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이재명, 특검 열어 '한덕수가 미국에 한 약속' 알아내야"

[정세현-박인규의 정세토크 시즌 2] "한미 정상회담은 가능한 빨리…북미 정상회담도 조언해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가 제21대 대통령선거에서 새로운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없이 바로 직무를 시작해야 하는 이재명 대통령 앞에 만만치 않은 과제가 놓여 있다. 특히 트럼프 발 관세 문제는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사안이다.

이와 관련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한덕수 대통령 권한 대행 체제에서 미국과 무엇을 약속했는지를 따져보는 것이 급선무라고 조언했다. 정 전 장관은 "한덕수 대통령 권한 대행 시절에 최상목 경제부총리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미국에 방문했고 이후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도 미국에 갔는데, 그 과정에서 윤석열 정부가 미국과 어떤 이면합의를 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4월 상황을 보면 한덕수 본인이 생각했다기보다는 한덕수를 당선시켜 윤석열 체제에서 구축된 권력을 계속 행사하려는 세력들이 일을 벌였던 것 같다. 이들이 미국과 어디까지 협상했는지, 무슨 이면합의를 해줬는지를 살펴보고 이에 대처해야 한다"며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이 지난 5월 13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하면서 한국에서 '매우 좋은 제안'(very good proposal)을 가지고 왔다고 말한 것이 우려스럽다고 평했다.

그는 "이로 미루어 보아 이들은 미국을 방문해 미국 입맛에 맞는 이야기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 즉 미국이 하자는 대로 해줄 테니 대신 미국이 한덕수를 띄워 달라고 하고, 한국에서는 미국이 한덕수를 지지하고 있으니 우리 경제와 외교, 안보를 잘 끌어가려면 '한덕수 대통령'을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을 조성하려 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 전 장관은 "한덕수 전 총리나 최상목 경제부총리, 안덕근 장관, 김태효 차장 등에게 자백을 받을 수는 없을 거고 미국으로부터 이야기 듣고 확인해야 한다"며 "미국에 유리하고 우리에 불리한 약속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계엄령 관련해서 내란에 얼마나 관계했는지 증거도 찾아야 한다. 대미협상 차원에서 이들이 했던 약속과 효력을 깎아내리려면 특검을 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박인규 <프레시안> 상임고문은 "추정의 영역이지만 일각에서는 한덕수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한덕수-트럼프 통화 내용을 언론에 흘리고, 국민의힘 지도부들이 새벽에 한덕수를 밀어올리기 위해 무리한 후보 공고를 내는 등의 행위를 하는 뒤에는 미국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며 "그동안 윤석열 전 대통령이 했던 일이 미국의 입맛에 잘 맞았으니 그걸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 한덕수를 밀어줬던 것 아니냐는"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정 전 장관은 "집권 정당성은 국민 지지로부터 나오는데 미국에서 봤을 때 이재명은 국민 지지가 높고, 한덕수는 약한 상황에서 미국이 도와줘서 대통령 후보가 되고 운 좋게 대통령까지 당선되면 미국은 윤석열 이상으로 한덕수로부터 미국의 국익을 위한 것들을 뽑아낼 수 있다"며 미국 입장에서는 그렇게 하고 싶었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박 고문은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으로 중국과 대결하고 있고 일본도 예전처럼 고분고분하지 않고 유럽도 떨어져 나가려고 한다. 그래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집권 때까지는 적어도 미국이 유럽을 끌어안으려 했지만 이제는 갈라지고 있는 형국"이라며 이재명 정부에서는 기존 외교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재명 정부도 당장은 한미동맹이 한국 대외 정책의 기반이라는 것은 인정하고 있지만, 10~20년 뒤를 내다볼 때 미국과 중국 등 주변국가들과의 외교에서 우리 나름의 균형외교를 고민해야 하지 않나 싶다"라고 조언했다.

한편 한미 정상회담과 관련해 정 전 장관은 "가능한 한 빨리 가는 것이 좋다. 미국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미 간 현안문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에 가서 대차면서도 능란한 거래를 해야 한다"며 "과거 경험으로 볼 때 한미 간 문제는 '톱다운' 방식으로 접근해야 그런대로 잘 풀리더라"라고 전했다.

