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가 출범했다. 내란 극복을 기치로 내건 더불어민주당의 승리다. 이재명 정부는 윤석열 일당의 내란 사태로 훼손된 민주주의 체제를 복원하고 내우외환으로 초래된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대선 과정에서 이재명 후보가 내란 극복과 함께 민생회복을 새정부의 일차적 국정과제로 제시한 것도 그런 정황에서다. '개혁'보다 '민생'을 앞세우고 '분배'보다 '성장'을 강조해온 그의 정치구호도 무엇보다 '먹고 사는' 문제가 대다수 국민의 기본 욕구라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의 민생의 피폐함이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과 차별구조에 기인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개혁'과 '민생'은 별개의 영역이 아니다. 더 공정한 '분배' 구조를 만들기 위한 개혁작업이 동반되지 않은 성장주의만으로 민생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대통령 특유의 ‘실용주의’ 노선 또한 공정하고 평등한 새로운 국가에 대한 전망과 그에 입각한 사회 대개혁의 동력과 결합하지 않으면 진정한 '실용'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실용의 기치 아래 기득권 구조를 용인하고 통합의 이름으로 문제를 봉합한다면 '빛의 혁명'의 참뜻을 저버리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정치와 경제라는 좀 더 화급한 의제 때문에 뒤로 밀려 있지만, 교육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불평등이 구조화돼 있는 것이 교육 분야이며 수도권 중심의 서열 체제와 학벌주의에 지배되어 온 교육 풍토가 공교육의 왜곡을 초래해왔던 게 우리 현실이다.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된 입시경쟁의 과열과 사교육의 번성은 이로 말미암은 것이다. 지금의 일류대 중심 교육 풍토는 일반 국민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하고 교육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교육체제를 '개혁'하는 일이 '민생'의 대의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이 제시한 교육공약은 과거 진보진영 후보들의 공약에 비해 매우 빈약하다. 민주당은 "교육의 국가 책임 강화"라는 제목 아래 △유아·초등교육의 국가 책임 강화 △기초학력 향상, 학습역량 강화 △학생 정서·신체·디지털 건강 증진 △초중고에서 시민교육 강화 △고등교육 혁신, 미래인재 양성 △직업교육 강화, 평생교육 확대 △국가교육위원회 중심 숙의와 사회적 합의 존중 △교권보호 향상 8가지 공약을 제시했다.
이 공약 대부분은 꼭 진보정권이 아니더라도 제시할 수 있는 무난한 내용이고, 그나마 교육 불평등과 서열체제 해소를 위한 혁신적 정책 방향을 말해주는 것은 '고등교육 혁신' 부문의 '서울대 10개 만들기' 추진 정도다. 그러나 이 공약은 그 자체로서도 문제가 많거니와 과거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었던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수립'이나 '공영형 사립대 정책'에 비하더라도 훨씬 후퇴한 것이다.

교육공약의 이 같은 빈약함은 계엄령과 탄핵으로 초래된 급박한 정치 일정을 감안하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동안 민주당이 교육 문제의 핵심 과제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대비가 소홀했음을 입증하고 있음도 부정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현재 교육 문제 해결의 관건이 대학 체제의 개편에 있음에도 고작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거의 유일한 대책으로 제시된 것이 그것을 말해준다. 학령인구의 감소로 특히 지역 소재 대학들이 생존의 위기에 직면해 있고 대규모의 폐교 사태조차 예상되는 국면이므로 새정부 교육정책의 성패도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 문제의 관건으로서의 대학 체제 개편이 가지는 국가적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이에 기반한 정책 방향의 설정이 새정부의 주요 과제 중의 하나가 되어야 한다.
대학 문제 해결은 급격한 인구 감소와 지역소멸의 위기에 대처하는 국가적 과제와 맺어져 있다. 보육 여건의 개선과 지원 확대에도 불구하고 초저출산 추세가 멈추기는커녕 해마다 악화해온 지난 10여 년의 정책적 실패가 그것을 입증한다.
