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망국적 저출생' 반등 가능합니까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시민은 국가를 위해 아이를 낳아주는 도구가 아니다"

"가족 및 성평등 정책이 가진 목표 중 하나는 남녀 모두가 부모가 될 수 있고, 자녀에 대해 실질적 책임을 다하면서 동시에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부모휴가를 이용하는 것은 자녀에게 중요하다.

또한 아버지들의 부모휴가 사용 증가는 상사들이 일을 계획하고 조직하는 데 부모휴가를 애초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함으로써 이들의 태도 변화에 기여할 수 있다. 이런 변화는 남녀 모두가 자신의 경력이나 직장에서의 추가 발전 기회를 위험에 빠뜨린다는 느낌 없이 부모휴가 사용을 감행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필요하다. 또 다른 이유는 가사와 자녀에 대한 실질적 책임이 주로 여성에게 남아있는 한 여성들이 노동시장에서 남성들과 평등한 위치에 도달할 수 있는 기회가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장기적으로, 아버지들의 부모휴가 사용 증가는 직장, 사회, 가족 내에서 여성과 마찬가지로 남성 역시 자녀를 기르고 돌보는 실질적인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인식하게 할 것이다."(Social departement(스웨덴 보건복지부), 1994: 66~7)

시민사회의 주장이 아니다. 스웨덴 기업가연합을 설득하는 스웨덴 정부의 입장이다. 스웨덴 정부는 성평등 가치가 돌봄 정책에 있어서 중심을 차지해야 함을 제대로 짚어내고 있다. 스웨덴은 1970년부터 돌봄 정책에 있어 진보 보수 정부 무관하게 성평등 가치를 일관적인 기조로 삼으며 50여 년에 걸쳐 정책을 발전 시켜오고 있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아버지 육아휴직 참여율 저조를 타개하기 위해 1995년 비교적 급진적인 방안인 할당제를 도입한 것이 중도우파 정부라는 점이다.

70% 그리고 3.8%

한국의 저출생은 망국적인 징후를 보인다. 현재 한국의 출산율은 0.65명으로 OECD 국가 중 유일한 1명 미만 출산율이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보다 낮다. 우크라이나의 출산율은 0.7명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지난 6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인구전략기획부'를 신설해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일·가정 양립, 양육, 주거 등 3개 핵심 분야로 나눠 저출생 대책을 발표했다. 국회는 '모성보호 3법'을 개정하며 발맞췄다. 과연 반등할 수 있을까? 정부 대책의 면면을 살피면 회의적이다. 시민은 국가를 위해 아이를 낳아주는 도구가 아니다. 지금까지 정부 정책이 실패한 원인과 낮은 출산율이 내포하는 의미를 알아야 저출생 해소에 다가설 수라도 있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등 대표적인 저출생 대책인 돌봄 시간지원 정책부터 살펴보자.

▲ 저출생 대책 모아보기 육아휴직 편.(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24.9.26)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른 법정 유급휴가인 배우자 출산휴가는 20일로 늘었다. 사용 절차 또한 배우자 출산 후 120일 내 청구에서 고지로 개선되었다. 육아휴직의 경우 소득대체율이 높아지고, 사용 일수와 분할 횟수가 늘어나는 등 돌봄 시간지원 정책의 세부적인 측면에서 진일보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윤석열정부 저출생 대책은 관성적이며 한계가 뚜렷하다. 여성이 자녀 돌봄을 독박하는 구조를 개혁하지 못하면, 저출생 대책의 실효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정부는 기존의 시간지원 정책의 보장 측면에서만 강화했다. 여성이 돌봄을 독박하는 구조를 개혁할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 시간지원 정책 강화에 있어서도 성평등 가치에 기반한 남성 돌봄 분담이 중요하다. 한국 사회의 남성이 얼마나 돌봄을 분담할 수 있는 구조인지 살펴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의 남성 육아휴직 사용자 숫자는 OECD 기준으로 매우 저조하다. 정부는 전체 육아휴직 사용자 중 남성의 비율이 처음으로 30%를 넘었다고 호들갑이지만, 2023년 기준 북유럽 복지국가의 출생아 100명당 유급 부성휴가 사용 비율은 룩셈부르크가 95.0%, 네덜란드(91.1%), 슬로베니아(90.1%), 핀란드(78.6%), 스웨덴(77.5%), 덴마크(73.3%)에 이른다. 한국 정부가 홍보하는 것처럼 숫자의 단순한 오름세만으로 저출생 대책 방향성이 올바른지 가늠할 수 없다. 육아휴직 사용자가 늘었다는 통계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가 얼마나 저출생 대책에 포괄되고 있는지에 대한 실상이다.

