 현재 입양인들은 "입양기록 긴급행동(EARS)"이라는 연대체를 만들어 활동을 시작할 만큼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 오경한 전북대 기록관리학과 연구원이 지적한 것처럼 "입양기록은 회복 불가능한 유일한 기록이며 이관 중 누락 및 훼손이 발생하면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해외입양인인 김오묘 보스톤 칼리지 상담심리학 교수는 올해 초부터 어떤 입양인들은 "(입양 서류를 제외한) 개인적 사진과 편지 등은 이관되지 않을 것이니 가져가라"는 통보를 받고, 어떤 입양인들은 "모두 옮겨질 것"이라고 통보를 받는 등 서로 다른 정보로 인해 혼란과 불안감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의 입양 파일은 트라우마의 현장으로 취급되지 않았고, 과로에 시달리며 자원이 부족한 사회복지사들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해야 했던 문서로 여겨져 왔습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사회복지사들은 정책과 법에 얽매여 있고, 입양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K-번호로 취급되는 시스템 속에서, 팔려간 물건으로, 한국으로 돌아온 한국인으로 보지 않는 시스템이라는 현실을 만나게 됩니다."

▲해외입양인 출신인 김오묘 교수는 이날 토론회에서 입양기록 이관 관련 현재의 논란이 입양인들을 '번호'로만 인식하는 폭력적인 입양 시스템의 연장 차원에서 일어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EARS 제공

해외입양인 킴벌리 맥키 그랜드밸리 주립대학교 교수는 "현재 임시보관 시설은 매우 부적합하다"며 "70여년의 국가적 서사를 지우려는 시도로 여겨진다"고 주장했다.

"한국 사회나 국가는 지난 70여년간 인권을 훼손한 입양 관행에서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부실한 기록 이관은 입양에 대한 구조적 폭력을 다시 재생산할 뿐입니다."

정나영 씨는 최종적인 해외입양기록관이 대전의 국가기록원, 광주의 5.18 기록관처럼 기록물 보관과 관련한 법적 기준을 충족한 시설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기록원, 5.18 기록관 등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기억에 있어서 '어떻게'가 '무엇을' 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환상이 아니라 존재하고 있는 기관들이며, 따라서 입양인들의 요구는 한국 기준으로 야심찬 것이 아닙니다. 이는 한국의 명예, 우리 공동체의 존엄성, 입양인의 정체성을 알 권리를 보호하는 일입니다. 복지부와 NCRC는 기록 이관 프로젝트의 전체 일정을 공개해야 하며, 기재부는 긴급 자금을 배정해 주시기를 촉구합니다."

오경환 연구원은 "입양기록물은 민감한 개인 정보를 포함하고 있고, 정보공개청구나 가족 찾기 요청 등의 사유로 수십년 후에 활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보존 환경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복지부 입양제도개편팀장은 7월 입양인들의 서면 질의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답변을 보내왔다.

1. 임시보관시설 승인 및 공공기록물관리법 요건 충족 관련, 아동권리보장원은 공공기록물관리법에서 정한 기록관의 시설,장비 기준을 준수하여 서고 환경을 마련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항온항습기를 설치할 예정입니다.

2. 임시보관시설 장애인 방문객 접근 관련, 입양기록물 서고는 국민 누구나 방문하시는 시설은 아닙니다. 입양인분들께서는 입양 관련 정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필요 시 방문하실 수 있으며, 이 중 장애인이 계신 경우, 방문에 어려움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3. 화재진압시스템 및 건축법 기준 충족 관련, 입양기록물 서고로 준비 중인 곳은 당연히 건축관계법령에 따른 허가를 받은 건축물입니다. 여기에 공공기록물관리법에서정한 기록관의 요건을 준수하여 서고 환경을 마련할 것입니다.

4. 입양기록물 이관 및 보관 서고 마련은 아동권리보장원 운영지원 예산 내 입양정책지원 예산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25년도 예산은 23.4억원이며, 26년도 이후는 정부 예산안 수립 과정에서 반영될 것으로, 충분한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적극 노력하겠습니다.

이날 토론회는 국회의원 윤후덕, 남인순, 이재정, 서영석, 김남희, 김선민이 주최했으며, EARS를 포함한 다수의 입양인들의 연대기구 등이 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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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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