그는 "6월 중순에 열리는 G7회의에서 트럼프와 상견례만 하지 말고 협상의 운을 떼는 것도 나쁘지 않다"며 "북한과 관련한 현안도 미국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북한이 핵 동결하고 비핵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북미 정상회담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정 전 장관은 "구체적으로 보면 당장 다음주 캐나다에서 주요 7개국 정상회의(G7)가 열리는데 이재명 대통령이 그 기회에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서 북미대화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하고 핵 동결 토대 위에서 비핵화로 가는 방향을 설정한 뒤에 가능한 한 빨리 북미 정상회담 통해 북한이 핵문제 해결에 전향적으로 나서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대담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오른쪽) 전 통일부 장관과 박인규 <프레시안> 상임고문. ⓒ프레시안(이재호)

박인규 : 국제 정세의 급변기라고 하지만 우리는 지난해 비상계엄 선포 이후 지난 6개월 동안 외부의 상황을 전혀 신경 쓰지 못했다. 새 정부는 인수위원회도 없이 변화된 국제 정세에 대응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당장 정부에 닥친 큰 과제로는 내부적으로는 민생경제를 어떻게 안정시킬지의 문제가 있는데, 그와 연관되어 트럼프 미 행정부가 벌이고 있는 관세 전쟁도 주요한 사안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미국이 큰 수출 시장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북한과 러시아의 안보 협력도 빼놓을 수 없는 문제다.

그런데 정부 주요 직위자 인선에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당장 처리해야 할 과제는 쌓여 있는데 일단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보나?

정세현 : 한덕수 대통령 권한 대행 시절에 최상목 경제부총리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미국에 방문했고 이후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도 미국에 갔는데, 그 과정에서 윤석열 정부가 미국과 어떤 이면합의를 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지난 4월 상황을 보면 한덕수 본인이 생각했다기 보다는 한덕수를 당선시켜 윤석열 체제에서 구축된 권력을 계속 행사하려는 세력들이 일을 벌였던 것 같다. 이들이 미국과 어디까지 협상했는지, 무슨 이면합의를 해줬는지를 살펴보고 이에 대처해야 한다.

걱정되는 부분은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이 윤석열 정부 인사들을 만난 이후인 지난 5월 13일 트럼프 대통령 면전에서 관세 협상에 대해 보고하면서 한국에서 '매우 좋은 제안'(very good proposal)을 가지고 왔다고 했다는 점이다.

이로 미루어 보아 이들은 미국을 방문해 미국 입맛에 맞는 이야기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 즉 미국이 하자는 대로 해줄 테니 대신 미국이 한덕수를 띄워 달라고 하고, 한국에서는 미국이 한덕수를 지지하고 있으니 우리 경제와 외교, 안보를 잘 끌어가려면 '한덕수 대통령'을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을 조성하려 했을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아무리 한국 국내 정치적인 계산에서 나온 제안이라고 하더라도 그 지점에서부터 새 정부와 협상을 시작하려고 할 것 같다. 그래서 이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 규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성하지맹(城下之盟)이라고, 성벽 밑에서 하는 항복의 맹세처럼 이들이 사실상 미국에 항복한 것인지 조사해봐야 한다.

처음에 한덕수 대행이 김태효 차장도 최상목 안덕근 일행과 같이 보내려고 했는데 미국 쪽에서 거절해서 못 갔다고 하더라. 김태효 차장이 나중에 별도로 미국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언론에 알렸는데, 그간 김 차장의 성향으로 보면 한국보다는 일본 입장에서 한미일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쪽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우리가 역할을 할 수 있으니 3각 관계를 강화하자고 했을 것으로 보인다.

