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존재를 거부당해 한국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미등록 이주민의 자녀들로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유아기에 부모와 함께 입국해 오랜기간 합법적 체류자격을 가지 못한 상태로 살아왔다. 부모의 체류 자격에 따라 이들의 삶은 강제퇴거의 위협을 받아 온 것이다.
그나마 2021년 법무부가 '국내출생 불법체류 아동 조건부 구제대책'을 발표·시행하면서 공교육 이수, 부모의 범칙금 납부 등의 조건부 체류자격을 인정했다. 단, 제도는 여러 조건으로 인해 모든 이들을 포용하지는 못했고, 3년이라는 기간 동안 한시적으로 운영되었다. 이후 이주민과 관련 단체들의 노력으로 지난 달 20일 법무부가 이를 3년 연장 운영하기로 하면서 '국내 장기체류 아동 교육권 보장을 위한 체류자격 부여 방안'을 발표하였다. 기존 정책의 종료와 함께 당장 추방 위기에 놓인 이들은 한숨 돌렸지만 이 정책은 여전히 3년으로 한시적이며, 한국인으로 살아가고, 존재할 권리는 주어지지 않는다.
한시적이고 조건적인 시민의 지위
법무부가 내놓은 이번 정책으로 이전에 시행한 정책보다는 '국내 성장 기반 외국인 청소년'의 체류 조건이 완화되었다. 주 내용은 이민 2세대 청소년이 고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지 않더라도 취업비자로 전환 및 국내 가족과 계속 거주할 수 있도록 개선한 것이다. 기존에는 성년이 된 경우 대학에 진학하여 유학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실질적으로 국내 취업과 정주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 완화된 제도 다음의 모든 조건을 만족시켜야 구직·연수나 취업 자격으로 체류가 허용된다.
첫째, 신청일 기준 18세 이상 24세 이하이고, 둘째, 18세가 되기 전 7년 이상 국내에서 체류하였으며, 셋째, 국내에서 초·중·고교를 졸업한 경우이다. 사실상 성장기를 한국에서 보낸 경우에 한하며, 대학에 진학하거나 취업하지 않으면 체류하지 못하는 엄격한 조건이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졌지만 한국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임을 증명해야 한다.
중립성을 가장한 차별적 용어 '국내 성장 기반 외국인 청소년'
그런데 왜 '이주배경 청소년'이라는 쉬운 용어 대신 '국내 성장 기반 외국인 청소년'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을까. 언뜻 보기에 이 용어는 사실 그대로를 기술해 어떠한 가치나 차별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국내 성장 기반'이라는 표현은 한국사회에서 자란 건 사실이나 한국에 소속된 존재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여기에 더해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으로 명명하며, 이들의 법적 지위와 정체성을 분명히 한다. '외국인'으로 분류된다는 것은 기본권을 비롯한 법적 권리를 온전히 누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정책적으로 관리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주민 자녀의 상당수는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어린 나이에 한국으로 이주해 성장했고, 유일하게 사용하는 언어가 한국어인 경우가 많다. 다른 나라를 방문해 본 적도 없고, 한국을 모국으로 생각하며 자란 아이들이 '한국'에서 요구한 조건을 갖추어야만 추방되지 않고, 머물 수 있는 관리의 대상인 것이다. 결국 '국내 성장 기반 외국인 청소년'으로 명명된 지위는 법적 권리와 자원, 기회의 제약을 받는 배제의 대상으로 만들고, 차별을 정당화해준다.
통합의 시작인가, 유예의 반복인가
이번 정책을 발표하며 법무부는 "국민이 공감하는 사회통합 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정책은 정말 통합의 시작일까, 아니면 유예의 반복일까?
이번 정책으로 교육권 보장을 위해 체류 자격이 주어진 아동들은 정책이 종료되는 오는 2028년 3월 31일 다시 불투명한 미래를 맞이한다. 이 사안은 단지 출입국 정책이나 행정 절차의 문제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이미 다문화·다인종 사회를 맞이했고, 여러 갈등으로 사회통합을 노력해야 하는 한국 사회가 어떤 가치를 중심으로 미래 세대를 포용할 것인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미등록 이주민 자녀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더불어 모두의 고민이 필요하다. 한국 사회의 시민은 누구인가. 대한민국 국민으로 지칭되는 법적 지위를 가진 시민, 그리고 사회적으로 존재하지만 법적 지위를 갖지 못한 시민 사이의 괴리에 대해 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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