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자본주의는 가고 '강탈'자본주의가 온다

[인문견문록]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

서울대학교에서 마르크스경제학 강의가 사라졌다. 자본주의를 열심히 실천하는 일본조차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의 학회인 경제이론학회의 회원이 약 1000명에 이른다. 주류경제학 학회와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다. 일본 경제기적 시기의 고위관료들은 도쿄대학에서 우노 고조(宇野弘藏)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즉 정치경제학을 배운 사람들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데이비드 하비의 책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선순환 펴냄)을 꺼내들었다. 지리학자이자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세계적 석학인 그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었다.

하비는 현재 발생하는 세계적 갈등의 원인을 신자유주의에서 찾는다. 하비는 신자유주의를 '소수 엘리트층에 부와 권력을 집중시키고자 하는 계급 프로젝트'라고 정의한다. 1970년대 환경규제법, 소비자보호법, 산업안전보건법 등 불리한 법안들이 줄줄이 통과되자 독과점 대기업은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한다. 서민친화적인 사회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 기업들은 주요 기업 총수들의 모임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Business Roundtable)과 상공회의소 등을 비롯한 각종 우파 싱크탱크와 단체들을 조직했다. 이들은 먼저 공화당을 포섭하려했고 특히 우파 기독교 중심으로 정치적 기반을 마련했다. 이들의 운동을 이론적으로 지원한 것이 정부 개입을 극도로 축소하고 시장의 자유만을 강조한 '통화주의 이론'과 수요를 중시한 케인즈경제학에 반대하는 '공급중시 경제학'이었다. 공급중시 경제학은 특히 '노동력 공급'을 중요시했다. 당시 미국 노동자의 많은 수가 노동조합으로 결집되어 있었다. 전미자동차노조 등의 대형노조를 약화시키는 것이 이들의 핵심 목표였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해 정치권을 이용했다. 선거자금을 지원한 것이다. 대기업의 로비를 통해 선거자금의 전면적 지원이 연방정부 차원에서 허용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대기업과 특권층은 정치권력을 수중에 넣게 된다. 이들은 정치권력에 멈추지 않고 언론과 대학을 장악해 나갔다. 맨해튼 인스티튜트, 전미경제연구소, 올린재단, 해리티지재단 등의 싱크탱크들은 출판물과 연구작업을 통해 신자유주의적 담론을 만들어냈다. 개혁을 약속한 클린턴은 원래 자신의 정책과는 달리 북미자유무역협정 나프타(NAFTA)를 체결하고, 금융규제법인 글래스-스티걸법을 폐지했다. 재무장관 루빈을 위시한 다수의 클린턴 행정부관료가 신자유주의의 핵심주도세력으로 채워졌다. 친기업, 반노동자를 전면화한 신자유주의는 순항하는 듯 보였지만 2007~08년 금융위기를 맞는다. 7백만 가구가 집을 잃는 상황에서 구제금융을 받은 월스트리트 직원들은 300억달러가 넘는 보너스를 받았다. 모두가 잘사는 사회를 약속한 신자유주의는 소수에게는 부의 축복을 다수에게는 삶의 질 저하를 가져왔다. 드디어 사람들은 신자유주의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게 되었다. 하비는 신자유주의에는 시스템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이 내재해 있다고 말한다. 어떤 모순일까?

하비는 신자유주의를 분석하기 위해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참고한다. 하비의 설명이다. "<자본론> 1권의 마지막에 마르크스는 자본가에게 막대한 힘이 쏠린다면 노동자에 대한 착취는 증가할 것이고 자본가들은 이를 통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윤의 극대화는 임금 축소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제 저서 <신자유주의의 간략한 역사>(최병두 옮김, 한울 펴냄)에 나오는 주요 그래프를 보면 1970년대 이후 국민 총소득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생산성증가가 실질임금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았던 것이죠. <자본론>1권에서는 대규모 빈곤 인구의 증가 및 실업률의 증가, 쉽게 쓰다 버릴 수 있는 노동인구의 등장과 점점 커져가는 고용의 불안정성을 예측하고 있습니다."(상기책 인용 인용미기재시 동일) 이 지점까지는 자본가의 이익이 여실히 관철된다. 하지만 곧 자본가들은 자신들이 밀어부치는 정책의 내재적 모순과 직면하게 된다. '유효수요'의 문제다.

하비의 이어지는 주장이다. "<자본론>2권을 보면 다른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중략) 노동자의 힘을 지속적으로 축소하고 임금을 계속 낮춘다면 다음과 같은 중요한 질문이 따라옵니다. '시장은 어디에 있으며 시장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그래서 마르크스가 <자본론> 1권에서 언급하기 시작했던 노동력착취와 임금 축소를 통한 이윤의 극대화로 인해 자본가들은 시장에서 어려움에 직면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노동자의 임금을 줄이면 줄일수록 시장도 계속해서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시대의 핵심 모순 중 하나입니다."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자본가들의 집단적 노력은 결국 총수요의 감소로 이어진다는 의미다. 이것을 돌파하기 위해서 자본가들은 어떤 시도를 하게된다. 공간적 해결과 강탈이다.

