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광복절(光復節)’ 유감

어제가 광복절이었다. 요즘 광복절이다, 건국절이다 하면서 이름을 가지고 말이 참 많다. 일제 치하를 인정하느냐 마느냐의 차이가 아닌가 한다. 이러한 역사적인 관점이나 정치적인 견해를 말하기에는 필자의 역사적, 정치적 견해가 짦다. 역사학자도 아니고 언어만 40여 년 연구하고 가르쳐 왔는데, 역사적으로 다양한 의견이 나온 것을 ‘이것이다’라고 정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필자는 언어학자의 입장에서 일본에 대한 몇 관점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이에 관해서는 과거에도 몇 번 쓰기도 했는데, 일반 독자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아서 다시 한 번 강조하는 의미로 ‘일본’이라는 명칭의 유래를 언어학적으로 접근하고 광복절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를 풀어보고자 한다.

우선 일본에 대해 지나치게 우려하는 독자들이 많은 것 같은데, 그냥 이웃이라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몇 년 동안 우리나라를 강점하여 피해를 주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감으로 일본이라고 하면 무조건 배척하는 면이 없지 않다. 영국이나 포루투칼, 스페인, 프랑스 등의 나라들은 식민지배를 수 백 년 지속하기도 하였고, 오스만 투루크나 알렉산더의 정벌과 지배 등과 비교 해 보면 우리나라는 그나마 35년의 기간이니 다행이라고 할 수도 있다. 영국이 인도에서 했던 행위나 프랑스가 각 식민지에서 훔쳐 간 유물 등을 보면 실로 역사란 강한 자의 기록이다. 그들의 박물관에 가 보면 도둑질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볼 때 일본에게는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었던 것으로 본다. 일본의 고어가 모두 우리말과 관련이 있고, 일본의 향가집인 <만엽집>도 우리 고어로 풀어야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세상에 다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일본’이라는 나라의 이름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어준 것임에 주목해야 한다. 우선 ‘일본(日本)’이라는 나라 이름은 ‘일출지본(日出之本 : 해 뜨는 곳)’의 준말이다. 즉 신라나 백제 사람들이 보았을 때 ‘해가 뜨는 쪽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삼국유사> ‘연오랑세오녀’조에 보면 “신라의 연오랑이 바닷가에 나왔는데, 바위가 있어서 올라탔더니 ‘해 뜨는 곳(일본(日本)’으로 그를 데려다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책에서 처음으로 일본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그 이전는 그들을 표현할 때 ‘왜인(倭人)’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문화적으로 단합되지 못하고,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있던 나라인데, 연오랑이 그곳으로 건너가 작은 나라를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삼국유사>에는 “연오랑이 건너간 후에 세오녀도 같은 방법으로 일본에 도착하였고, 그곳 사람들이 그를 세워 왕으로 삼았고(立爲王), 세오녀를 왕비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므로 일제 강점기로 접어들기 전까지-사실은 임진왜란 전까지 일수도 있지만-는 일본은 우리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광복(光復)이란 무슨 말인가? “빼앗긴 땅과 주권을 도로 찾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광복절’은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어 나라와 주권을 다시 찾은 날을 기념하는 국경일”이다. 그러므로 ‘광복절’이라고 하는 말은 ‘빼앗겼던 것’이라는 말이 전제되어야 한다. 한편 ‘건국’은 “나라를 세움”이라는 뜻이고, ‘건국절’은 “건국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한 국경일”을 말한다. 참고로 북한은 9월 9일을 ‘인민정권 창건일’이라 하고, 중국은 10월 1일을 ‘중화인민공화국 국경절’이라고 한다. 대만은 1월 1일(개국기념일), 헝가리는 8월 20일(건국기념일) 등으로 건국기념일 혹은 건국절로 지키는 나라가 제법 있다. 우리나라는 건국의 기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두 갈래로 나뉘는 것으로 본다. 상해 임시정부를 기준으로 하느냐,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일로 보느냐에 따라 국회에서 오락가락하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 것도 중요하고, 임시정부도 중요하고, 우리나라 헌법이 제대로 선 가운데 나라가 바로 선 것도 중요하다. 다만 당리당략을 따라서 억지로 논리를 만들어내는 것 같은 행태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이다. 역사는 역사학자에게 맡겨야 할 것이고, 언어는 언어학자에게 맡기도록 하자. 물론 지나치게 편향된 사고를 지닌 학자는 배제하는 것이 옳다. 아이고 어렵다.

오호 애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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