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미래와 새로운 희망 '시민의회'

[복지국가SOCIETY] 기후재난, 국가가 해결할 수 있는가?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는 요즘, 시민들은 가장 좋은 한철을 맞이하고 있다. 날씨는 선선하고 오곡백과는 익고 있고, 자연은 온갖 색깔로 갈아입고 입고 있다. 짧은 가을을 즐기기 위해 주말 고속도로는 인산인해였다. 지난 여름의 폭염은 잊었고, 폭염의 상처인 금값배추의 현실만 남아 있다. 짧은 가을이 지나면 올 겨울 혹한이 예상된다고 한다. 아마 겨울의 혹한을 경험하면 지난 여름 폭염에 이어 기후재난에 대한 시민들의 위기감은 더욱 높아질 듯 하다.

기후재난, 국가가 해결할 수 있는가?

답답한 것은 기후재난에도 개개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기후재난의 절반 이상의 책임이 산업화를 주도한 유럽과 미국에 있기에 이들 선진국들의 뼈를 깎는 성찰과 지구촌 공생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런 노력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지난 과거의 잘못은 덮어놓고, 지금부터 인류 모두의 책임과 노력으로 극복하자는 것에 개발도상국들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산업화의 이득은 본인들이 가지면서, 그에 따른 오염을 외부로 돌리는 것은 '재난의 사회화·외주화'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들은 첨예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기후재난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잘 보이지 않는다. 만약 어떤 국가가 선의를 가지고 기후재난에 책임을 선도적으로 지겠다고 하면 해당 국가에서는 심한 사회적 논란에 빠질 것이다. 전 세계가 함께 책임지지 않는데, 왜 우리만 먼저 경제적·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는가 하는 논란 말이다. 마틴 부버가 <너와 나>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개인의 논리와 집단의 논리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국가와 같은 큰 집단들이 미래의 위험과 고통을 분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개인들 간에는 소통이 그래도 저렴한 비용으로 이뤄질 수 있지만, 집단이 커질수록 소통은 비용이 많이 들거나 아예 불가능하다. 그래서 국가간에는 소통이 아니라 힘의 논리만이 존재한다고 지적하는 것은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3월에 윤석열 대통령이 한일간의 관계개선에 초점을 두면서 '우리가 먼저 잔의 절반을 채우면, 일본이 나머지 절반을 채울 것'이라고 했지만, 1년 반이 지났지만 감감 무소식이다. 국제전문가들은 윤석열 정부의 이런 태도에 쓴 웃음을 지었고, 최근에는 나머지 절반도 대한민국이 채워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이 들린다. 기후재난은 인류의 생존을 좌우할 만한 엄청한 일이지만, 이런 국가간의 힘과 자국우선논리가 우선하기에 국가들간의 협상을 통해 해결한다는 것은 난망해 보인다. 이대로 가면 남탓 공방을 하다 약자들부터 기후재난으로 죽어갈 것이다.

시민의회, 시민들의 새로운 직접 정치

국가 혹은 국가간의 협상을 통해 해결할 수 없다면 문제해결은 영 불가능한 것인가? 아니다. 당장에 구체적인 피해를 입게 될 시민들에게 직접적인 권한을 부여한다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사실 국가와 정부는 상상된 추상화된 개념이고, 실재하는 것은 자기 몸을 가지고 고통을 느끼는 개인들이다. 실질적인 피해는 보는 것은 추상화된 국가가 아니라 아픔과 고통을 느끼는 개인들이다. 매우 높은 수준의 공감력과 감수성을 가진 정치인이 아니라면 국민 개개인들의 아픔, 그 아픔들의 총합인 국가의 아픔 나아가 인류와 지구촌에 아픔에 대해 공감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에게 정치는 밥벌이 수단이나 패밀리 비즈니스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전세계를 막론하고 정치는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런 정치인들이 갑자기 공감력이 높아지거나 도덕성이 민감해질 리는 없기에 미래와 세계는 비관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근대 대의정치가 가진 근본적인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대의정치를 벗어나지 않는 한 다가올 미래는 암울하다.

