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셀 참사 1년…유가족이 싸우지 않으면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1년] ② 우리는 여전히 싸우고 있습니다

오는 24일이면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1주기다. 이를 앞두고 아리셀중대재해참사대책위원회는 아리셀 참사 투쟁의 현재와 재판 진행 과정, 재발방지책을 담은 7편의 연재기고를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더 많은 이가 함께 추모하고 사회적 의미를 남길 수 있는 1주기를 만들고, 참사의 책임을 묻기 위해 진행 중인 재판이 진실을 왜곡하고 유가족에게 또 다른 아픔을 남기는 결말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편집자

죽은 자를 추모하고 산자를 위해 투쟁하라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1년을 돌아보며 ‘산 자는 누구를 의미하는 것이고, 죽은 자를 추모하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를 생각해 본다.

세월호·이태원·오송·무안제주항공참사,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반복되고 있는 SPC 노동자의 죽음. 태안화력 하청노동자의 죽음…. 일상을 함께 했던 이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현실이 단순히 참사 유가족과 생존자만의 분노이고 아픔일까?

그랬다. 유가족들도 남의 얘긴 줄만 알았다. 그러나 참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가까이 있었다.

하루 6명, 매년 2500여 명의 노동자가 안전하지 못한 일터와 일상 속에서 죽임을 당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자본의 이윤을 위한 탐욕에 상시 노출돼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 이들 또한 자본과 정권에 의한 잠재적 참사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산 자 역시 참사의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면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명확해진다. 왜 억울한 죽임을 당했는지 명백하게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엄중하게 처벌해 반복되는 죽음을 막아야 한다. 사회적 구조를 바꾸고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연대와 투쟁을 통해서만 산 자의 트라우마는 조금씩 치유 되어갈 것이고, 죽은 자를 진정으로 추모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됐다.

2024년 6월 24일 자본의 탐욕이 부른 기업살인

아리셀은 2022년부터 군 부대에 리튬배터리를 납품하면서 국방기술품질원의 자격 기준을 맞추기 위해 시료를 바꿔치기하고 문서를 조작해 47억 원에 이르는 부당한 이익을 취했으나, 국방부는 법적 책임을 묻는 대신 제때 납품할 것만을 강제했다. 더군다나 아리셀에서 납품받은 배터리가 폭발하는 사고는 군 부대 내에서도 세 차례 이상 있었던 상황이었다.

참사 직전 아리셀은 군납비리 적발 뒤 재납품 물량의 납품기일을 맞추기 위해 허가받지 않은 파견업체를 통해 미숙련 노동자를 대거 투입해 하루 5000개(평소 2배)에 달하는 배터리를 생산하게 했다. 외부 충격에 민감한 배터리를 고무망치로 두들겨 끼워 케이스에 넣게 했고, 이물질이 들어갔거나, 발열이 의심되는 위험한 배터리를 손으로 만져 열을 감지하게 해 분리했다가 그마저도 기일이 촉박해지자 완성 배터리에 포함시켰다.

참사 당일 현장의 CCTV를 보면 출입구 앞쪽에 납품기일을 맞추기 위한 3만 5000개의 배리가 적재되어 있고, 한 곳에 있던 배터리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하자 일반 소화기로 진화하려는 노동자들이 보인다. 38초 후 순식간에 연쇄 폭발이 일어나며 1000도가 넘는 화마가 23명의 노동자를 처참히 삼켜버렸다.

리튬배터리는 외부의 충격으로 분리막이 훼손되거나 전해질 주입 후 발열이 지속될 경우 열 폭주로 폭발해 버리는 특성이 있어, 완성된 배터리는 개별케이스에 넣어 소량씩 구분해 콘크리트로 된 공간에 보관해야 하고, 폭발의 위험이 있을 경우 리튬용 소화기나 대량의 물로만 진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23명의 노동자는 알지 못했다.

폭발사고 발생 시 리튬소화기가 없으니 일반소화기로 진화하려 하지 말고 무조건 대피해야 한다는 것은 물론 비상구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다. 그 비상구라고 하는 것마저도 일부 임직원만이 지문 인식을 하거나 ID카드가 있어야만 열 수 있는 문이라는 사실 또한 아무도 몰랐다. 내가 어떠한 위험 물질을 다루는지 모르던 미숙련 노동자들은 아무런 안전교육이나 대피 훈련 없이 자본의 이윤을 위해 납품기일을 맞추기 위한 소모품에 불과한 존재였던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법조치 65건, 과태료 82건), 업무상 과실치사상, 불법파견, 불법 건축물 개조, 소방법 위반, 사기 및 업무방해 등 아리셀은 불법의 온상이자 죽음의 공장이었다.

