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러 영토 진격 장기화 조짐…무기 사용 제한두고 서방 '고심'

우크라, 쿠르스크 점령지에 군 지휘통제소 설치·진격 속도는 느려져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내 점령지에 군 지휘통제소를 건설하며 작전을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지원 무기에 러시아 내부 공격 제한을 둔 서방이 고심에 빠졌다.

15일(이하 현지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영상 연설과 소셜미디어(SNS) 게시글, 미국 CNN 방송을 보면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은 쿠르스크 지역 수자 마을을 점령했고 이 마을에 군 지휘통제소를 건설 중이라고 밝혔다.

시르스키 총사령관은 지휘통제소 설치가 "통제 지역의 법과 질서를 유지하고 주민의 우선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우크라이나 쪽은 점령한 러시아 영토를 병합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지만 지휘통제소 설치로 적어도 일정 기간 점령을 유지하고 작전을 지속할 의향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가 쿠르스크에서 여러 방향으로 1~2km 가량 전진해 점령한 정착지 수를 80개 이상으로 늘렸고 100명 이상의 러시아군을 포로로 잡았다고 주장했다. 시르스키 총사령관은 이날까지 우크라이나군이 쿠르스크에서 35km 가량을 파고 들어가 1150㎢ 이상의 영토를 점령 중이라고 밝혔다. 이 면적은 러시아 쪽 주장과 2배 가량 차이가 난다.

반면 러 국영 <타스> 통신은 러 국방부 및 압티 알라우디노프 체첸공화국 아흐마트 특수부대 사령관을 인용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으로부터 쿠르스크 지역 크루페츠 정착지를 탈환했고 마르티노브카에서도 우크라이나군을 몰아냈다고 보도했다. 이 지역들은 국경에서 10~15km 가량 떨어져 있다. 러 국방부는 우크라이나군이 이날 하루에만 병력 340명을 잃었고 지난 6일 쿠르스크 침공을 시작한 뒤로 2640명의 병력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영토 진격을 지속할 뜻을 내비치면서 지원 무기를 방어용으로만 사용할 것을 요구해 온 서방의 입장은 점점 난처해지고 있다.

서방은 일단 묵인 중이다. 15일 영국 BBC 방송은 한 영국 소식통이 영국이 기증한 전차(탱크)가 우크라이나의 이번 쿠르스크 침공에 사용됐다고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 통신은 영국 국방부가 우크라이나가 "자기 방어"를 위해 영국이 공급한 무기를 사용할 권리가 있고 이는 "러시아 내부 사용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히며 관련 정책에 변화가 없다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미국산 무기 또한 러시아 내부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지만 사브리나 싱 미 국방부 부대변인은 15일 언론 브리핑에서 "(쿠르스크 접경지인 우크라이나 북동부) 수미 지역 주변에서 대응 발포를 허용한 초기 정책 설정에서 변한 것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 지원 장거리 무기로 방어 목적 외 러시아 영토 깊숙한 곳 타격을 제한하는 정책에도 변함이 없다고 덧붙였다.

15일 <로이터>는 미 당국자가 미국의 무기 지원 정책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영토를 공격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지만 우크라이나가 일단 형식적으로 이를 준수하고 있어 미 정부가 이에 대한 강한 공개적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외무부는 이번 여름에만 쿠르스크에서 우크라이나 내부로 2000건 이상 공격이 이뤄졌다며 이번 공격이 방어적 성격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미 당국자는 진격이 계속되면 상황이 점차 복잡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우크라이나가 미국 무기와 차량을 사용해 마을 및 비군사적 목표물을 점령하기 시작하면 미국의 무기 지원 조건을 준수하고 있는지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로이터>는 드미트리 폴랸스키 유엔 주재 러시아 대표부 차석대사가 15일 "쿠르스크와 우크라이나에서의 미국 무기 사용은 긴장 고조 행위이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비난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내 진격 목표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내 진격 속도가 느려진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전투는 격화됐다. 격전지 동부에서 러시아군 병력 분산은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영토 침범의 주요 목적 중 하나로 추정된다.

