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미 테리, 文정권때 일? 尹정부도 테리에게 정부 지지 글 요청했다

2022년 5월 이후 금품도 받아…외교부 "한미 정보 당국 간 협의" 구체적 내용 밝히지 않아

미 연방 검찰이 중앙정보국(CIA) 출신의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인 수미 테리가 한국 정부를 위해 활동했다는 혐의로 기소한 데 대해 대통령실은 문재인 정권 때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했지만,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 당시에도 테리 연구원에게 자금이 지급됐고 정부가 정책을 지지하는 기고를 써달라고 요청하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16일(현지시각) 뉴욕 남부연방지방검찰청이 작성한 공소장에 따르면 테리 연구원은 지난해 3월 6일 한국의 한 외교부 관료(a ROK MFA official)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전화 이후 테리 연구원은 이 관료에게 "이미 이 주제에 대한 많은 기사가 작성됐다"며 한일 간 지정학적 관계에 대한 기사를 인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테리 연구원은 이어 이 외교부 관료에게 "신문 기명 논평 페이지에 글을 쓰려면 아래와 같은 정보가 필요하다"며 한일 관계에 대한 일련의 질문들을 나열했다.

다음날인 3월 7일 경 이 외교부 관료는 테리 연구원에게 질문에 대한 답변을 문자로 보냈고 이날 늦게 테리 연구원이 작성한 "대한민국, 일본과 화해를 위해 용감한 한 걸음을 내딛었다"(South Korea takes a brave step toward reconciliation with Japan)는 글이 언론에 실렸다고 검찰은 밝혔다.

해당 글은 <워싱턴포스트>에 게재됐는데 이 글이 실리기 전날인 3월 6일 정부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방안을 발표했다. 당시 정부의 해법 방안에는 가해자인 일본 기업의 금전 참여가 빠져 있어 피해자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상당한 반발이 나왔다.

특히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지난 2018년 한국 대법원에서 일본 기업을 상대로 승소하여 법적 채권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정부가 이 채권을 소멸시키기 위해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 재단(이하 재단)'이 피해자인 원고에게 판결금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는 방안을 발표하면서 비판이 커졌다.

이에 피해자 중 일부는 수령을 거부했고, 정부는 이들의 채권을 소멸시키기 위해 공탁을 하려했으나 이마저 지방법원에서 거부당하면서 정부의 해법이 사실상 법적 채권을 없앨 수 없는 상황으로 전개됐다.

초기부터 비판이 많았던 상황에서 테리 연구원은 정부 방안을 지지하는 내용의 칼럼을 작성했다. 특히 그는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고집이 세기로 유명한 윤 대통령은 일본과 관계 개선으로 인한 어떤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지겠다고 말했다"며 "만약 그가 성공한다면, 윤 대통령은 한국 정치에서 용기 있는 인물로 자리매김할 것이고, 한국과 일본 사이 민감한 관계에 희망적인 새로운 장을 쓸 것"이라고 평가했다.

검찰에 따르면 해당 글이 나간 이후 테리 연구원은 이 외교부 관료에게 문자를 통해 "기사가 마음에 들었길 바란다"며 기사 링크를 보냈다. 이에 대해 이 관료는 테리 연구원에게 정부의 고위 관리들이 해당 글을 읽었으며 "당신의 열정과 노력에 정말 감사드린다. 대사와 국가안보보좌관이 매우 만족했다"라고 답했다.

검찰은 이렇듯 테리 연구원이 박근혜, 문재인 정부뿐만 아니라 윤석열 정부 때까지도 한국의 국가정보원 및 외교부 관료들과 접촉하면서 한국 정부의 의견을 자신의 활동에 반영해 왔다고보고 있다. 대통령실이 "문재인 정권 때의 일"이라고 밝힌 것과는 매우 차이가 나는 대목이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부가 테리 연구원에 글을 청탁한 것이 사실이냐는 질문에 18일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유관 부서의 구체적인 내용을 좀 확인을 해봐야 될 것 같다"며 즉답을 피했다.

다만 주요 외교 사안에 있어서 해외 유력 학자들에게 기고를 요청하는 것은 어느 나라든 흔하게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정부는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품 수수 등이 없는 요청이 크게 문제되지는 않는다는 입장인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검찰은 테리 연구원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인 2022년 6월 이후에도 금품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2022년 7월 경 테리 연구원은 한국 정보 요원들이 미 의회의 다양한 인사들에게 접근해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행사를 마련했는데, 국정원이 테리 연구원의 싱크탱크 프로그램에 1만 1000 달러를 제공한 직후였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이 자금은 테리 연구원이 가지고 있는 "선물" 계좌로 입금됐는데, 이는 자금의 원천을 숨기기 위한 것이었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또 검찰은 테리 연구원이 2023년 4월 18일 한미 동맹 70주년을 기념해 개최된 '2023 한미정책포럼'과 관련해서도 수만 달러의 자금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그해 4월 경 한국의 싱크탱크가 행사 관련 비용으로 2만 5418 달러를 테리 연구원이 소속돼 있는 싱크탱크에 지불했는데, 이와 별도로 테리 연구원은 명목상 한국 대사관으로부터 나온 2만 6035달러 짜리 수표도 받았다고 밝혔다.

한편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18일 정례브리핑에서 테리 연구원의 기소와 관련해 한미 외교 당국 간 소통이나 협의가 있었냐는 질문에 "이 건과 관련하여 한미 정보당국 간에 긴밀히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답했지만 구체적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지난해 3월 7일 <워싱턴포스트>에 게재한 글. 미 검찰은 테리 연구원이 한국 외교부 관료의 전화를 받은 뒤 한국 정부와 상의하고 이 글을 작성한 것으로 공소장에 밝히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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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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