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가정에서 전기, 가스, 수돗물을 사용하고 일반 쓰레기, 음식물 쓰레기, 생활하수를 배출한다. 그 가운데 전기, 가스 등은 중앙정부가 국가적 시스템으로 생산, 공급하고 있고 수돗물은 지방자치단체가 생산, 공급하며 일반 쓰레기, 음식물 쓰레기, 생활하수 처리를 담당하고 있다. 도시가 지속 가능하게 운영되기 위해서 필수적이고 핵심적인 요소로 지방자치의 중요한 영역이다.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보호하는 자치행정
특히 모든것이 중앙정부로 집중된 상황에서도 수돗물은 수십 년 동안 지역별로 자체적으로 생산, 공급해 온 상황으로 지방도시에 있어 상수원 보호구역과 지방정수장은 자치행정의 백미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수돗물은 기본권, 생존권에 해당하는 공공재로서 한 도시가 수돗물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시민 삶과 도시에 핵심적인 경쟁력인 것이다.
우리가 매일 먹고 마시는 수돗물은 어떤 물을 원수로 해서 만들고 어떻게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집, 사무실, 가게, 공장에 도착하고 있을까? 익산은 완주 고산 어우보에서 원수를 취수하여 대간선수로를 통해 28km를 흘러온 물을 자체정수장 옆 신흥저수지에 펌핑해서 저장해 두었다가 수돗물을 생산한다. 익산은 자체정수장에서 생산한 물 40%, 수자원공사가 용담댐 호소수 물 정수해서 공급하는 물 60% 정도를 사용하고 있다.
대간선수로는 1923년 일제가 익산, 완주, 군산 드넓은 평야의 쌀 수탈을 위해 만든 농업용수 공급 수로다. 익산시는 대간선수로 물을 활용하여 수돗물을 생산해 왔고 그런 이유로 수질이 한강 물, 낙동강 물보다 깨끗한 1,2급수로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다. 완주 어우보에서 익산까지 28km를 햇빛을 받고 광합성작용을 하며 흘러오는 대간선수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길고 유일한 상수원 수로로서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 정수장 478개 가운데 지방정수장은 440개, 수자원공사 정수장은 38개가 운영 중이다. 지방정수장이 수돗물 70%를 공급하고 있고 수자원공사가 30% 공급하고 있는데 전량을 지방정수장에서 생산, 공급하는 곳도 있고 지방정수장과 광역상수도를 병행하여 둘 다 공급받는 곳도 있다. 지방정수장의 대표적인 수돗물이 서울시가 한강 물로 만드는 아리수다. 수자원공사가 운영하는 정수장에서 2개 이상 도시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형태를 광역상수도라고 칭한다.
서울, 대구, 대전은 100% 지방정수장에서 공급하고 있고 전북, 인천, 광주, 경기도는 병행 공급하고 있다. 전북 14개 시군의 경우 지방정수장을 폐쇄하고 광역상수도 수돗물 100% 공급받는 도시는 전주, 군산, 정읍, 김제, 완주, 장수, 고창 7개 도시이다. 자체 생산하는 도시는 익산 2개, 남원 1개, 진안 4개, 무주 5개, 임실 2개, 순창 2개, 부안 1개 등 7개 도시에서 총 17개 자체정수장을 운영하며 병행 공급하고 있다.
수자원공사 광역상수도는 물 생산 원가가 상대적으로 비싸고 물이용부담금을 톤당 170원씩 추가로 부담해야 해서 지방정수장 수돗물에 비해 통상적으로 비싸다. 자체정수장을 갖고 있으면 수돗물 가격을 결정하는 물 주권을 갖고 있게 된다. 또한 수자원공사 수돗물을 100% 공급받고 있는 도시는 광역상수도에 이상이 발생하면 도시 전체가 단수를 해야 하지만 지방정수장을 운영하며 병행 공급하는 도시는 가뭄, 지진, 폭우 등 자연재난, 기후변화 대응 차원에서도 2개의 루트가 있는 것은 비교할 수 없는 강점이다.
수질의 안전성과 안정성, 가격의 경제성, 위기대응 등 어느 면에서 보아도 수돗물을 자체 생산하는 것이 시민에게 훨씬 이롭다. 상수원 보호구역을 해제하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 도시의 단체장은 먹는 물 주권을 수자원공사에 넘기기보다 보호하고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익산시가 상수원 보호구역을 해제, 지방정수장 수돗물 생산을 폐쇄하고 100% 수자원공사에서 수돗물을 사 먹는 것으로 전환하려 하고 있다. 이런 익산시의 정책추진은 신흥저수지 수변공원 조성과 주변 개발을 위해 상수원 보호구역 해제하려 하는 것으로 비판과 우려 섞인 시선들이 많다.
한계를 드러내는 대의민주주의와 지방행정
현재 지방자치단체가 급수 체계를 변경하려면 환경부에 수도기본계획 변경을 승인받도록 되어 있다. 환경부는 익산시가 제출한 상수원 보호구역 해제, 지방정수장 폐쇄를 통한 광역상수도로 100% 전환 계획에 대해 몇 가지 시설개선 조건들과 함께 다음과 같은 승인조건을 달았다. "물이용부담금 등 수도요금 인상 등의 사유로 시민들이 광역용수 전환을 반대할 수 있으므로, 시민들과 사회적 합의(공청회 등)를 하여야 함"이라는 조건부 승인 조건을 제시했다.
