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방송 중단 여부는 북한의 행동에 달려 있다."
합동참모본부가 6월 9일 대북 확성기 방송 1년째를 맞이해 내놓은 입장이다. 합참은 또 "현재 대북확성기 방송은 전략적·작전적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실시하고 있다"고, 중단 여부에 대해서는 "안보상황을 고려해 정부 차원의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합참이 밝힌 "북한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작용과 반작용의 악순환을 고려할 때, 한국이 먼저 행동에 나설 때라고 할 수 있다. 악순환의 시발점은 윤석열 정부의 방조 속에 대북 민간 단체의 전단 살포에 있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은 전단 살포 중단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오물 풍선을 날려보내기 시작했다. 동시에 대북 전단 살포가 중단되면 오물 살포를 중단할 수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판을 키우기로 작심했다. 대북 전단 살포가 "표현의 자유"라도 두둔하면서 조선의 오물 풍선 살포 대응 조치로 대북 방송을 전면 재개한 것이다. 그러자 조선도 온갖 괴음을 담은 대남 방송에 돌입했다. 양측에서 틀어대는 방송으로 접경 지역 주민과 군인이 큰 고통을 받아왔는데도 정부와 군 당국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변화의 조짐은 12.3 계엄 사태를 거치면서 나왔다. 대북 전단 살포를 옹호했던 통일부가 대북 단체에 전단 살포 자제를 요청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조선도 더 이상 오물 풍선을 날려 보내지 않고 있다. 조선이 공식적으로 오물 풍선 살포를 중단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언행 변화가 조선의 행동 변화를 끌어냈다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접경 지역의 일상의 평화를 앗아간 대북 확성기 방송과 대남 괴음 방송 문제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 결자해지 차원에서 방송을 먼저 시작한 한국이 이를 중단하면서 조선의 호응을 촉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물 풍선 살포 중단 사례에 비춰볼 때, 조선이 이에 호응할 가능성은 높다. 혹시라도 조선이 괴음 방송을 계속하면, 우리도 그때 가서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여부를 검토하면 된다. 이게 합참이 말한 "전략적·작전적 융통성"의 취지에 맞는다.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은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다. 또 이 대통령이 6월 4일 임기 개시와 함께 군통수권을 이양받은 지도 일주일 정도 지났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대북 방송 중단 지시를 내렸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이는 통일부가 최근 대통령실과의 교감 속에 내놓은 입장과도 비교된다. 통일부는 남북자피해가족연합회의 대북 전단 살포에 강한 유감을 표하고 중단을 요청하면서 전단 살포를 규제할 수 있는 실효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반해 합참의 정권 교체 이후에도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강조하는 대외정책의 기조는 "국익 중심의 실용주의"이다. 대북 전단 살포는 물론이고 대북 방송 역시 우리에겐 어떠한 실익도 없다. 오히려 조선의 반작용을 야기해 접경 지역 주민과 군인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고 있을 뿐이다. 안보상의 실익이 있다면 이를 '부수적 피해'라며 주민과 군인에게 양해라도 구할 수 있겠지만, 자칫 우발적 충돌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안보적으로도 역효과가 크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대북 방송 중단 지시는 이 대통령이 말한 '국민이 대통령을 잘 뽑았다는 효능감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작지만 의미 있는 실천이 될 수 있다. 접경 지역의 주민과 군인에겐 일상의 평온을, 남북 간에는 조금이나마 정치군사적 신뢰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은 최근 신간 <달라진 김정은, 돌아온 트럼프>를 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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