통계청 ‘육아휴직 사용 통계’에 따르면 기업 규모별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자 비중은 300인 이상 대기업 종사자의 경우 70.1%, 4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3.8%로 집계된다.

한국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중소기업 노동자는 대체인력 구인이 어렵고, 휴직자의 업무 분담 자체가 난처한 경우가 많아 육아휴직 제도가 있음에도 쓰기 어렵다. 반면 대기업의 문화는 자녀 돌봄에 친화적으로 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정부의 저출생 대책은 계층적 차별을 심화한다. 육아휴직 소득대체율 인상 등은 꼭 필요하고, 제도 활성화에 긍정적인 부분이 있지만, 그 제도에 포괄될 수 있는 사람들의 상황만 개선한다는 점이 문제다. 중소기업 노동자, 플랫폼·특수고용노동자 등 불안정 노동자에게 정부 대책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기존에도 고용형태별 돌봄 격차가 심각하다는 것은 수많은 연구를 통해 증명되었다. 남성의 교육 수준, 배우자의 교육 수준, 소득 수준, 고용 형태, 기업 규모에 따른 육아휴직 사용 영향을 분석한 연구들을 살피면,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Geisler & Kreyenfeld, 2012; Duvander, 2014), 고소득층일수록(박미진, 2017: 46), 정규직일수록(Geisler & Kreyenfeld, 2012), 대기업이나 공공부문에 재직할수록(김진욱・권진, 2015)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률이 높았다. 심지어 성평등 인센티브를 확대 적용한 육아휴직제 또한 저소득 남성에게는 유의미한 영향이 없고 고소득 남성 집단에게만 유의미한 것으로 드러났다(박미진, 2017). 계층 문제와 성차별 등 다층적인 차별이 심한 한국에서 기존 저출생 대책만 관성적으로 강화함으로 어떻게 저출생 반등을 이루겠다는 것인가.

성평등 가치와 제도의 유연성 확보

단순한 보장성 강화가 아니라 성평등의 관점에서 돌봄 분담을 이뤄야 한다. 출산과 육아의 계층화와 성차별 등 다층적인 차별을 넘어야 한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등 돌봄 시간지원 정책의 실질적인 사용률 제고가 가능하다.

스웨덴은 남성의 부모휴가 참여가 저조한 실상에 대응하기 위해 '남성 역할에 대한 특별조사위원회(Arbetsgruppen om mansrollen)'를 꾸렸다. 실효성 있는 남성 자녀돌봄 분담을 이루기 위해 1985년부터 1992년까지 14개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 결론 중 하나는 스웨덴 남성이 성평등을 지지하는 태도를 가졌지만, 그들의 행동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Kommittédirektive. 2012). 스웨덴 남성들의 이상과 행동 간 괴리를 두고 '원칙상의 남성(i-princip-mannen)'이라고 표현하며 대책을 촉구했다(Jalmert, 1983). 보고서 내용이 기반이 되어 중도우파 정부에서 1995년 '아버지의 달'로 알려진 부모휴가 남성 할당제가 도입된다. 스웨덴의 경우 좌우와 무관하게 남성 돌봄 분담 정책화 과정에서 성평등 가치를 중심에 두었고, 남성의 실질적 돌봄 분담 증가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 양육을 주도하는 아빠!(BARNLEDIG PAPA!), 1978.(출처: 스웨덴 사회보험청)

