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한 트럼프, 요지부동 중국…미 연일 유화 발언에도 "관세 철회 먼저"

트럼프, 시장·업계 압력 받는 반면 중 1분기 성장률 호조로 여력…보잉 항공기 인수 거부로 악영향 가시화되는 가운데 "버티기 허세일 뿐" 지적도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중국에 관세 관련 완화적 태도를 보이며 중국의 협상 요청을 유도하고 있지만 중국은 관세 전면 철회를 내세우며 움직이지 않고 있다. 미국이 시장 및 업계의 압력을 받는 반면 올해 1분기 성장률이 예상치를 상회한 중국 쪽엔 더 여유가 생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최근 관세 여파로 중국 항공사가 미 보잉사 항공기를 인수 거부하는 등 미·중 상호 악영향이 가시화되는 상황으로, 중국이 체면만 중시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일 중국과 무역 관련 협의 중이라고 주장 중이다. 미 CNN 방송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24일(이하 현지시간) 요나스 가르 스퇴르 노르웨이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오늘 아침"에도 "중국과 회의를 가졌다"고 말했다. 중국 쪽에서 누구와 협의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에도 중국과 "매일"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정부는 최근 미국의 중국 관세가 최소 145%, 중국의 미국 보복 관세가 125%에 달하는 현 상황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연일 유화적 발언을 이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22일엔 중국 관세가 "상당히" 낮아질 것이라고 했고 다음날엔 "향후 2~3주" 동안 관세율을 새로 정할 것이라며 그 대상에 "중국이 포함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23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관세를 현재의 절반 이하인 50~65%로 인하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보도했다.

반면 중국은 요지부동이다. 중국 외교부는 24일 무역 협상이 진행 중이라는 주장을 "가짜 뉴스"라고 일축했다. 트럼프 대통령 발언을 정면 반박한 것이다. 궈자쿤 중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내가 알기로 중국과 미국은 관세 관련 어떤 협의나 협상도 갖지 않았고 합의 도달은 말할 것도 없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이 원한다면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면서도 "이 관세 전쟁은 미국이 시작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싸워야 한다면 싸울 것"이라고 했다.

중국은 협상 개시를 위해선 미국이 대중 관세를 전면 철회해야 한다고 시사하기도 했다. 중국 관영 <신화> 통신을 보면 이날 허야둥 중국 상무부 대변인도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이 진정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국제사회 및 자국 내 이성적 목소리를 직시해, 중국에 대한 모든 일방적 관세를 철회하고 평등한 대화를 통해 이견을 해소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월마트 등 유통업 경영자 만남 뒤 태도 완화…전문가 "미 서두르면 중국은 더 기다릴 것"

최근 트럼프 정부가 중국에 완화적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 데는 시장 반응 및 산업계 우려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미 의회전문매체 <더힐>은 트럼프 대통령이 21일 월마트 등 주요 유통업체 경영자들과 만난 것이 다음날부터 이어진 중국에 대한 유화적 발언에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매체는 로비스트 소식통을 인용해 경영자들이 이 회동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연말 연휴 기간을 포함한 소비자 가격 상승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22일 미 투자은행 JP모건 행사에서 미국과 중국이 고율의 보복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 상황이 "근미래"에 "완화"될 것이며 이를 통해 시장에 "안도"를 줄 것이라고 밝혀, 트럼프 정부가 시장을 주시하고 있음을 더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미국이 조급한 기색을 보이며 중국이 더 느긋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첸지우 홍콩대 금융학 교수가 "트럼프 대통령이 불안감을 더 드러내는 것은 중국이 당황하거나 서두를 필요가 없음을 말해준다"며 "중국 쪽이 상황을 더 지켜보고 기다릴 거라고 생각한다"고 전망했다.

지난주 발표된 중국의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예상치를 상회한 5.4%를 기록한 것도 중국 정부엔 여유를 제공한다. <워싱턴포스트>(WP)는 예상을 뛰어 넘은 성장률이 중국이 미국의 압력을 견딜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고 짚었다.