김태효 차장은 윤석열·김건희 부부보다는 일본의 심부름을 하는, 즉 대통령 부부를 싸고 도는 카르텔이 김태효를 이용해서 한덕수를 키우는 그림을 그리자고 하는 속에서 움직였다고 봐야겠지만, 평소에 그가 보여 왔던 성향을 고려해 보면 한국보다는 일본이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미국에 가서 하면서 그 맥락에서 한국의 입장을 이야기했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안보 면에서 일본 편을 들면서 미국이 원하는 한미일 안보 동맹 정도까지 이야기하며, 대신 관세 면에서 혜택을 봐야겠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안보 문제에서 미국의 요구를 들어줄 테니 관세 좀 줄여주고 우리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를 많이 하도록 압박하지 말라는 식으로 일을 꾸몄을 수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전 대통령이 벌인 비상계엄 선포 관련해서도 CCTV가 나오니까 이제야 진실이 좀 나오지만, 한국 대표단이 미국에서 한 일은 CCTV도 없고 녹음도 없어서 명확한 규명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그런 와중에 미국에서 우리에게 "당신 나라 대표단이 약속한 건데 정권 바뀌었다고 없던 일이라고 할 수 없지 않냐"라고 요구하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앞으로 한미관계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꿔나갈 힘도 없고 그러면 윤석열 정부 사람들이 해놨던 것을 토대로 협상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다. 미국에 투자를 얼마나 해야 할지, 그를 통해 관세는 얼마나 낮출 수 있을지 등등의 결정이 이전 정부와 미국 간 합의로부터 도출될 수 있다.

물론 우리도 내수경제가 있지만 우리 경제가 사실 밖에서 돈을 벌어서 그 돈을 국내에서 돌려야 하는 구조다. 골목상권 살리려고 지역화폐 제도 실시해서 돈을 풀면 일단 숨은 돌릴 수 있으나 이걸 계속 돌리려면 외부로부터 재원이 들어와야 한다. 여기서 가장 큰 변수가 미국이다. 미국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외부로부터 재원 유입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박인규 : 트럼프 입장에서는 안보보다는 경제 측면에서 무엇인가 더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정세현 : 트럼프는 장사꾼이라 관세와 안보를 연계시키려 할 것이다. 물론 냉철하게 볼 때 트럼프는 일본 또는 김태효 차장이나 국내 친일파만큼 한미일 동맹을 중시하지는 않는 것 같다. 우선 본인이 밀어붙이고 있는 관세에서 업적을 내면 되는 거고 한미일 동맹은 미국이 중국을 압박해 들어가는 과정에서 도움이 되는 정도로만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인규 : 전 정부 일이라고 해도 어쨌든 한미 간 외교적 사안인데 말씀하신 대로 조사가 어렵고, 실제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정세현 : 한덕수 전 총리나 최상목 경제부총리, 안덕근 장관, 김태효 차장 등에게 자백을 받을 수는 없을 거고 미국으로부터 이야기 듣고 확인해야 한다. 이야기를 맞추다 보면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지 않겠나.

물론 새 정부가 들어섰기 때문에 이전 정부 사람들이 했던 약속이나 양해 사항 등에 대해 미국이 우리에게 100% 그대로 승계하라고 요구하지는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한 번 들은 이야기를 아예 없었던 것으로 취급하지는 않을 것 같다. 새 정부가 한덕수 체제 하에서 한국이 미국과 했던 약속이 그대로 이행되지 않도록 막후 교섭을 해야 할 수도 있다.

미국에 유리하고 우리에 불리한 약속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계엄령 관련해서 내란에 얼마나 관계했는지 증거도 찾아야 한다. 대미협상 차원에서 이들이 했던 약속과 효력을 깎아내리려면 특검을 할 수밖에 없다.

한덕수 체제에서의 당국자들이 안보 문제와 분담금 문제, 조선 사업에 대한 워킹 그룹 등을 약속했을 수 있다. 이 사람들이 한 약속을 이재명 정부가 그대로 계승할 수는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서라도 특검으로 수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되면 미국도 어쩔 수 없게 되는 측면도 있다.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 및 국제통화금융위원회(IMFC)'에 참석차 미국 워싱턴D.C를 방문중인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함께 4월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재무부에서 열린 '한-미 2+2 통상협의(Trade Consultation)'에서 기념 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안 산업부 장관, 최 부총리,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 ⓒ연합뉴스

박인규 : 추정의 영역이지만 일각에서는 이런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덕수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한덕수-트럼프 통화 내용을 언론에 흘리고, 국민의힘 지도부들이 새벽에 한덕수를 밀어올리기 위해 무리한 후보 공고를 내는 등의 행위를 하는 뒤에는 미국이 있다는 관측이다.

즉 그동안 윤석열 전 대통령이 했던 일이 미국의 입맛에 잘 맞았으니 그걸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 한덕수를 밀어줬던 것 아니냐는, 미국 입김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정세현 : 집권 정당성은 국민 지지로부터 나오는데 미국에서 봤을 때 이재명은 국민 지지가 높고, 한덕수는 약한 상황에서 미국이 도와줘서 대통령 후보가 되고 운 좋게 대통령까지 당선되면 미국은 윤석열 이상으로 한덕수로부터 미국의 국익을 위한 것들을 뽑아낼 수 있다.