▲화재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아리셀 공장. ⓒ연합뉴스

공급망 상위 책임자들의 무도한 민낯

아리셀은 에스코넥의 자회사다. 엄밀히 말하자면 에스코넥의 배터리 사업부서로 기능했다. 2000억 원 이상 자본 잠식 상태임에도 에스코넥은 아리셀에 대해 지속적으로 자본을 집행·관리했고, 지분의 96%를 가지고 있었다. 아리셀과 에스코넥의 대표이사는 박순관이고 아리셀의 총괄본부장은 그의 아들인 박중언이었다.

압수수사 결과, 에스코넥이 이미 2017년~18년에 시료 바꿔치기와 성적을 조작하고 문서를 위조해, 국방부를 상대로 82억 원 상당의 부당한 이익을 취했고, 아리셀에 해당 업무를 직접 지시한 정황이 밝혀졌다. 이 모든 사실이 에스코넥이 진짜 사장임을 가리키고 있다.

이 공급망의 최정점에 삼성이 있다. 에스코넥은 삼성전자에 핸드폰 부품을, 삼성SDI에 이차전지를 납품하고 있다. 에스코넥 대표이사 박순관은 삼성시계 출신이다.

삼성은 ‘협력사 행동규범’을 통해 안전보건의무등을 다하지 않았을 경우 거래 중단 등을 강제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지금까지도 책임을 지려하지 않고 있다.

부패한 정부가 부른 사회적 참사

시료를 바꿔치기 하고 품질검사 결과를 조작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 납품받은 군납배터리에서 세 차례 폭발이 있었음에도 에스코넥과 아리셀에 아무런 법적 책임을 묻지 않았던 국방부의 태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에스코넥의 군납비리와 관련해 구속영장이 청구된 국방연구원 출신 임원의 극단적 선택이 과연 국방부의 무책임한 행태와 무관한 것인지 의구심만 증폭한다.

아리셀을 고위험사업장으로 선정하고도 사고 예방 대책이나 관리 감독을 하지 않은 고용노동부는 어떠한가? 노동부는 아리셀이 자체적으로 작성해 제출한 위험성평가서로 3년 연속 우수사업장으로 선정해 산재보험료를 감면해 줬다. 그마저도 2023년 위험성평가서는 전년도 평가서를 ‘복붙’한 것이었다.

참사 전 아리셀 공장에서 일어났던 크고 작은 몇 번의 폭발을 제대로 감독했다면, 특히 참사 2일 전인 22일 폭발사고 때 특별근로감독을 했다면 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인력이 부족해서, 사람이 죽지 않아서 특별감독을 할 수 없었다’는 게 이정식 당시 노동부 장관의 답변이었다. 노동조합과 노동자를 혐오하는 김문수 전 노동부 장관은 어떤가?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투쟁의 성과로 노동부는 ‘불법파견 감독과 인사노무 종합 컨설팅’ 결과를 발표했다. 노동부는 전국 영세중소사업장 229곳 중 83%가 법을 위반했고, 38%가 불법파견이라는 결과가 나왔음에도 파견을 합법적으로 해달라는 기업의 입장을 대변해 파견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참사의 원인이 불법적 고용구조에 있었음에도 이를 바로잡지 않겠다는 것은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외면하고 참사를 되풀이 하겠다는 말이나 다름 없다. 노동부의 발표에 참담함을 넘어 분노를 느꼈다.

참사가 벌어지면 정부는 제일 먼저 장례 절차와 공단이 지급하는 산재보험 청구에 관해 말한다. 진상규명과 책임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 재발방지 대책을 먼저 말하지 않는다. 심지어 중대재해법, 산업안전보건법 등을 집행하는 근로감독관의 직무에 관한 집무규정에 ‘2명 이상 산재사망발생시 즉시 검사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음에도 노동부는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신청하지도 않았다.

아리셀 참사 유가족의 지난 1년

유가족이 싸우지 않으면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아파하는 것도 목 놓아 우는 것도 유가족들에게는 사치다.