하비에 따르면 자본의 성장률은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감소한다. 절대적 총량은 증가해도 증가율은 줄어들게 된다. 자본가는 특단의 대책을 고안해낸다. 하비는 '공간적 해결'(spacial fix)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특정 공간 안에서 자본의 성장이 원활하지 않을 때 자본은 공간적 확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 하비의 설명이다. "자본이란 성장하는 것이며, 성장하면 팽창합니다. 따라서 자본의 지리학이란 자본이 한 공간 내에서, 또 그 공간을 넘어 끊임없이 팽창하는 것에 관한 학문이죠. 특정한 영토 내에서의 자본의 팽창은 궁극적으로는 자원, 인구, 사회기반시설 등에 의해서 제한을 받습니다. 그 영토 내에서 특정 시점이 되면 자본의 팽창은 한계에 도달하죠. 따라서 지상의 특정 장소에 잉여자본이 계속 쌓이게 되는데, 이 때 잉여노동력도 함께 쌓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잉여자본은 이익을 낼 수 있는 배출구를 필요로 하죠. 이 자본들이 어디로 갈 수 있을까요? 한가지 해답은 식민지를 만드는 것입니다. 또 다른 답은 자본을 수출하는 것입니다. 자본이 발달하지 못한 곳을 찾아 자본을 보내는 것이죠. 이것이 제가 말하는, 자본의 과잉 축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공간적 해결'입니다."

서구열강이 식민지진출과 자본수출에 광분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세기 중반 이미 잉여자본문제가 심각했던 영국은 아르헨티나에서 대출을 통한 자본수익을 추구했다. 미국의 잠재성을 간파한 영국 자본은 미국을 자본의 새로운 중심으로 만들었다. 과잉축적으로 수익률 문제가 생긴 영국 자본은 미국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았다. 이후 자본은 미국, 일본, 유럽을 지나 한국, 대만으로 행한다. 이후 일본, 한국, 대만은 중국으로 진출했다. 중국 역시 잉여자본 문제가 발생하자 일대일로를 추진하기 시작한다. 중국 자본이 중앙아시아, 아프리카를 향해 물밀 듯 밀려간다. 하비는 이런 자본의 '공간적 해결'을 말하면서 지난 두 번의 세계대전에 주의할 것을 경고한다. "자본의 복리성장 논리가 지정학적으로 구현되고 있는 것이죠. 이를 지리적으로 매우 주의깊게 살펴봐야 합니다. 이런 종류의 일이 지난 세기에 세계대전을 두 번이나 일으켰습니다. 지정학적인 경쟁관계가 두 번 다 개입되었습니다. (중략) 193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과잉축적 자본을 공간적으로 해결하려다 지정학적인 경쟁 관계에 빠진다면? 바로 그때가 한걸음 뒤로 물러서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때입니다." 새롭게 유입될 경제식민지가 보이지 않을 때 각국의 자본은 서로 경쟁적으로 세계의 분할지배를 시도한다. 중·러의 대륙세력을 봉쇄함으로써 해양세력의 권역을 방어하고 확장하려는 움직임이 정확히 자본의 '공간적 해결'을 의미한다.

신용카드를 통한 부채경제의 확대도 공간적 팽창도 쉽지 않을 때 자본은 '강탈'을 시도한다. 하비는 자본주의사회에서의 강탈을 이렇게 정의한다. "특정 자본가계층이 이미 축적된 재산을 탈취하거나 훔치는 방식으로 자본을 축적해가는 것." 왜 강탈에 의한 자본축적에 주목해야 할까? 생산과정의 산 노동(living labor)을 착취하는 것만으로는 자본은 충분한 잉여를 만들어내기 힘들어졌기에 자본은 강탈에 의한 축적에 점점 더 의지하게 된다. 기업인수, 합병을 통한 독점적 지배는 흔한 사례다. 지역 재개발을 명분으로 하는 젠트리피케이션도 강탈의 한 경우다. 가장 핵심적인 강탈은 조세에 대한 조정을 통한 막대한 부의 탈취다. 왜 현 정부가 낙수효과라는 경제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이론에 매달리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정부의 양도세율 조정을 자본에 의한 '강탈'이란 시각으로 바라보면 진실이 보인다. 이것은 선진국에서 70년대부터 본격화한 강탈에 의한 자본축적이 한국에서도 전면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얼핏 허술해 보이는 윤석열 정부의 정책 하나하나가 사실은 자본의 요구에 대한 전면적인 부응이었던 것이다. 다만 수단이 '강탈'인 것이다.

인클로저 운동은 빈농의 토지를 강탈하여 대규모 목축지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 토지를 잃은 농민층은 도시의 빈민굴로 몰려들 수 밖에 없었다. 이들에게 남은 것은 노예노동할 자유뿐이었다. 자본주의는 최초의 축적부터 '강탈'에 의존했다. 사람들이 간과하는 사실은 이런 강탈의 대부분은 법령과 절차에 의한 적법행위였다는 점이다. 자본의 강탈은 국회의 입법과 정부수반의 정책결정으로 뒷받침된다. 그러므로 이에 저항하는 행동은 불법행위가 되기 마련이다. 왜 최근 들어 정부는 '반국가세력'을 운운할까? 강탈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움직임을 사전 차단하려는 의도 때문일 것이다.

하비의 책은 자본이 위기 앞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시민사회가 자본에 포획될 경우 어떤 야만 사회가 도래하는지를 하비는 제대로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런 야만을 막아내는 것 또한 오롯이 시민의 몫일 것이다.

▲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데이비드 하비 지음, 강윤혜 옮김, 선순환 펴냄) ⓒ선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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