한덕수가 특별한 업적도 없는데 한미관계에서 대단한 성과를 낸 것처럼 키워주고, 그게 도움이 되어 대통령으로 만들면 한덕수는 미국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게 되니까. 미국은 그렇게 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과거에는 국내 정치적으로 정통성이 부족한 정권이 이렇게 하는 경우가 있었다. 예를 들면 군사정권의 경우 집권 이후 하루라도 빨리 미국에 가서 미국 대통령과 사진을 찍어야 우리 국내에서도 '미국에서 인정받았으니 우리는 별로 지지하지 않지만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 지지하니 어쩔 수 없지' 라는 여론이 조성된다는 점을 고려했다. 조선왕조 시대에 명나라 청나라로부터 책봉을 받던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이재명에 대해 미국이 가지고 있는 의구심은 이재명이 '국익 중심 외교', '실리 외교'를 하겠다고 한 부분일 거다. 윤석열은 가치외교라는 걸 표방하면서 한미동맹 지상주의를 지향했었는데 이재명은 가치 아닌 실리를 택하겠다고 한다. 이거 하려면 한국 경제 규모나 구조의 특성으로 봤을 때 지리적으로도 가장 가까이 있는 중국과 관계를 과거 문재인 정부 때만큼이라도 회복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미국은 자신들이 추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이 탄력을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미국 입장에서 미중 갈등 시대에 중국 압박 전략의 최전방은 한국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최근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한국을 중국 앞바다에 떠 있는 '항공모함'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 않았나.

그런데 주한미군은 기지를 용산에서 평택으로 옮길 때 이미 북한의 대남 군사적 위협을 저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했다. 중국을 압박해 들어가야 하는 미국 입장에서 그동안 윤석열 전 대통령이 한미일 군사 협력을 강화하며 첨병노릇을 잘해줬는데 이재명 대통령이 실리 외교, 국익 외교 한다고 하니, 이재명 대통령이 한국 내 보수세력의 눈치를 봐야하기 때문에 차마 '반미'까지는 못하더라도 윤석열 같은 '반중' 외교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미국은 판단할 것이다.

예를 들어 최상목 부총리의 경우 대통령실 경제수석 시절에 중국을 통한 수출 호황의 시대는 끝났다고 했는데, 이재명 정부에서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미국도 알고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런 문제가 있어서 미국은 한국 정부를 계속 감시하려 들 것이다.

박인규 : 미국 입장에서는 민주적 정통성이 있는 이재명 정부가 미국의 국가적 목표와 충돌될 수도 있다고 판단한다는 것인가?

정세현 : 그렇다. 그래서 이재명 정부가 내각을 발표하기 전에 외교·안보 분야에서 소위 '친미' 성향이 의심스러운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여러 방법으로 미국이 압력을 가할 수도 있다.

예전 김영삼 정부 때 미국은 한승주 외무부 장관을 매우 좋아했다. 당시 정부에서 국익 외교를 해야 한다는 정종욱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따돌리고 미국 중심으로 가려고 했는데, 한승주 장관이 여기에 선봉에 서서 미국의 요구를 받아주는 역할을 했다.

박인규 : 안보실 인원들이 김태효 차장처럼 미국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받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안된다는 뜻인가?

정세현 : 그렇다. 어떻게 구성할 진 모르겠는데 실장과 그 아래 인사들이 이재명 대통령처럼 국익이나 실리에 입각한 외교 하겠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미국이 하자는 대로 하자는 인사로 갈지가 관건이다. 미국은 여기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을 수 있다.

미국이 영향력 행사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여기저기 물어봐서 정보 수집하면 된다. 한국 사람들은 미국에서 좀 유력한 사람이 물어보면 알아서 술술 다 자백하지 않나. 그러면서 미국이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이야기하고, 그러면 이게 이재명 대통령 귀에 들어가면서 인사에 아무래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런데 미국만 바라보는 인사를 앉히면 낭패를 볼 수 있다. 미국 말고도 우리에게 큰 영향을 주는 국가로 중국도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개혁개방 30년 만에 G2 반열에 올라섰고 2021년에는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달성했다. 2049년에는 국내총생산(GDP) 총액에서 미국에 앞서겠다고 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는 2035년 되면 미국이 중국보다 뒤쳐질 수 있다고 예측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까 트럼프가 이렇게 발버둥을 치는 것이기도 하다.

