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순방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이하 현지시간) 시리아 제재를 해제하겠다고 밝혔다.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무너진 뒤에도 미국 제재가 유지되며 국제사회는 시리아 재건을 위한 제재 해제를 촉구해 왔다.
이번 발표로 중동 국가들의 호의를 얻어 트럼프 대통령이 더 많은 순방 성과를 가져갈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제재 해제로 미국이 시리아 재건 과정에 참여하고 러시아와 중국, 이란의 영향력을 견제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트럼프 대통령은 14일 아메드 알샤라 시리아 임시대통령을 직접 만나 제재 해제를 지렛대로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3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열린 사우디투자포럼 연설에서 "시리아에 대한 제재 중단 명령을 내릴 것"이라고 선언했다. 또 "내 행정부는 미국과 시리아 관계 정상화 회복을 향한 첫 조치를 이미 취했다"며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이번 주 후반 튀르키예(터키)에서 새 시리아 외무장관과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많은 비참함과 죽음"을 겪은 시리아에 "새 정부가 들어와 나라를 안정시키고 평화를 지키는 데 성공할 것으로 기대된다"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결정의 배경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요청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연설을 듣던 빈살만 왕세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 제재 해제 발언에 박수를 치고 가슴에 손을 얹으며 환영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잔혹한" 시리아 제재가 "중요한 역할"을 할 때도 있었지만 이제 시리아가 "빛날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리아가 "매우 특별한 것"을 보여줬다며 시리아에 "위대해질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4일 리야드에서 시리아 임시 대통령 아메드 알샤라와 직접 만나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미국과 시리아 정상이 만난 것은 25년 만이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약 30분간 이뤄진 만남에서 알샤라 대통령에게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아브라함 협정에 서명할 것을 촉구했다고 밝혔다.
시리아 외무부는 13일 성명을 통해 미국의 제재 해제 발표는 시리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라며 이 조치가 "안정, 자급자족, 의미 있는 국가 재건 추구의 필수적 기회를 제공한다"고 환영했다.
시리아는 지난해 12월 무너진 아사드 정권의 인권 탄압 탓에 수출 통제, 금융 제재 등 쿠바, 이란, 북한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제재를 받아 왔다. 서방은 환영하면서도 아사드 정권을 무너뜨린 새 정부가 알카에다 연계 조직을 전신으로 둔 탓에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그러나 새 정권이 비교적 빠르게 안정을 찾으며 올 초 유럽연합(EU)은 에너지, 금융 등 주요 경제 부문에 대한 제재를 중단했다. 유엔(UN) 등 국제사회는 시리아 제재 해제를 촉구해 왔다.
제재 해제 땐 인도주의 단체의 시리아 활동이 용이해지고 외국인 투자도 확대될 것으로 예상돼 재건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시리아의 빈곤은 심각한 수준으로 지난 2월 유엔개발계획(UNDP) 보고서에 따르면 아사드 정권 아래 벌어졌던 내전 영향으로 시리아 국민 10명 중 9명이 빈곤 속에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 4분의 1은 실업 상태다.
스테판 뒤자릭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은 13일 언론 브리핑에서 "시리아에 대한 제재 해제 및 재건 지원, 시리아인들이 10년 이상의 분쟁과 투자 부족에서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며 미국의 제재 해제 발표를 환영했다.

순방 중 제재 해제 발표, 성과 극대화 노렸나…이란·이스라엘에 갖는 의미는?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중동 프로그램 수석 고문 모나 야쿠비안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 시점에 시리아 제재 해제를 발표한 것이 "걸프 지역의 호의를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미국 기업과의 수익성 있는 거래 및 대규모 걸프 투자를 촉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봤다. 그는 이러한 것들이 "트럼프 순방에서 기대된 성과"라고 설명했다.
시리아의 적극적 구애도 한몫 한 것으로 추측된다. 11일 <로이터> 통신은 여러 소식통에 의하면 알샤라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을 끌기 위해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 트럼프 타워를 짓고 이스라엘과의 긴장을 완화하고 시리아 석유 및 가스에 대한 미국 접근을 구상했다고 보도했다.
12일 영국 일간 <가디언>은 시리아 대통령과 가까운 활동가이자 작가 라드완 지아데가 다마스쿠스 트럼프 타워 모형을 공유하며 "이것이 그(트럼프)의 마음을 얻은 방법"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지아데는 알샤라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해당 디자인을 보여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조치를 통해 미국은 재건 과정에서 시리아가 제재를 우회할 수 있는 러시아와 중국에 의존하는 것을 막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에 소속된 쿠타이바 이들비 중동프로그램 선임연구원은 제재 해제로 미국이 4000억달러(약 559조원) 규모로 예상되는 시리아 재건 사업에 뛰어들 수 있는 등 "러시아와 중국과 같은 경쟁국에 맞서고 미국 기업에 경제적 기회를 열어주는 장기적 승리"로 나아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제재가 유지돼 시리아 경제가 추락할 경우 무장 집단 재결성도 우려된다고 짚었다.
제재 해제는 이스라엘엔 양가적 의미다. 미 CNN 방송은 이번 발표가 아사드 정권 붕괴 혼란을 틈 타 시리아 영토에 대한 야욕을 보여 온 이스라엘에 타격일 수 있다고 짚었다. 반면 제재 해제 대가로 시리아가 아브라함 협정에 동참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3일 연설에서 사우디에 아브라함 협정에 참여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2020년 아랍에미리트(UAE)와 바레인이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선언하도록 한 아브라함 협정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랑하는 주요 외교 성과다. 사우디가 아브라함 협정에 동참하는 것은 트럼프 통령의 숙원 중 하나지만,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잔혹한 전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사우디는 지난 2월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 없이는 이스라엘과 국교 수립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제재 해제는 아사드 정권을 지원했던 이란에 대한 경고로 해석될 수도 있다. 애틀랜틱카운슬의 앨런 피노 객원 선임연구원은 재제 해제가 미국이 시리아를 이 지역 파트너인 이집트, 요르단과 같은 "온간 아랍권"으로 재통합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의미이며 "이란의 존재감과 영향력 재건을 막겠다는 의지"라고 분석했다.
최근 이란과 미국이 핵 협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13일 연설에서 이란이 "결코 핵무기를 가질 수 없을 것"이고 "이 제안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며 협상 타결을 압박했다. 이어 "우린 오래 기다릴 시간이 없다"며 이란이 "지금 당장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사우디의 호화 의전도 눈길을 끌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13일 트럼프 대통령 전용기(에어포스원)가 리야드에 접근하자 사우디 공군은 F-15 전투기를 띄워 이를 호위했다. 지상에선 말 탄 기수들이 트럼프 대통령이 탄 차량을 호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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