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측이 미국의 관세 부과와 관련한 장관급 회담을 갖고 오는 7월 상호관세 유예가 끝나기 전까지 협상을 마무리하기로 했다고 한국 측 대표단이 밝혔다. 미측은 생각보다 빠르게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으나, 한국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실질 합의는 대통령 선거 이후에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4일(이하 현지시간) 최상목 경제부총리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대표와 한미 '2+2 통상 협의'(Trade Consultation)를 가졌다. <로이터> 통신은 이번 협상이 미국 측의 요청으로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협의 이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베센트 장관은 "매우 성공적인" 회담을 가졌다면서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르면 다음 주에 합의에 도달함에 따라 기술적인 용어를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보도했다.
다만 그는 양국 합의에 어떤 내용이 포함될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미 재무부는 이번 협의와 관련한 보도자료도 배포하지 않았다.
한국 기획재정부는 보도자료에서 "양국 재무·통상 분야 장관이 참석하여 미국 관세정책과 관련한 양측의 관심사와 입장을 확인하고 향후 협의 방안 등을 논의하는 최초의 당국 간 회의"라고 의미를 부여했으나 역시 구체적 협의 내용이나 결과는 밝히지 않았다.
이와 관련 최상목 부총리는 주미국대한민국대사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를 통해 미국의 상호 관세 유예 조치가 종료되는 7월 8일 전까지 관세 폐지를 목표로 '줄라이 패키지'(July Package)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관세·비관세조치 △경제안보 △투자협력 △통화정책 등을 중심으로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부총리는 "우리가 이해하기로는 오늘 회의는 앞으로 할 협의의 틀을 마련했다는 거다. 협의의 체계는 환율은 양국 재무관이 하고, 나머지는 산업부와 USTR 간의 작업반 만들어서 하겠다"며 "그리어 (USTR) 대표가 5월 중순에 한국 오니까 고위급 중간 점검하겠다. 협의 일정은 7월 8일까지 상호관세가 유예돼있으니 논의 시한이 그때를 목표로 해서 논의해보자는 전체적인 협의 틀을 마련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방송 CNBC는 오는 5월 15~16일 그리어 대표가 서울에 방문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안덕근 장관은 "잠정 합의 관련해 오늘 특별한 얘기는 없었고 다음 주에 기술 협의에 들어간다는 확인을 했다"며 "구체적으로 작업반이 구성돼서 어떤 것을 협의할지 본격적 작업이 다음 주부터 개시될 예정이다. 경제 안보 관련 내용에서는 기술 협의가 시작돼야 어떤 내용을 포함할지 결정할 수 있어서 예상해서 말하기는 어렵다"고 회의 결과를 전했다.

한미 양측이 대선 전에 협상을 마무리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최 부총리는 미국에 한국의 대통령 선거 등 정치 일정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점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 측에서 무역 협상과 정치 문제 연계에 대해 언급했냐는 질문에 "그 부분에 대한 미국 측 언급은 없었다"며 "우리 정치 일정이 있고, 행정부 권한 범위가 있고, 입법부 동의 받아야 할 것도 있고 해서 협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얘기했더니 상대 측에서도 동의했다"고 말했다.
미국 측에 한국의 정치 일정을 이야기했다는 것은 이 협상을 차기 정부에서 마무리해야 한다는 취지냐는 질문에 그는 "그런 것은 아니다. 양국 간 무역 관련된 협의를 함에 있어 그런 식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다"며 "다만 정치 일정을 상기시켜 준 것이고, 그런 것을 고려해서 해야겠다고 언급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관세에 대해 협의 일정에 가장 자연스러운 타깃이 7월 8일"이라며 "차분히 국익을 최우선으로 해서 협의 진행하겠다는 것인데, 협의는 상대방이 있어서 어떤 것은 먼저 협의가 될 수도 있지만 전체적인 패키지 자체가 관세 유예를 연장하거나 철폐하느냐의 이슈이기 때문에 목표 시점이 7월 8일"이라고 덧붙였다.
안덕근 장관 역시 "90일 간 상호관세 유예 기간이 있어 그때까지 협의하는 게 협상의 목표치라고 보면 된다"며 대선 이전 합의 가능성에 대해 "이슈별로 봐야 하지만 전체 패키지가 합의돼야 하기 때문에 일부 한두 개 이슈가 먼저 정리된다고 해서 이를 가지고 관세가 어떻게 된다고 사전에 예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이와 관련 미국 CNBC 방송은 "한국 측은 이 과정이 '정치 일정'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미국 측의 이해를 구했다"며 "이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계엄령 선포로 파면된 이후 6월 3일로 예정된 한국의 조기 대선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협상 타결 의지를 표명"했는데 "이는 선거에서 승리할 것으로 예상되는 야당의 반발에 부딪혔다. 이들은 한 총리가 정치적 이득을 위해 회담을 서두르고 있다고 지적했다"고 전했다.
방송은 "전문가들은 또한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 한국이 에너지 사업과 방위비 분담금에 대한 확고한 약속을 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며 대선 전에 일정한 합의를 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블룸버그> 통신 역시 "트럼프 대통령은 일부 주요 교역국과의 협상에 관심을 표명했지만, 아직 어떤 합의도 이루지 못했다"며 조기 협상이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통신은 "전통적으로 보면 완전한 무역 협정이 체결되는 데 수년이 걸리며, 백악관은 관세 부과 유예 시한이 돌아오기 전에 범위가 제한적인 협정을 체결하거나 중요한 세부 사항을 마무리 못한 채 남겨둘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프랑스 금융그룹인 소시에테 제네랄(SG)의 한국SG증권 오석태 이코노미스트는 <로이터> 통신에 "기본적으로 한미 정부 간 협상의 구체적인 진전은 조기 대선 이후에나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 에너지 사업과 방위비 분담금에 대한 확고한 약속을 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통신은 "S&P 글로벌 마켓 인텔리전스의 경제학자들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한국의 자동차 수출을 포함한 관세 면제 협상에 성공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는 점점 더 대선 후보로서 입지를 굳건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며 한 권한대행이 조기 협상 타결에 의지를 보일만한 정치적 동기가 있다고 전했다.
한편 최 부총리는 이번 협상에서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은 언급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앞서 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취재진에게 미국이 유럽에서 군대를 철수할 가능성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는 유럽에 주둔하는 미군에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데 그에 따른 배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라며 "무역과는 무관한 사안 중 하나이지만, 타당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논의의 일부로 (방위비 분담금을) 포함시킬 것"이라면서 "모든 문제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는 것이 좋다"고 말해 관세 협상에 방위비 분담금을 연계시킬 것임을 시사한 바 있다.
그러던 트럼프 대통령은 24일 백악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돌연 방위비 문제를 관세 협상과 별개로 다루겠다고 밝혀 관세 협상을 우선시 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는 관세 협상과 관련 "미국은 45년, 50년 동안 역사상 세계의 어떤 나라도 겪지 않은 갈취를 당해왔다"며 "다른 나라들은 미국을 갈취해 부자가 됐다"고 주장했다고 <AP> 통신이 보도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그들의 군대를 돌봐왔지만 무역에서 공정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며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시사하면서도 "군대는 우리가 이야기할 또 다른 주제다. 우리는 어떤 협상에서도 이 주제를 다루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관세와 방위비 분담금을 연계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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