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장석준 칼럼] 새 정부 출범 전까지 해야 할 일

마침내 대통령 탄핵소추에 대한 헌법재판소 판결이 나왔다. 재판관 8인 만장일치로 탄핵이 인용됨으로써 12.3 친위쿠데타는 넉 달만에 비로소 진압됐다. 비록 선고가 기대보다 한 달은 더 늦어졌지만, 그래도 내란 우두머리를 대통령직에서 결국 파면했으니 일단은 기뻐해야 할 일이다.

게다가 탄핵 인용이라는 결론만큼이나 뜻깊은 성과가 있다. 헌법재판소 판결문에 담긴 민주공화국의 기본 원칙에 대한 재확인이다. 판결문은 12.3 비상계엄이 위헌, 위법인 이유를 추상같이 정리할 뿐만 아니라, 친위쿠데타에 기습당한 대한국민의 공통의 이상과 원칙, 즉 민주주의, 국민주권주의, 정치와 법치 등등을 거의 감동적일 정도로 명쾌하게 제시했다. 앞으로 시민 정치 토론의 필독 문헌으로 널리 읽히고 기억될만하다. 요컨대 우리는 민주공화국을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민주공화국의 역사적 현실태인 제6공화국을 반민주적 반역 시도로부터 구했다.

그런데 이러한 탄핵심판 선고가 있고 이틀 뒤에 우원식 국회의장은 제6공화국 헌법의 상당한 개정, '개헌'을 제창하고 나섰다. 급한 대로 원내 정당들이 합의한 만큼 1차 개헌안을 마련해 이에 대한 국민투표를 조기 대선과 동시에 실시하자는 것이다.

나는 친위쿠데타 발발 전부터 여러 차례 이 지면을 통해, 제7공화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개헌이 필요하다고 역설해왔다. 또한 내란 정국에서도 정치의 복원과 재구성이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정치 재구성'의 여러 과제 중 하나로 '개헌의 정치'를 제시했다. 그럼에도 나는 우원식 의장의 개헌 제안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반갑기도 하지만, 우려도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개헌하려면 정말 '제대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사건에 대해 인용을 선고한 4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 일대에서 탄핵에 찬성한 시민들이 헌재의 파면 선고에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급해서는 안 된다

우원식 의장의 성명에 깔린 핵심 메시지는 제6공화국 헌정의 대대적 개혁이 내란 진압 이후 필수 과제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야 물론 두 손 들어 환영이다. 그러나 이런 메시지를 더욱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두 가지 무리한 제안을 함께 내놓았다. 하나는 "이번 대통령 선거일에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시행하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1차 국민투표로 다룰 개헌안에 "권력구조 개편"을 포함시키자는 것이다.

우선 시기 문제부터 보자. 조기 대선과 함께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자고 하는데, 대선은 지금 불과 두 달 남았다. 즉 8주 안에 개헌안을 정리하고 국회 심의와 합의, 의결을 거치며 국민 전체에게 개헌안을 알리고 국민투표까지 마치자는 것이다. 그것도 대통령선거가 치열하게 전개되는 와중에 말이다.

아무리 봐도 무리다. 의지가 너무 앞서서 현실을 냉정히 고려하지 않은 제안이다. 게다가 이런 조급한 태도는 바람직하지도 않다. 대한민국의 과거 헌법 개정에서 드러난 한계를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고, 새로운 민주공화국이 충족해야 할 21세기 민주주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제6공화국 헌법 제정 과정을 돌아보자. 1987년 6월에 민주항쟁이 있었고 7월부터는 노동자대투쟁이 벌어졌지만, 개헌안을 입안한 주체는 당시 국회 안의 주요 정당들이었다. 거리의 시민이나 투쟁하는 노동자의 목소리가 직접 반영될 통로는 없었던 반면에 광주학살 원흉이자 군부독재 집권당인 민주정의당은 원내 제1당으로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것은 현 헌법의 뼈아픈 태생적 한계다. 법률적 절차는 하나도 위배하지 않은 개헌 과정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1987년의 정신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고 말았다.

지금 두 달 안에 개헌('1차'라는 한정을 달더라도)을 추진한다면, 이 역사적 경험이 고스란히 반복될 것이다. 우원식 의장은 '국회 개헌특위'를 구성하자고 제안했지만 기한이 빠듯할수록 원내 양대 세력,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개헌특위를 일방적으로 이끌 수밖에 없다. 민주항쟁의 타도 대상이었던 민주정의당이 새 헌법 기초자로 이름을 올린 것처럼, 기존 헌정 체제의 문제아로 지목된 양대 정당이 그 헌정 체제를 바꾸자는 개헌마저 다시 좌우하게 된다.