헨리 키신저는 <온차이나>(On China) 라는 책에서 2012년 이미 미국을 '디클라이닝 컨트리'(Deciining Country), 즉 쇠퇴하는 국가로 규정했다. 그리고 중국을 상승하는 국가(Rising Country)라고 규정했다. 요즘 일부 전문가들이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전년 대비 낮아진다면서 어려워질 수 있다고 하지만, 처음에 이미 고속 성장을 했기 때문에 경제 규모가 커지면 그 다음부터는 일정 부분 성장률은 낮아질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그리고 중국 경제가 갑자기 나빠지기기 쉽지 않다. 일단 중국 내부에 14억 시장이 있고 천연 자원, 특히 희토류가 절대적으로 많다. 그런 의미에서 새 정부 인사는 미국 편향이 아닌, 대한민국 외교의 '자국중심성'을 가진 사람이 들어가야 하는데, 미국이 이를 여러 방법으로 견제할 수 있다.

한편으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소위 '모피아(Mofia)' 인사를 시키면 안 된다. 기득권 카르텔이 국가재정운영을 다 말아먹는 걸 막기 위해서다. 따라서 예산실도 재경부에서 분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산실은 어느 지역에 무슨 사업을 배정하는지를 결정하는 곳으로, 예전에는 경상도 출신들이 장악했다고들 한다. 이런 큰 권력이 있는 기관을 기재부에 붙여 놓으니 기재부가 부처 중의 부처인 '왕부처'가 된 것 아닌가. 기재부 부총리가 총리보다 세기도 하고,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대통령 말도 잘 안 듣는 경우가 많더라. 얼른 분리해야 한다.

▲한덕수 대통령선거 예비후보가 지난 5월 11일 서울 여의도 캠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인규 : 그런데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건 국내 경제문제다. 집권 3개월 이내에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고 하는데, 올해 안에라도 민생 경제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하지 않나.

정세현 : 이재명 후보를 지지한 다수의 유권자들은 골목상권이 살아나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려면 앞에 말한 대로 돈을 풀어야 하는데, 이게 계속되도록 하려면 외부에서 돈이 들어와야 한다. 경제 규모를 키워야 지방 경제도 커지는 것이다.

즉 국민들의 구매력을 높이려면 처음에 시동 거는 것은 내부 자원으로 가능하지만 그것이 지속가능하기 위한 원천은 밖에서 들어와야 한다. 그래서 관세 문제를 잘 해결해야 할 필요도 있다.

유럽도 일본도 시간을 질질 끌면서 트럼프 요구를 바로바로 들어주지 않고 계속 밀고 당기기를 하며 자기들 이익을 확실히 지키고 있는데, 우리도 미국 상대로 그런 외교를 해야 한다.

북한과 당장 대화 어렵다…북미, 북일 접촉 분위기 조성해야

박인규 : 새 정부가 북한과 관계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가져가야 하나? 당장 북한은 '두 국가'를 선언하면서 남한과는 상종을 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세현 : 당분간 남북 대화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 2023년말 김정은의 '두 국가' 선언 이후 '통일'이니 '민족'이니 '조국'이니 하는 말들을 못 쓰게 하고 있다. 남북이 하나라는 생각을 하지 못 하도록 하기 위해서 북한 애국가에서 '삼천리'라는 말이 들어가는 가사도 없앴다.

북한은 남한 문화가 북한 젊은이들의 사상을 오염시켰다고 본다. 그래서 반동사상문화배격법(2020년), 청년교양보장법(2021년), 평양문화어보호법(2023년) 등등 줄줄이 만들어서 남한 정보 유입 차단하고 심지어 남한 말투, 남한 패션 흉내 내는 것도 단속하고 있다.