지난해 합계출산율 0.7%는 한국이 나라 자체의 존속이 위태로운 수준의 초저출생 국가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이 초저출생의 원인이 우리 사회 특유의 극도의 경쟁적 풍토에 있음도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다. 불평등이 구조화된 사회에서 대다수의 젊은 세대에게 이 경쟁에서의 생존이 무엇보다 중요해지면서 결혼과 출산은 뒷전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생존 경쟁의 시작이 이른바 일류대 진학을 목표로 한 대학입시의 과열 현상과 맺어져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어린 시절부터 이 땅의 젊은이들을 경쟁으로 내모는 그 근원에 서울 중심의 대학 서열 체제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대학 체제의 개혁이 인구 감소와 지역소멸 극복이라는 국가적 의제와 맺어져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민주당의 대학 관련 공약 속에도 이 같은 문제의식이 부재하는 것은 아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부터가 지역의 거점국립대 아홉개를 서울대 수준으로 키워서 지역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목적을 내세운다. 공약에서는 이를 "지역거점국립대 육성을 통한 대학서열 완화 및 국가균형발전 달성"이라고 부연하고 있다. 아울러 "지역혁신과 성장을 위해 지역사립대와 협력 강화"라는 목표도 동시에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주축으로 하는 이 기획 자체가 이념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부실하기 짝이 없는 구상이라는 점이다. 우선 이 기획은 ‘서울대’라는 이름을 각 거점국립대에 붙인다는 구상에서도 볼 수 있듯, 일류대 중심주의에 편승한 정책인 점에서 올바른 개혁방안이라고 할 수 없다. 현실적으로도 이 기획이 전제하는 서울대 수준의 예산 지원은 현재의 교육예산 규모로는 거의 불가능하고, 거점국립대에 대한 그런 수준의 집중 투자는 각 지역의 중소 규모의 국립대나 경영위기로 소멸 위기에 처한 대다수 사립대를 방치하는 격이다. 권역마다 서울대 수준의 대학이 하나씩 생기더라도 지역의 대다수 대학들이 존폐의 위기에 내몰린다면 그것이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대의와 어긋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렇다면 새정부가 추진해야 할 교육정책의 가능하고 현실적인 방향은 무엇인가? 지역소멸을 막고 국토 균형발전을 실질적으로 가능케 하는 방안은 무엇인가? 그 구체적인 방안을 찾는 일은 앞으로의 정책적 과제일 것이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지금까지의 대학정책이 균형발전과는 반대되는 방향, 즉 지역소멸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결정되고 시행되어 온 점에 대한 엄정한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김영삼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 이후 지난 30년간 역대 정부는 대학 간의 경쟁을 중심으로 한 시장주의적 대학정책을 기조로 해 왔다. 이것이 수도권 중심주의를 부추기고 지역 불균형을 악화시키는 데 일조해 온 것이다. 그로 인해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망한다는 속설이 현실이 되어 있는 지금이다. 만약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추진하면서 이 같은 시장주의적 대학정책 기조를 유지한다면, 지역 대학들의 궤멸 추세는 더 촉진될 것이 분명하다.
새정부 대학정책의 기조는 지난 30년간의 시장주의 편향을 벗어나야 한다. 그것이 "교육의 국가 책임 강화"라는 새정부 교육공약의 명제를 구현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 책임의 강화는 일류대 진학이 가능한 학생만이 아니라 대다수를 이루는 여타의 학생들에게 더 절실하다. 가령 기술교육을 담당하고 주로 중하위층 출신의 학생들이 진학하는 전문대에 대해서는 서구대학들처럼 국가에서 전액 지원하여 무상화하는 방향으로 지원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지역소멸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각 지역의 중소규모 사립대들을 특성화하여 가능한 한 그 지역에서 고등교육기관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시장주의 정책이 지속되면 그 대부분은 10년 내로 폐교되거나 그럴 위기에 처할 것이다.
좋은 대학은 더 키우는 대신 나쁜 대학, 즉 인구 감소로 지원자가 줄어들고 운영이 어려워지는 지방의 대학들은 문을 닫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 정치권 일각의 시각이다. 그러나 바로 그 같은 그릇된 인식과 대처가 일류대 중심주의를 부추기고, 과도한 대학입시 경쟁을 야기함으로써 공교육의 왜곡과 사교육의 번성을 가져온 것이 아닌가? 나아가서 지역 젊은이들의 서울지향성을 강화하고 수도권의 인구 밀집과 극심한 경쟁구조를 심화시켜 그들로 하여금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게 만들지 않았는가?
서울대 수준의 대학을 각 권역마다 만들어 지역대학의 경쟁력을 살리는 동시에 국가균형발전을 기한다는 목적 자체는 인정될 수 있다. 다만 거점국립대의 수준 높이기가 지역소멸에 대한 합당한 대책이 되려면, 무엇보다 지금까지의 대학정책의 기조, 즉 경쟁을 통한 도태 방식의 구조조정 정책 기조를 공공성이 우선되는 정책 기조로 전환해야 한다. 그 같은 전환을 통해서만 대학 문제에 대한 올바른 정책적 해법이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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