게다가 양대 세력 중 한 쪽 축인 국민의힘의 현 상태가 어떠한가? 친위쿠데타 발발 이후 국민의힘은 한 번도 당 차원에서 헌정 유린을 진지하게 반성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극우파의 선동 논리와 음모론, 폭력 시위에 부화뇌동했다. 지금도 한덕수, 최상목에게 위헌, 위법 행위를 이어가라고 훈수하는 정당이 국민의힘이다. 이렇게 '있는 헌법'도 지킬 의사가 없는 정당이 어떻게 '새 헌법'을 만드는 논의에 낄 수 있겠는가.

▲우원식 국회의장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개헌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데 지금으로부터 3년이나 뒤인 2028년에 총선을 새로 치르기 전까지는 어쨌든 국민의힘이 국회 의석 3분의 1 이상을 점한다. 앞으로 3년 동안은, 위헌적 내란 동조 행위를 일삼게 된 거대 정당의 저항과 교란에 맞서며 개헌을 추진해야 하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진지한 개헌 추진 세력이라면 일단 국민의힘이 최소한 내란 동조 행위를 반성한다는 당론을 확정하기 전까지는 개헌 논의의 대등한 파트너로 인정할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국회보다 더 폭넓은 개헌 논의의 장을 열어 국회 내 교착 상태를 돌파해야 한다.

만약 이런 원칙을 고수하지 않고 개헌안을 어떻게든 급조한다면, 내용의 부실함이라는 문제뿐만 아니라 또 다른, 더 심각한 문제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바로 국민투표라는 최종 심판이다. 과거에는 권위주의적 정부가 개헌을 강요하거나 정당 엘리트들끼리 개헌안을 합의하더라도 국민투표 결과를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웬만하면 과반수 찬성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특히 2010년대 이후 어느 나라에서든 시민들은 투표 안건에 반대표를 던질 준비가 돼있다. 정치권 다수가 합의한 안건이라도 국민투표를 통해 쉽게 부결될 수 있는 시대다.

더구나 지금 한국 사회는 내란 사태의 여진에 휩싸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헌 국민투표가 실시된다면, 개헌안 내용 자체에 대한 '판단'보다도 이를 마련하는 데 참여한 특정 정당에 대한 '심판'이 투표의 주된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양대 정당 중 어느 쪽을 지지하든 반대쪽을 심판하려는 의지에 충만한 이들이 급조된 개헌안에 반대표를 던짐으로써 정치적 의지를 표출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렇게 되면, 함께 실시되는 조기 대선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개헌 국민투표에서 찬성표가 과반에 못 미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치명적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성급하게 개헌을 추진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21세기 민주주의의 기대와 요구에 부합하는 개헌 과정을 세심하게 설계하고 준비해야 한다. 예를 들어 2010년대 이후에 개헌을 추진한 주요국들,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칠레 등은 모두 의회 밖에 시민 참여 숙의기구를 따로 만들어 몇 년에 걸쳐 개헌안을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광범한 부분이 논의에 참여했으며, 기존 주요 정당들의 낯익은 주장으로 환원되지 않는 다양한 의견이 등장해 서로 충돌하고 수렴했다.

이것은 8주라는 너무나 짧은 시간 안에는 이뤄질 수 없는 실험이다. 내란을 진압하는 데만 4개월 넘게 걸렸다. 그렇다면 새 민주공화국의 기틀을 다지는 데는 적어도 그보다는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한 게 당연하다. 현실적으로, 제대로 된 개헌 과정의 시작은 새 정부 출범 이후를 기약할 수밖에 없다.

의제 토론은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

다음으로 의제 문제다. 우원식 의장은 조기 대선과 동시에 실시되는 국민투표에서 다룰 1차 개헌안이 '권력구조 개편' 내용을 꼭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개헌을 추진하자는 정치-사회적 합의"뿐만 아니라 "구체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개헌안"에 관해서도 "어느 정도 기반이 형성되었다"는 견해를 달았다.

그럼 "구체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된" '권력구조 개편' 내용은 무엇인가? 성명문에는 나와 있지 않다. 다만 언론 보도에 따르면, 우원식 의장은 기자들에게 '대통령 4년 중임제'와 '국회의 국무총리 추천권'을 언급했다고 한다. 둘 다 권력구조 개편과 관련해 정치권에서 자주 이야기되던 방안들이다.