이건 북한이 남북교류와 왕래에 겁을 내고 있다는 방증이다. 북한 젊은이들이 소위 '남한화'가 되면 백두혈통이고 뭐고 없는 거고 자칫 김정은의 존재 이유도 부정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와중에 윤석열 정부가 장기집권을 하기 위해 북한을 핑계로 소요 사태를 일으키려고 하니까 북한이 윤석열의 의도를 눈치채고 걸려들지를 않았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철도 끊고 도로 파내고 비무장지대 내에서도 장벽을 세우면서 철저히 남한을 차단하고 있다. 정신적으로 '남한화'를 경계하는데 이걸 막으려면 물리적 장벽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셈이다.

박인규 : 북한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하면서 러시아로부터 체제 유지에 필요한 경제적 지원을 받은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정세현 : 북한이 참전 대가로 지원을 받았겠지만, 많은 도움이 됐을지는 의문이다. 러시아 극동 연해주 쪽 경제 역량은 유럽 쪽 러시아하고는 다르다. 북한이 받아먹을 것이 별로 없다. 북한은 러시아에 어차피 구형이 돼버린 무기를 소진시키고 그 대가로 기술 내놓아라, 새 무기 달라고 할 것이다. 특히 핵과 미사일 관련한 고급 기술을 달라고 떼쓰는 것 같은데 러시아가 쉽게 안주는 것 같다.

박인규 : 북한이 브릭스(BRICS)에 들어갈 가능성은 있을까?

정세현 : 브릭스 나라들은 자원이 많든지 인구가 많든지 땅덩어리가 크든지 하기 때문에, 그들이 뭉치면 힘을 쓸 수 있는 거다. 북한이 브릭스에 들어가서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을 만큼의 자원이나 수출 상품이 있나? 북한은 손 벌릴 일 밖에 없다. 설사 러시아가 북한을 브릭스에 넣어준다고 해도 러시아나 중국이 지원을 안 해주면 북한은 살아나가기 어렵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24년 1월 24일 앞으로 10년 동안 매년 20개 시-군(郡)에 공장을 건설한다는 '지방발전 '20X10정책'을 발표했지만, 공장 건물만 지어두면 뭐하나? 밖에서 원부자재가 들어와야 공장이 돌아갈 수 있다. 그걸 쉽게 줄 수 있는 건 G2 반열에 올라 있는 중국인데, 북한이 러시아랑 가까워지니까 중국이 다리 놓는 것도 애먹이는 등 전략적 차원에서 견제하고 있다. 그렇게 북한을 힘들게 해야 다시 중국으로 올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이 인태전략 앞세워서 중국을 압박해 들어오고 있는 와중에 북한이 완충지대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러시아랑 붙어 있어 이런 역할 해주지 않고 있으니 북러 간 밀착이 불편한 것이다.

경제 물자가 부족하면 위로부터 지시가 내려오는데, 밑에 있는 사람들이 그 압박에서 벗어나려면 뇌물을 쓸 수밖에 없다. 결국 '20X10정책'도 소리는 요란한데 빈 통 두드리는 셈이다. 이른바 '부족의 악순환'에 빠진 것인데, 도로 상태가 별로고 기름이 없어서 차량 움직임도 적은 상황에서 설사 새로 지은 공장에서 뭔가를 만들어 낸다 해도 이를 북한 곳곳으로 살아 보낼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은 3월 22일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3월 21일 러시아 안전이사회대표단을 인솔하고 우리 나라를 방문하고 있는 안전리사회 서기장 세르게이 쇼이구(왼쪽에서 두 번째) 동지를 접견했다"라고 보도했다. ⓒ로동신문=뉴스1

박인규 :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으로 중국과 대결하고 있고 일본도 예전처럼 고분고분하지 않고 유럽도 떨어져 나가려고 한다. 그래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집권 때까지는 적어도 미국이 유럽을 끌어안으려 했지만 이제는 갈라지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재명 정부도 당장은 한미동맹이 한국 대외 정책의 기반이라는 것은 인정하고 있지만, 10~20년 뒤를 내다볼 때 미국과 중국 등 주변국가들과의 외교에서 우리 나름의 균형외교를 고민해야 하지 않나 싶다. 일단 중요한 건 정상외교 시점이 될 텐데 미국은 언제 가야 할까?

정세현 : 가능한 한 빨리 가는 것이 좋다. 미국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미 간 현안문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에 가서 대차면서도 능란한 거래를 해야 한다. 과거 경험으로 볼 때 한미간 문제는 톱다운 방식으로 접근해야 그런대로 잘 풀리더라.