15일 <AP> 통신은 도네츠크 지역 물류 중심지로 러시아군 공격이 집중되고 있는 포크로우스크 주변에서 우크라이나군이 공세 완화를 목격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캬닌이라는 호출 부호의 한 우크라이나 군인은 통신에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며 오히려 "러시아 공격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쿠르스크 작전은 "(러시아가) 영토를 방어할 수 없다는 걸 보여줬다"며 "우리 모두가 고무됐다. 병사 중 많은 이들이 쿠르스크로 가서 곧장 크렘린(러시아 대통령궁)으로 진격하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CNN은 포크로우스크시 군사 행정 책임자인 세르히 도브리악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러시아군이 시에서 10km 주변까지 접근했다며 모든 주민에 "지체 없이 대피"를 촉구했다고 전했다.

러시아 쪽도 15일 도네츠크에서 성과를 냈다고 밝혔다. <타스>는 이날 러 국방부를 인용해 러시아군이 도네츠크 내 이바니우카 정착촌을 점령하고 최전선에서 입지를 개선했다고 보도했다.

다만 존 커비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15일 언론 브리핑에서 "일부 러시아 부대가 우크라이나 내부와 주변에서 쿠르스크 지역으로 재배치되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AP>에 따르면 드미트로 리호비 우크라이나 남부 타브리아 작전단 대변인은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과 자포리자 지역에서 소수의 러시아 부대가 재배치 대상이 된 것으로 보이지만 공격은 오히려 증가했다고 밝혔다.

<AP>는 우크라이나 군사 전문가 콘스탄틴 마쇼베츠가 "러시아가 전술적 성공을 거두고 있는 전선에서 공격을 멈추진 않을 것"이지만 예비군을 "중요도가 떨어지는 전선에서" 쿠르스크로 이동시킬 순 있다고 전망했다고 설명했다.

쿠르스크 작전 목표 중 하나로 추측돼 왔던 포로 교환을 포함한 협상 카드로의 사용은 일부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영토 점령과 군인 생포를 "교환 기금"으로 부르며 협상에 이용할 것을 시사해 온 젤렌스키 대통령은 15일 영상 연설을 통해 "참모 회의에서 러시아 포로가 된 우리 국민들을 귀환시킬 전략이 발표됐다"고 밝혔다. 그는 세부 사항은 추후 발표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15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포로 교환을 주도하는 우크라이나군 정보국이 교환 관련 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확인했으며 우크라이나 정부 당국자들과 국경 지대 군인들이 쿠르스크 작전에서 확보한 러시아 포로가 "수백 명" 수준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매체는 우크라이나 의회 인권 위원인 드미트로 루비네츠가 이날 현지 언론에 러시아 쪽이 포로 교환을 위한 논의를 위해 접촉해 왔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현재 우크라이나가 통제 중인 지역의 전략적 가치가 크지 않아 평화 협상에서 주요 도구로 쓰일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 시각도 나온다. 핀란드에 기반을 둔 전쟁 감시 단체 블랙버드 그룹 분석가 파시 파로이넨은 <AP>에 이 지역에 중요한 가스 기반 시설이 있긴 하지만 협상에서 사소한 카드 이상이 될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우크라이나군이 점령했다고 밝힌 수자엔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를 통해 유럽으로 흐르는 가스관 시설이 있다. 2019년 맺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이 가스 수송 계약은 2024년 만료될 예정이다. 현재 작전 지역은 러시아의 주요 군사 기지와도 거리가 있다.

<AP>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포격으로부터 수미 지역을 지키기 위해 완충 지대를 설정하려 의도한 것일 수도 있다고 추측했다.

▲1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접경 지대 인근에서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군용 차량에 타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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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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