남성 돌봄 분담을 위한 제도 개선의 방향은 돌봄 정책 프로그램의 제도적 유연성을 확보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육아휴직 등 보장성 강화 중심의 대책은 돌봄의 영역에서조차 여성과 남성의 격차,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격차,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를 심화한다. 남성의 육아휴직 등 시간지원 정책 사용률 제고에는 제도의 유연성이 경제적인 보상보다 더욱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 독일 노동경제연구소(Institute of Labor Economics)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육아휴직 사용의 유연한 선택이 보장되자, 사용률이 23% 증가해, 소득대체율 상향(13%)보다 더욱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스웨덴 또한 프로그램 차원에서 제도의 유연성을 최대한 확대했다. 강제력이 있는 ‘아버지의 달’ 할당제 도입 배경에는 스웨덴 부모휴가 제도의 유연성이 기반 돼 있다. 하루 노동 시간 기준 100%, 50%, 25%로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기에 개별 노동자가 각자의 일과 가정 상황에 맞춰 할당된 부모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국의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은 법적인 강행규정이다. 회사 내부 상황이나 내규 등을 들어 사용을 막으면 위법이다. 노동자가 원함에도 육아휴직이 어렵다면,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 등을 활용하여 노동자의 육아 지원을 위한 조치를 하는 것이 사업장의 의무다. 그럼에도 사용률이 늘지 않는 것은 중소기업 노동자, 플랫폼·특수고용노동자 등 천차만별인 개별 노동자들의 일과 가정 상황에 맞춰 돌봄 시간 계획을 구성하기에 제도의 경직성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경직된 제도 환경 속에서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재직 근로자만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돌보는 남성을 전제로 한 스웨덴의 남성 돌봄 시간지원 정책 기본방향 중 하나는 '부모의 일・자녀돌봄에서의 시간주권 보장'이 있다. 시간주권이 보장돼야 시간자원을 어떻게 사용하여 일하고 노동할 것인지에 대한 시간 계획이 가능하다. 시간지원 정책 보완에 있어서 노동자가 일과 가정 돌봄 사이의 시간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동 시간과 공간 사용의 자율성을 담보하는 제도의 유연성을 담보할 필요가 있다. 시간과 공간 사용의 자율성을 제고하기 어려운 사업장에서는 더욱 강제성이 있는 남성 돌봄 분담 정책을 도입해야 할 것이다. 그 이후에야 남성 돌봄 분담률이 유의미하게 높아질 수 있다.

다층 차별 해소 시간주권이 시작이다

고용형태별 차별을 해소하고, 여성 독박 돌봄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가족구조와 노동 환경 양상을 포괄하는 유연한 시간지원 제도를 확장하자. 성차별,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차별, 심지어 외국인 가사 노동자까지 도입하겠다는 다층 차별에 기반한 정책은 실패가 자명하다. 돌봄을 여성에게 전가하고, 외국인 여성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착취적 구조에 대한 자성이 필요하다.

이제 남성이 돌봄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계층과 고용형태와 무관하게 모두가 돌볼 수 있어야 한다. 돌봄 또한 시간의 등가물이다. 노동에 시간이 전속되는 한 돌봄은 불가능하다. 모두가 모두를 돌볼 수 있도록 ‘시간주권’을 부여하는 일부터 시작하자.

* 참고자료

- 박은정 등 4명. 2023. '평등한 돌봄권 보장을 위한 자녀돌봄 시간정책 개선 방안 연구(Ⅱ): 남성의 돌봄권 보장을 중심으로', 육아정책연구소

- 허민숙. 2024. '남성 육아휴직 사용 활성화 및 제도 유연성 확보: 육아휴직 조부모의 대신 사용 및 분할 사용 확대', 국회입법조사처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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