신문은 미 컨설팅사 시놀로지의 최고경영자(CEO) 앤디 로스먼이 중국 경제가 둔화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워싱턴에 앉아 중국 경제가 붕괴 직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들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고 전했다. 로스먼은 "중국의 향후 발생할 고통에 대한 인내심은 미국보다 크다"며 "미국엔 대체재가 준비되지 않은 소비재가 너무 많다. 사람들이 아이들 신발에 두 배 비싼 값을 기꺼이 치를 수 있을까?"라고 덧붙였다.

미국이 한국을 포함해 중국 주변국들과 먼저 무역 협상을 치르고 중국의 관세 우회 생산지가 될 수 있는 동남아시아를 압박하며 중국을 고립시키려 하는 한편, 중국은 이에 대응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주 동남아시아 순방에 나서 협력 강화와 미국 관세에 대한 공동 대응을 강조하며 물러서지 않고 있다. 관세 충격을 상쇄하기 위한 경기 부양책도 예상된다.

중 보잉 인수 거부 '관세 쌍방 악영향 가시화'…"중, 체면 세우려 피해 감수하고 버티기" 지적도

그러나 무역 전쟁이 장기화되면 미국 뿐 아니라 중국의 손실도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2일 공개한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중국의 올해 성장률을 4%, 내년 성장률도 4%로 전망했다. 이는 지난 1월 전망치 각 4.6%, 4.5%에서 하향 조정된 것이다. 중국 정부의 올해 성장률 목표치인'5% 안팎에도 미달한다. IMF의 올해 미국 성장률 전망치도 3달 전 2.7%에서 1.8%로 낮아졌다. IMF는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도 3달 전(3.3%)보다 낮은 2.8%로 예측하며 무역 긴장 고조와 금융 시장 조정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하방 위험이 고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중국이 미국 보잉사 항공기 3대를 인수 거부한 것은 무역 갈등이 미·중 모두에 악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음을 가시적으로 드러냈다. <월스트리트저널>을 보면 23일 켈리 오트버그 보잉 최고경영자는 중국 항공사가 미·중 무역 전쟁으로 인한 높은 관세 탓에 보잉에 주문한 항공기를 다시 돌려 보냈다고 설명했다. 신문은 오트버그가 구매 거부된 항공기의 다른 구매자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관세 전쟁이 수년간의 재정 위기에서 탈출하려는 보잉의 "회복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설명하는 데 진땀을 뺐다고 전했다. 오트버그는 "우린 항공기를 받지 않겠다는 고객을 위해 항공기를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향후 중국 항공사 주문을 받지 않겠다는 의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보잉이 중국에 비행기를 판매하지 않는다면 "상업용 제트기를 거의 전적으로 보잉과 유럽의 에어버스에 의존하는 중국에 큰 타격"임과 동시에 보잉 쪽의 수익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도 상업용 항공기 제조는 중국이 여전히 미 공급업체에 크게 의존하는 분야로, 관련 무역 대치가 심화되면 자체 제트기를 생산하고자 하는 중국의 야망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에 따르면 이와 동시에 중국 상하이 푸단대 신치앙 미국연구소 부소장은 "관세 전쟁이 지속되면 미국의 대중국 항공기 수출이 지속 불가능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보잉의 공급망을 더욱 교란시키고 미국 일자리, 부품 공급업체에 영향을 미쳐 결국 백악관 의사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트럼프 대통령은 24일 트루스소셜을 통해 "중국이 구매하기로 약속한 아름답게 완성된 (보잉) 항공기를 인수하지 않았다"며 "이는 중국이 수년간 미국에 해 온 일의 작은 예"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미 CNN 방송은 중국 정부의 단호한 입장에도 불구하고 일부 중국 전문가들은 미국과의 장기전이 타당한지에 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방송에 "중국 쪽이 허세를 부리고 있다"며 "우린 미국과의 무역 전쟁을 빨리 뒤집어야 한다. (현 상황은) 강한 척 하면서 체면을 세우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이 먼저 양보하길 기다리면 "중국은 미중 협상에서 어떤 타협안이 나오든 중국의 승리, 미국의 패배로 포장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8일 중국 베이징에 있는 한 미국 회사 건물 밖에서 미국과 중국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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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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