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봉 연대가 세종호텔을 비출 수 있을까?

[인권의 바람] 지하철에서 읽는 세종호텔 투쟁사

세종호텔 목요문화제에 참여하기 위해 지하철을 타면 한 시간이 조금 덜 걸려 명동역에 도착한다. 가끔은 친구들을 설득해 목요 문화제에 같이 참여하기도 한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동안 세종호텔 해고자들의 상황을 설명하다 보면 어느새 명동역에 도착한다. 하지만 세종호텔에 처음 연대하는 모든 이들의 곁에서 세종호텔을 설명할 수는 없다. 명동역을 향하는 지하철에서 이 글이 그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으면 좋겠다.

민주노조 '적출'의 마침표, 정리해고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이하 세종호텔지부) 고진수 지부장은 2001년 세종호텔에 입사해 20년간 조리사로 근무했다. 진심을 다해 열심히 일했지만 2021년 12월 9일 해고됐다.

혼자서 해고된 것은 아니다. 허지희 사무장은 1993년 세종호텔에 전화교환원으로 입사했다. 2014년 전화교환 업무가 사라지자 객실 정리·정돈하는 룸어텐던트로 발령받아 28년 동안 성실히 일했다. 마찬가지로 해고됐다. 그렇게 세종호텔은 노동자 15명을 정리해고했다.

명백한 부당해고였다. 합리적인 정리해고 선정 기준이라며 조리사, 룸어텐던트, 설거지를 하는 노동자들에게 외국어 시험을 보게 했다. 육아휴직 중인 사람도 포함되어 있어 해고 당시 논란도 많았다.

정리해고된 15명은 공교롭게도 모두 민주노조 조합원이었다. 십수년 동안 회사의 외주화 시도, 노조의 저항, 노조 탄압을 해 온 역사를 돌아봤을 때 이 해고의 목적은 누가 봐도 '외주화', '노조파괴'였다. 2011년 복수노조법이 통과되자 회사 측 입장을 대변하는 어용노조가 만들어졌다. 회사는 민주노조 조합원이라고 낙인찍고 부당하게 전보하는 등 괴롭히며 노조를 옮기도록 압박했고, 결국 어용노조가 교섭권을 뺏었다.

어용노조는 회사가 원하는 성과연봉제를 도입했고, 노동자들의 임금이 대폭 삭감됐다. 어용노조의 만행은 이뿐이 아니다. 2012년 민주노조는 로비를 점거하는 파업을 벌였다. 노조 조합원에 대한 부당한 전보 철회, 단체협약에 따른 정규직 전환이 요구사항이었다. 회사는 파업을 무력화하기 위해 대체 인력을 투입하려 했고, 어용노조는 점거 중인 노동자들을 물리력으로 끌어냈다. 어용노조는 노조파괴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2016년 민주노조 조합원을 향한 해고가 본격화됐다. 김상진 전 노조위원장은 민주노조의 위원장 임기가 끝나고 1년 뒤 2015년에 있었던 부당전보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4년간 복직을 요구하며 투쟁했지만,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래서 2021년 정리해고는 세종호텔 노조파괴의 마침표와 같았다. 회사는 어용노조로 힘을 약화시키고 김상진 전 노조지부장도 해고한 전력이 있다. 마지막으로 노조를 완전히 '적출'할 기회만 엿보고 있던 회사에게 코로나19는 최상의 핑곗거리였다.

노조파괴로 세종호텔의 외주화를 막을 힘이 사라지자 세종호텔은 급속도로 망가졌다. 해고자들이 일하던 식당 '베르디'에는 외부 업체가 들어왔고 예식장 자리에 피부과가 자리했다. 280여 명이던 정규직은 22명까지 줄어들었고 나머지 인력은 모두 비정규직으로 외주화했다. 그 결과 세종호텔은 4성급 호텔에서 3성급 호텔로 강등됐다. 민주노조의 존재가 호텔의 가치를 지탱하고 있었다는 증거였다.

정당한 정리해고는 없다

세종호텔 해고자들은 정리해고가 되자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하고 투쟁에 돌입했다. 중앙노동위원회까지 노동자들을 외면하자 법원의 판결을 받아보려 했는데, 대법원까지 패소했다.

