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하는 노동자, 장애인, 시민이 함께 만드는 설 명절

[거인들의 발걸음] 작지만 힘찬 2025 설날 거리차례

음력 1월 1일 설날 오전 11시.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마로니에공원에 차례상이 차려졌다, 정성이 가득한 맛깔스러운 음식들이 올라간, 여느 차례상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차례상이었다. 조금 다른 점도 있었다. 차례상에 영정 사진이나 신위가 올라가 있지 않았다. 차례를 함께 지내러 모인 사람들은 서로 혈연관계가 아니었고 종교도 무교, 기독교, 가톨릭교, 불교 등 다양했다. 하지만 차례를 지내며 기원하는 마음은 서로 같았다. 부당함과 차별을 받는 노동자, 장애인, 성소수자 등이 제대로 권리를 누리며 평등한 세상에서 살아가기를 원했다.

이날 열린 2025 설날 거리차례는 비정규직노동자의집 꿀잠이 주관했으며 음식들도 꿀잠 상근자들이 손수 만들었다. 차례는 모두 세 차례 열렸다. 먼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부근의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렸고, 이어서 세종호텔 해고자 농성장이 있는 세종호텔 앞, 거통고조선하청지회(이하 거통고) 농성장이 세워진 청계천로의 한화빌딩 앞에서 진행되었다. 차례에는 60여 명이 참여했으며 투쟁하는 노동자뿐 아니라 그를 지지하는 연대 노동자, 시민, 종교인 등이 모였다.

시민 가운데는 '말벌' 동지들도 다수 참여했다. '말벌'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주로 2030세대로 계엄령 이후 남태령과 한남동에서 열린 집회에 참여하며 민주노총과 함께하는 집회와 투쟁에 공감하고 해당 집회와 투쟁이 벌어지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이들을 뜻하는 별칭이다.

ⓒ김경미

거통고 농성장에서 치러진 차례 순서에서 잠시 이야기를 같이 나눈 맘마 님은 거리차례 참가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저는 기독교인이라 차례상을 오늘 처음 봤어요. 그동안 교과서에서 사진으로만 봐 왔죠. 그래서 오늘 차례상을 직접 보니 좀 신기하기도 한데요. 거통고 동지들이 거제에서 멀리 서울에 오셔서 설 명절을 외롭게 보내실 것 같아 걱정이 되어 왔어요." 맘마 님은 야생맘마먹음이보존협회라는 이름이 깃발을 들고 여러 집회와 투쟁 현장에 출정하고 있다.

또 다른 말벌인 사회가 부도 님은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데 일하다 아프고 심지어 죽기까지 하는 이 사회에 분노해" 여러 집회와 투쟁에 함께하고 있고 거리차례에까지 발걸음을 옮겼다고 했다. 역시 말벌인 모레 님은 "(우리) 사회가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슬픔을 종결하라 요구"하며 심지어 "언제까지 슬퍼할 셈이냐고, 네가 조심하고 노력해서 잘 사는 게 최우선이라고 채근"하는 이 사회를 바꾸고 싶어 함께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윤석열 계엄 이후 광장이 열리자 우리 사회를 바꾸기 위한 목소리를 높이고 투쟁과 연대의 실천이 늘고 있다. 덕분에 여태 투쟁해 오던 많은 노동자들이 힘을 얻고 있다. 설 명절 또한 그 어느 때보다 환한 웃음으로 보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윤석열이 체포, 구속, 파면된다고 해서 노동자의 삶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박근혜 퇴진 당시 우리는 익히 경험했다. 누구나 평등하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우리는 윤석열 퇴진 이후를 더욱 세밀하고 단단하게 준비해야 한다.

광장에 모이고 투쟁하는 이들에게 달려온 '말벌' 동지들과, 이제는 같은 노동자계급으로서 다시 만나자. 민주노조에 가입해 함께 싸우고, 함께 일터를 멈추고, 연차를 쓰고 조퇴를 하고 광장으로 모이자. 조직노동자가 길을 열고, 미조직 노동자와 함께 사회적 총파업을 만들자. 그 힘으로 모든 내란세력을 척결하고 새 세상을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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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

글을 쓰고 외국 책을 우리말로 옮기고 책을 만들며 개와 고양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쌍용자동차 조합원들의 대한문 분향소 농성을 계기로 잠시 잊고 있던 사람들과 사건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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