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은 일년 농사가 헛것이 됐네요."
폭우에 보성강물이 배수관로 맨홀을 따고 역류하면서 배수펌프장 인근 논이 물에 잠기는 피해를 입고 벼멸구 등 병충해를 입었다.
26일 보성군과 광주지방기상청 등에 따르면 하늘에서 물폭탄이 쏟아지던 지난 21일 보성지역의 호우경보는 오후 7시 20분께 해제됐지만 지속적인 보성댐의 방류로 하류인 보성군 겸백면 석호리 상가마을 인근 보성강 수위는 오후 9시 40분께 최고조에 달했다.
오후 10시 이후 수위가 임계점을 넘어서자 군 담당자는 상가 배수펌프 작동을 중지시켰고 펌프장 주변 저지대가 물에 잠겼다.
이후 관계자가 배수관로 맨홀 뚜껑이 열려 역류했다는 것을 파악했다.
이번에 침수 피해를 본 상가 배수펌프장의 펌프는 총 4개로 가동 펌프 3개와 1개의 예비펌프로 구성돼 있다.
사고 후 납품업체에서 점검을 해보니 1개의 가동 펌프에서 전기적인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 파악됐다.
업체 관계자는 "펌프 가동 중 전기시설에 물이 들어가면 케이블을 타고 펌프에 감겨있는 코일이 타버리는데 이를 확인하려면 인양을 해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피해를 입은 농민 정형운씨(88)는 수확을 코앞에 두고 맞은 날벼락에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정씨는 "예로부터 이곳은 농토가 좋기로 유명한 곳이다"면서 "지난번 비가 온 뒤에 멀쩡하던 논에 벼 멸구가 들끓고 있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논 한가운데 쓰러진 벼를 가리키며 "벼멸구 먹으면 저렇게 볏대가 붉어지면서 누워버리고 못쓰게 된다"며 "올해 기대가 컸는데 잘 지은 일년 농사가 헛것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벼에 낱알이 달리면 농약을 해도 벼 멸구가 죽지 않으니 참 난감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정씨는 "그나마 위안인 것은 배수펌프장 인근 논만 반수 피해를 입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현장을 확인한 결과 펌프장 주변 배수관로 맨홀뚜껑 한 곳은 살짝 들려 있었다. 긴급 조치로 업체에서는 맨홀뚜껑에 볼트를 보강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현장 관계자는 "원래 이곳이 비가 오면 계곡에서 토사가 흘려 내려오고 쌓이면서 상습적으로 침수되는 곳이다"며 "배수펌프장이 생긴 후로 침수되는 일이 없었는데 댐 방류로 강물 수위가 높아져 배수관로로 역류하면서 생긴 문제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보성군은 상가 배수펌프장의 관리를 소홀히 한 것을 인정하고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를 이어간다는 입장이다.
보성군 관계자는 "사고 당일 호우경보가 해제된 상태에서 상가마을 배수펌프장은 관리가 소홀했던 것은 사실이다"며 "이 일을 교훈 삼아 향후 배수펌프 전기부품 교체, 관로공사, 맨홀 보강 등 폭우에 대비해 철저한 대응을 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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