관세 문제도 우리 처지도 생각해 달라고, 어쩔 수 없이 중국과 거래할 수밖에 없고 그래야 미국 무기도 사지 않겠냐는 이야기도 해야 한다. 6월 중순에 열리는 G7회의에서 트럼프와 상견례만 하지 말고 협상의 운을 떼는 것도 나쁘지 않다.

북한과 관련한 현안도 미국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북한이 핵 동결하고 비핵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북미 정상회담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해야 한다. 남한 대통령이 트럼프에게 김정은을 만나라고 이야기했다는 것을 북한도 알면 자신들에게 이재명 정부의 남한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 할 것이다.

그 토대 위에서 윤석열 정부가 효력정지를 결정하자 북한이 파기시킨 '9.19 남북군사분야 합의서'의 복원 메시지도 전하고, 판문점 등에서 직접 접촉이 어려우면 제3국에서 비공개 접촉을 시도할 필요도 있다.

남북 간 군사적 긴장완화는 바로 우리 민생경제의 활성화로 연결된다. '지방발전 20X10 정책. 추진을 통해 체제안정을 시키고자 하는 김정은 북한에게도 남북 군사분계선 부근의 안정은 절실히 필요하다. 북한으로서는 지금 '싸우면서 건설하자'가 아니라 '건설하기 위해 싸움을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년 초에 북한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고 대남 봉쇄정책을 쓰고 있기 때문에 바로 남한과 만나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미국에 먼저 북미 접촉을 설득해서 분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 미국에 김정은을 워싱턴으로 불러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점을 알려줘도 괜찮을 것 같다.

구체적으로 보면 당장 다음주에 캐나다에서 주요 7개국 정상회의(G7)가 열리는데 이재명 대통령이 그 기회에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서 북미대화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하고 핵 동결 토대 위에서 비핵화로 가는 방향을 설정한 뒤에 가능한 한 빨리 북미 정상회담 통해 북한이 핵문제 해결에 전향적으로 나서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도 있는데 여기는, 우리로서는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 나토는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러시아를 압박해 들어가는 회의인데 한국이 거길 왜 가나? 윤석열 정부처럼 삼부토건을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에 참여시킬 이유도 없지 않나. 더군다나 우크라이나 문제 때문에 미국과 유럽연합이 틀어졌는데.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국빈급 공식 방문 일정을 마치고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3년 7월 15일(현지시간) 키이우의 대통령 관저인 마린스키궁에서 열린 한-우크라이나 정상회담에 앞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인규 : 일부에서는 평양에서 발견된 무인기 때문에 북한의 대남 경계심이 이전보다 훨씬 더 커졌다는 평가도 있다.

정세현 : 이재명 정부 시대에는 대북 전단 살포도 막게 될 것이다. 여기에 남한의 새 정부가 트럼프에 김정은을 워싱턴으로 불러내라고 하고,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에게 일제 식민지 통치에 대한 배상 충분히 하라고 하면서 북한의 경제적 숨통을 틔워주는 일까지 한다고 하면, 북한 입장에서는 당장은 남한과 웃으면서 만날 수는 없지만 고맙다고 생각할 것이다. 기회가 되면 만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박인규 : 미국보다 일본이 북한 관계 개선에 더 적극적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세현 : 일본 정치판에서는 외교에서 성과를 내면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더 올라가기 때문이다. 2002년에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가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금을 지급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당시 북한은 300억 달러, 일본은 절반을 제시해서 액수가 맞지 않아 결렬됐다.

북한의 지방발전 '20X10정책'은 김정은 체제의 국내 정치적 정당성을 강화하는 사업이다. 이거 잘 돼야 권력 승계도 가능하다. 그런데 북한의 내부 예비는 고갈돼 있다. 그러면 밖에서 물자가 들어가야 한다. 남한 정부가 그런 환경을 만들도록 도와주면 당장은 안되더라도 2년 정도 후에는 정상회담도 가능할 수 있다.

새 정부는 '통일' 이야기는 빼고 우선 남북 간 '평화적 관계 정착'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보여야 한다. 이를 위해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와 협조하면서 이들 국가들을 돌아서 평양에 접근하는 방법을 사용한다면 시간은 좀 걸릴 수 있어도 남북 간 긴장완화와 점진적인 관계 개선이 가능할 수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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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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