이러한 승인 조건에 따라 익산시는 지난 6월 7일 수돗물 공청회를 개최했는데 찬성 패널 5명만 초대해 편파적이고 일방적이며 불공정하게 진행했다. 주로 공무원과 동원된 주민들이 대다수 참석한 자리였고 익산시장은 공청회에 참석하지도 않았고 부시장도 인사말만 하고 바로 자리를 떠났다. 광역상수도 전환 시 요금인상 계획 및 소요비용 관련 정보 왜곡도 심각해서 시의원과 시민단체로부터 큰 비판을 자초했다.
시민단체는 익산시장에게 공론화위원회를 구성을 요구하였으나 수용하지 않았고, 이 과정에서 비판이 거세지자 시민여론조사를 진행해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시민여론조사 또한 일방적이고 불공정하게 추진하였고 통리장 회의에서 왜곡된 정보들을 일방적으로 설명하기에 바빴다.
이에 익산지역 20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익산환경문제해결 범시민대책위원회'(익산환경공대위)에서 익산시장 면담을 요구하고 공개토론회, 공정한 여론조사 진행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공개토론회는 수용하지 않았고 다만, 공정한 여론조사를 위해 광역 전환 찬반 입장을 익산시 소식지에 각 1면씩 게재하고 시민여론조사 시기, 문구를 익산환경공대위와 협의하여 추진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얼마나 퇴행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일방적이고 불공정한 공청회를 요식행위로 진행하고선 마치 시민적 합의 절차를 이행한 것처럼 포장하고 중앙정부도 이에 대해 별다른 검증 없이 수용해 버리는 것이 현재 관성화된 행태들이다.
특히나 호남이나 영남과 같은 일당독식의 비정상적인 정치구조에서 지방자치단체의 객관적인 의견수렴, 시민과 사회적 합의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영호남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이 하고자 하는 일에는 막힘이 없으며 대통령보다 더 막강한 소통령으로 가히 제왕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직접민주주의 강화'에 답이 있다
시민의 생존권, 기본권, 시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중대한 중요사안은 국민이 직접 결정하는 국민투표와 같은 직접민주주의 도입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익산시 상수원 보호구역은 1971년에 지정하여 53년이 되었는데 한 번 해제하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게 되어 수돗물 생산은 영원히 불가능하게 된다. 그런데 시민의 삶과 도시의 미래와 관련해 이렇게 중요한 일을 익산시장, 익산시의원들이 결정하는 것은 대의민주주의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게 아닐까.
직접민주주의를 시행하고 있는 스위스는 1년에 4회 정기적으로 국민투표가 진행되고 6개월 정도 충분한 토론과 숙의 기간을 거친 후 투표에 들어간다. 대만 국민투표법은 만 18세 이상 유권자 수 0.01%가 모이면 투표에 상정할 안건에 대해 서명을 시작할 수 있고, 1.5%의 서명을 얻으면 국민투표에 부쳐진다. 비용 등 효율성 측면을 고려하여 선거가 치러질 때 함께 진행되고, 결정된 안건에 대해서는 2년간 반하는 정책을 펼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스위스, 대만은 국민투표를 통해서 매년 평균 1% 화력발전량 감축, 화력발전소 신설 및 확장 중지, 일본 후쿠시마 및 4개 지역 농산물 수입금지 유지, 민법을 통해 동성 간 혼인 관계 보장, 원자력발전소 운영 중단 규정한 ‘전기법’ 조항 폐지(탈원전 정책 중단) 문제 등을 결정했다. 헌법 개정, 선거구 획정, 선거제도, 기타 주요한 법령 등은 국민투표를 통해서 결정하고 그 외의 것들은 지금과 같이 대의정치를 통해 운영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추첨으로 선발된 시민들이 선거제도 개혁, 헌법 개정, 기후위기 대응 등 주요 이슈에 대해 일정 기간 숙의를 통해 결정한 사항을 정부나 의회에 권고하는 시민의회가 직접민주주의 대안으로 소개되면서 입법화를 촉구하는 움직임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캐나다, 아일랜드, 프랑스, 영국 등에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각종 위원회, 공청회 등의 요식행위만으로도 모든 것이 충족되는 현재의 대의민주주의는 한계에 직면했다. 충분한 찬반토론, 공정하고 객관적인 정보제공이 되지 않은 여론조사는 민의를 충분히 반영하는데 한계가 있다. 국민투표나 시민의회는 일정한 기간을 두고 충분한 정보 제공과 학습을 바탕으로 찬반 입장을 경청하고 토론을 거쳐 결정하기 때문에 진정한 국민의 목소리를 반영하는데 더욱 효과적이다.
정치적 이해관계로 여야가 극한 대립을 하고 있어 대의민주주의가 위기상황에 빠져있을 때 주권자로서 국민이 직접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직접민주주의 가치가 더욱 중요하고 절실하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국민투표, 국민발안, 국민소환, 시민의회와 같은 직접민주주의 도입은 국민주권 실현과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최우선적으로 실현되어야 할 개헌과제가 활발하게 논의되면서 제7공화국 헌법에 반영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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