2019~20년에 프랑스에서는 '노란조끼운동'의 결과물로, 마크롱 대통령의 제안으로 '기후시민총회' (Citizens Convention for Climate, CCC)가 열렸다. 기후시민총회는 프랑스의 탄소 배출량을 2030년까지 1990년 수준에서 40% 줄이는 것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대통령의 제안으로 2019년 10월에 시작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일정이 연기돼 2020년 6월에 끝나는 7개의 세션으로 구성되었으며, 세션마다 세 번째 주마다 2일 반 동안 개최됐다. 2021년 2월 정부가 제안한 기후 법안을 평가하기 위한 8차 세션이 추가로 있었다. 9개월 동안 운영되면서 149개 권고사항을 도출했으며 특히 권고에 따라 헌법 1조를 '정부는 기후위기와 생태파괴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로 수정했다. 지구촌에서 처음 진행된 기후재난에 대한 국가단위 최초의 '시민의회'라고 볼 수 있다.

시민의회는 기존의 의회나 정당, 정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기 때문에 도입된 일종의 '시민들의 직접·숙의·추첨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대의된 정치는 정치인과 정당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사회적으로 중요한 과제에 대해 왜곡된 방향 혹은 방치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때문에 인구집단의 통계적 대표성을 가진 시민들을 무작위로 추첨으로 선발해 해당 주제에 대해 3개월~1년까지의 기간동안 충분한 정보제공, 깊이있는 토론을 가지면서 시민들의 집단지성을 모으는 과정이 시민의회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 '기후시민총회'의 성과와 한계 그리고 과제

시민의회는 2010년 이후 전세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의 위기'와 함께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엘리트 중심의 대의제와 정당정치의 한계, 가짜뉴스의 범람, 정치의 양극화 등 정치의 위기가 심화되면서 추첨으로 선발된 시민들이 충분한 기간동안 숙의하면 합리적인 시민적 지혜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직접민주주의와 대의제가 융복합된 형태라 할 수 있다.

프랑스 기후시민총회는 8회의 세션을 통해 1) 총회의 역할 정의 2) 총회가 답변할 가장 큰 질문 3) 외부 전문가와의 회의 4) 5개 작업 그룹에서의 작업과 대통령의 방문 6) 제안서의 검토와 제출 7) 제안서에 대한 투표를 했다. 총회는 워킹그룹 전체의 총 149개의 제안을 승인했으며, 이 중 마크롱 대통령은 146개의 제안을 이행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의회가 총회의 제안에 대한 응답으로 작성된 법안을 발표했을 때, 그 법안에 주요 조항이 많이 포함되어 있아 총회 대다수 구성원들은 분노했고, 의회에 낙제 등급을 매겼다.

시민의회는 아직 전세계적으로 도입 초기이지만, 지구촌과 해당 국가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이다. 시민 개개인들의 기후문제, 정치문제가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고, 동료 시민들과 숙의하면서 현명한 결정을 해나감으로써 대의정치가 해결하지 못하는 사회적 난제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다. 전 세계의 시민들이 직접민주주의와 시민의회에 좀더 관심을 가지고 시민들이 자기조직화를 해나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윤석열 정부에서 협력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시민들은 시민의회에 대한 정치적 요구를 모으고 구체화시키는 활동을 추진해나가야 한다. 그래서 기후재난 문제 뿐만 아니라 헌법과 선거법, 정당법 등 기존의 정치권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시민들의 지혜로 직접 해결해 나가야 한다. 지난 촛불시민혁명의 한계를 극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의 추락을 막기 위해서는 이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7일 오후 서울 강남대로에서 열린 기후위기 대응 촉구 대규모 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 윤호창 /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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