그러나 과연 여의도 정치를 넘어 한국 사회 곳곳에 스며들었다고 할 수 있는가? 의회제(내각제), 분권형 대통령-의회제(이원집정부제) 등등에 관해 정말 시민 사이에서 토론이 무르익었다고 할 수 있는가? 누구도 '그렇다'고 답할 수 없을 것이다. 우원식 의장은 이 대목에서 "구체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됐다고 하면서 지나치게 정치 엘리트들만을 염두에 두고 있다. 제6공화국 내내 '개헌'을 이야기하며 상층 논의에만 머물던 이들의 한계와 오류에서 역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나부터도 기사에 언급된 내용들만으로는 "구체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됐다고 인정하기 힘들다. '국회의 국무총리 추천권'은 국회와 정당의 정치적 책임성을 높이는 방안으로 의미가 있다고 보지만, '대통령 4년 중임제'는 도대체 어떤 점에서 한국식 대통령제를 개선하는 처방이 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미국식 대통령제가 본토에서마저 삐걱대는 지금, 왜 한국의 권력구조를 전보다 더 미국에 가깝게 만들어야 하는가? 만약 두 내용이 함께 담긴 개헌안이 국민투표에 부의된다면, 나와 비슷한 의견을 가진 많은 이가 어쩔 수 없이 반대표를 던질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권력구조 개편'은 개헌 논의의 지난한 과정이 도달할 종착점이지 그 시작을 여는 출발점일 수는 없다. 결국은 현 대통령제와 다른 질서를 만들어보자고 개헌 토론에 나서는 것이지만, 이 주제에 관해서는 가까운 미래 안에 한국 사회에서 어떠한 새로운 다수 합의도 쉽게 형성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정치학자 김윤철 교수(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가 개헌 관련 토론회에서 지적한 것처럼 "적어도 10년 이상은 내다보고" 토론을 이어가야 할 주제다. 그 와중에 부분적으로 형성되는 합의를 그때그때 제도에 반영하면서 말이다.

반면에 이번 내란 사태를 겪으면서 진짜로 "구체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된 다른 의제들이 있다. 가령 '비상계엄' 문제가 있다. 비상계엄제도를 아예 폐지하거나 비상계엄의 이유로 "전시"만을 남기는 것과 같은 개헌을 통해 비상계엄이 다시 친위쿠데타의 근거로 활용될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 또한 한덕수, 최상목 등이 위헌, 위법적 통치를 자행할 수 있게 한 '대통령 권한대행' 조항도 손봐야 하고, 국회가 이미 선출한 헌법재판관에 대해 굳이 대통령의 임명 절차를 덧붙인 대목도 개정해야 한다. 2025년 4월 4일 이후의 한국 사회에서 이런 개헌안을 감히 목소리 높여 반대할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개헌 과정은 바로 이런 의제들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러한 의제들은 권력구조 개편에 비하면 지나치게 부분적이고 파편적인 내용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어떤 완결된 새 헌정의 즉각적 실현이 아니라, 헌정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사회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고' 새로운 내용으로 '바꿀 수 있음'을 확인하는 집단적 경험이다. 이것은 지난 30여 년간 한국 사회가 잃어버렸던 감각이고 기억이다. 일단 이 능력을 되살림으로써만 우리는 더 근본적인 문제를 '알아차리고' '바꿀' 의지와 용기 또한 갖추게 될 것이다. 일상에서 개헌 수준의 변화에 대한 모색이 줄기차게 계속되도록 만드는 '개헌의 정치'가 어쩌면 '개헌의 문구적 실현' 자체보다 더 중요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개헌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 정부 출범 전까지 해야 할 일

그렇다고 우원식 의장의 제안에 담긴 진심마저 의심하지는 않는다. 친위쿠데타를 준엄하게 꾸짖지도 못하면서 '개헌' 운운하던 이른바 원로들과, 12월 3일 밤에 친위쿠데타를 좌절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국회의장의 발언을 동급으로 치부할 수는 없는 법이다. 내란 진압 이후의 과제로 제6공화국 헌정 질서 개혁을 강조하려다 보니 일정과 의제를 무리하게라도 제시한 것이라 본다.

사실 그만큼 효과도 있었다. 그 동안 개헌에 관해 입을 다물고 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우원식 의장 발언이 있고 난 다음날 개헌 관련 입장을 처음으로 상세히 내놓았다. 윤석열 정부의 자폭 이후 더욱 가난해진 한국 정치에 꼭 필요한, 바람직한 상호작용이다.

지금부터 조기 대선, 그리고 새 정부 출범 전까지 이어져야 할 것이 바로 이런 상호작용이다. 당장의 목표와 최종 방향을 열어둔 채로 개헌에 대해 더 많은 의견을 제출하고 더 활발한 토론을 전개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선 주자들이 책임 있게 개헌에 관한 논쟁을 주고받아야 하고, 그럼으로써 새 정부 출범 이후 본격적으로 착수할 개헌 과정에 대한 일정한 합의를 형성해가야 한다. 이것이 헌법을 정말 '제대로' 바꿔나가기 위해 우리가 앞으로 두 달 동안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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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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