참사 발생 이틀 뒤 화성시로 유가족들이 모이면서 유가족협의회가 구성됐고 공동대응을 결의했다. 이후 100여 개가 넘는 지역 노동시민단체가 대책위를 구성해 함께 투쟁을 만들어 나갔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폭염과 폭우, 추위와 폭설을 뚫고 화성시, 경기도, 노동부, 국방부, 국회, 삼성, 검찰과 법원을 상대로 싸웠고, 에스코넥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며 거리투쟁도 진행했다. 그 결과 관리 감독 책임이 있는 지방자치단체로부터 6개월 간의 숙식지원(사업주에게 구상권 청구)을 이끌어 냈다. 추모공원 조성을 위한 조례제정과 부지선정 논의도 현재 진행 중이다.

참사 3개월 만인 지난해 9월에는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최초로 대표이사와 본부장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돼 구속수사가 시작됐다. 이후 검찰이 그들을 구속기소해 현재 재판 중에 있다.

박순관 대표이사는 김앤장의 입을 빌어 ‘나는 경영책임자가 아니다. 본부장인 아들이 경영책임자이고 나는 죄가 없다’고 했다. 박중언 본부장도 ‘안전 보건 의무는 미흡하지만 진행했다. 22일 폭발사고시 생산한 배터리는 참사와 인과관계가 없다’는 궁색하고 파렴치한 변명만 내놓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억울한 죽임을 당한 관리 책임자와 연구소장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군납비리와 관련해 극단적 선택을 한 에스코넥 임원에 대해서도 ‘생전 그의 전횡과 비리가 심했다’며 모든 책임을 고인에게 떠 넘기고 있다.

대표이사와 본부장은 참사 발생 다음 날 언론을 통해 국민들 앞에 사죄한다고 허리를 조아렸다. 그러나 정작 유가족들에게는 죄를 인정하거나 진심 어린 사죄를 한 적이 없다. 오히려 협의회와 대책위와의 면담을 거부 한 채 대리인을 앞세워 개별 유가족에게 접근해 중국 길림성 기준 일실수입 산정, 동의 시 위자료 5000만 원 지급, 비자에 따른 차등 지급 등이 적용된 배보상 합의서에 서명하라고 했다. 추방 협박과 처벌불원서 작성까지 요구하며 파렴치함의 끝을 보였다.

게다가 최대 주주인 박순관은 구속 직전 에스코넥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피하기 위해 대표직을 사임했다. 직무대행인 김치원은 박순관과 더불어 삼성시계 출신이다. 부사장인 강동균은 에스코넥의 2대 주주인 사내복지기금 대표로 아리셀 등재이사다. 둘은 에스코넥 설립 멤버이기도 하다.

유가족들은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민사소송으로의 전환 이전에 박순관과 박중언의 책임을 엄중히 묻고 배보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대재해처벌법상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이 있는 법인이자 진짜 사장인 에스코넥 앞에 천막을 치기로 결정했다.

3개월여 천막농성과 매일 추모문화제. 시민 선전전과 집중투쟁을 진행했으나 책임있는 이들의 사과와 면담은 단 한차례도 없었다. 임원들의 차량은 천막을 친 이후 보이지 않았고 무대응으로 일관하라는 지시도 있었다고 한다. 공장의 문은 도발을 유도하려는 듯 열려 있었고 영업방해와 손배청구를 하기 위한 CCTV로 도배돼 있었다.

공단으로 향하는 골목에 위치한 에스코넥은 하루에도 수십 대의 대형화물차량이 드나드는 곳이었다. 유가족과 대책위는 새벽 물류를 나르는 차들의 과속으로 인한 공포를 견뎌가며 농성을 지속했다.

▲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 추모 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영정과 위패를 안치한 후 슬퍼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가족들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무 성과가 없진 않았다. 배보상 일실수입 산정기준이 길림성에서 한국 기준으로 바뀌었고 위자료도 투쟁을 거듭하면서 조금씩 바뀐 안이 사측 대리인과의 교섭 자리에서 나오긴 했다.

그러나 피치못할 개인적 사정으로 중국으로 가는 유가족과 민사소송으로 갈 경우 지난한 투쟁이 될 수밖에 없음을 알기에 어쩔 수 없이 합의를 하는 가정도 늘어났다.

그럼에도 남아 있는 유가족들은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지난한 투쟁을 끝까지 멈추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형사재판에서 중대재해 참사의 책임자임을 부정하고 죄를 인정하지 않는 박순관과 박중언에 대해, 유가족에게 처벌불원서 작성을 요구하고 고인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후안무치하고 무도한 에스코넥과 아리셀에 대해 민·형사상의 책임을 엄중히 묻고 반복되는 죽음을 막기 위해서다.

기억해 주셨으면 한다. 24년 6월 24일에 멈춰 있는 유가족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아리셀 중대재해참사 유가족들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