법원은 회사의 코로나19로 인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다고 봤다. 해고를 회피하기 위한 노력이 충분했다고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회사는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지급되는 정부지원금도 신청하지 않았고, 즉시 30억 원을 받을 수 있는 자회사 배당금도 신청하지 않았다. 노를 놓아버렸는데 법원은 배가 앞으로 움직이려는 노력을 충분히 했다고 본 셈이다.

정리해고법이라고 불리는 근로기준법 제24조는 "사용자가 경영상 이유에 의하여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한다"고 되어있다. 그리고 "사용자는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하여야 하며, 합리적이고 공정한 해고의 기준을 정하고 이에 따라 그 대상자를 선정하여야 한다"며 마치 회사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정리해고를 남발하는 것을 막는 조항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긴박한', '노력', '합리적이고 공정한'과 같은 모호한 표현은 힘을 가진 사람이 마음껏 해석하고, 그에 따라 멋대로 해고할 수 있게 만드는 법이다. 참고로 세종호텔을 소유하고 있는 세종대학교 재단의 실세 주명건은 판사 출신 아들을 필두로 5명의 판사와 법조계 지인들이 그를 결사옹위하고 있다.

애당초 정리해고 제도의 존재가 문제였다. 잘못한 사람이 책임지는 것, 당연한 상식을 뒤집는 제도다. 회사의 경영이 어렵다면 그것은 회사를 경영하는 경영진에게 책임이 있다. 그런데 청천벽력과도 같은 해고는 노동자들의 몫이다. 윤석열 탄핵 국면과 닮은 점이 있다. 계엄령을 내리고 관저에 잠적해 있는 것은 윤석열인데 환율이 요동쳐 고통받는 것은 서민이다. 정리해고는 여기에 한술 더 떠 노동자의 삶을 담보로 경영진에게 기회를 주는 법이다.

▲세종호텔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2024년 7월 18일 서울 서초구 법원삼거리에서 '세종호텔 부당해고 2심 선고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사측 주장만 인정한 정리해고 판결을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네 세종호텔 해고자입니다. 뭐라고요? 지금 당장 출동하겠습니다!"

세종호텔 해고자들은 정리해고를 통해 회사가 전가한 책임을 짊어지는 것도 버거울 것이다. 그럼에도 기꺼이 연대가 필요한 다른 이들의 곁에서 함께한다. 매주 목요일마다 열리는 목요집회에 사람들이 많은 이유일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서울퀴어퍼레이드였다. 서울퀴어퍼레이드 행진 행렬이 농성장 앞을 지나간다는 소식을 알게 되자 세종호텔 해고자들은 상자와 크레파스를 꺼내 들었다. "피어나라 퀴어나라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도 지지합니다", "퀴어해방, 여성해방, 노동해방" 같은 문구의 피켓을 만든 것이다.

매해 퀴어퍼레이드에 직접 참여하기도 하고, 부득이 참여를 못했을 때는 행진 행렬에 환대를 보냈다. 그날 세종호텔 앞을 지나간 퀴어들에게 해고자들이 보낸 지지는 몇 년이 지나도 잊지 못할 기억이 됐다.

세종호텔 해고자들은 정말 열성적으로 연대한다. 세종호텔과 비슷한 사정으로 싸우던 아시아나케이오의 해고자들이 투쟁할 때 자신의 일인 듯 연대하기도 하고, 동국제강 고 이동우 노동자 유가족, 디앨이엔씨 고 강보경 노동자 유가족들이 서울로 상경해서 싸울 때도 곁을 지켰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있다고 하면 지역으로도 달려간다. 춘천, 구미, 울산, 부산, 거제 등 복직 투쟁을 하기 바쁜 시간을 쪼개 지역으로 달려간다.

부당한 일에 "지금 당장 출동하겠습니다"라며 열성적으로 연대해오던 세종호텔 해고자들에게 이제는 더 큰 연대가 필요하다. 사법 권력은 자본의 편을 들었고, 시간은 많이 흘렀다. 그럼에도 앞으로 새로운 투쟁을 결의했고, 세종호텔의 부당해고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연대의 힘이 필요하다. 매주 목요일 저녁 6시 30분 명동역 10번 출구 앞에서 만나자.

▲2023년 서울퀴어페레이드 행진 대열이 명동 세종호텔앞을 지나갈때 해고자들이 성소수자인권을 지지하는 피켓을 들며 응원하고 있다.ⓒ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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