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 '약자동행'은 기만이다

[시민건강논평] ‘약자동행’을 ‘퇴거’하라

지난 금요일, 집권여당의 유력한 한 당대표 후보는 서울시장과 만난 자리에서 '약자와의 동행'(이하 '약자동행') 사업을 전국화하겠다고 밝혔다. 약자동행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시정 철학으로 내세우고 있는 슬로건이다. 이날 회동 장소였던 동행식당을 비롯해 온기창고, 서울런, 안심소득 등이 주요 사업으로 꼽힌다. 지난달 27일에는 그동안 정책 성과를 설명하는 '2024 서울 약자동행 포럼'을 열기도 하였다.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정책 우선순위를 두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문제는 이러한 정치적 선언에 부합하는 실질적인 정책이 동반되지 않으면 위선과 기만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포럼이 진행되던 그 시각 행사장 앞에서는 이를 규탄하는 반빈곤 시민사회단체들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들은 서울시가 가난한 이들의 권리 강화 요구는 외면한 채 기존 복지정책들의 표지갈이에 불과한 정책들을 나열하며 시민을 기만하고 있다며 비판하였다(☞관련자료: 서울약자동행포럼, 가난한 이들 들러리 세우는 서울시 약자동행 기만이다).

세계 첫 도입이라고 하는 '약자동행지수'는 약자동행 기조가 왜 기만적인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이런 지수화가 가진 중요한 방법론적 한계는 복잡다단한 현실을 과잉단순화하면서 자칫 이를 왜곡하는 결과를 도출할 위험이 크다는 점이다. 그리고 얼마 전 처음 공개된 평가 결과를 보면 그런 우려가 현실화된 듯 하다. 지난해 약자동행지수는 2022년보다 11% 올랐는데, 특히 주거 지수가 가장 큰 폭(25.1%)으로 상승했다.

그럼 실제로 주거 약자들의 사정이 그만큼 나아졌을까? 여전히 서울에는 집중호우에 취약한 반지하주택에 거주하는 가구가 20만이 넘는다. 2년 전 신림동 반지하 참사가 있었지만, 이후 이주 관련 지원을 받은 가구는 2.1%에 불과한 실정이다. 가난한 이들의 주거권 보장을 위한 가장 실효성 있는 정책은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하는 것일 텐데, 현 시장 취임 이후 매입임대주택 공급은 오히려 크게 줄어들었다.

또 서울시는 지난 2021년 동자동 쪽방촌 일대에 대한 공공주택사업 계획을 발표했지만, 이에 반대하는 토지·건물주들의 눈치를 보며 사업을 진행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이 와중에 쪽방 주민들은 재개발(리모델링)을 이유로 건물주에게 갑작스러운 퇴거를 요구받고 있다. 기계적 중립을 고수한 채 실상 지주와 건물주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에서 약자동행을 운운하다니,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면구하지 않은가.

강제 퇴거가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미치는 복합적인 부정적 효과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사회역학 연구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관련 논문 바로가기). 하지만 퇴거의 파괴적 영향은 건강 차원을 넘어선다. 집은 삶의 중심이며, 자유와 행복 추구는 안정적인 집이 있어야 실현 가능하다. 거주지에서 비자발적으로 쫓겨나가는 고통을 진정으로 헤아렸다면 이들이 안전하고 쾌적한 주택에서 살 자유를 토지·건물주의 이윤을 추구할 자유와 동일선상에 놓고 고려할 순 없었을 것이다.

한편 퇴거는 거주지의 이전만을 뜻하지 않는다. 머물던 공간에서 옮겨 가는 것도 퇴거의 또 다른 사전적 의미다. 최근 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금도 곳곳에서는 거리 홈리스에 대한 불심검문과 강제 퇴거 조치가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관련자료: 2024 홈리스 인권 실태조사). 특히 지난해 3월에는 서울역 앞 지하보도에 머무는 거리 홈리스를 민간 기업 보안요원이 퇴거 조치해 왔다는 사실이 알려졌는데, 이는 모두에게 개방된 공공장소를 사유화하려는 시도이자 거리 홈리스에 대한 명백한 차별 행위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선택한 공공 공간에 머물 자유와 권리가 있다. 홈리스 상태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다. 그럼 민간 기업은 월권행위인 줄 알면서도 홈리스를 왜 퇴거하려 할까? 아마도 건물의 미관을 해치고 출입하는 고객들에게 혐오감 등을 유발하여 영업에 지장을 준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즉 상업적 이익 추구가 퇴거의 주된 이유라고 한다면, 그럼 행정 당국인 서울시는 가장 취약한 존재들에게 가해지는 이러한 폭력적 조치에 대해 왜 그저 방관만 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이것이 오랜 역사적 맥락을 가진 '사회정화' 프로젝트의 소극적 잔존 형태이자 가난을 처벌하는 빈곤 통치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공공장소에서 홈리스를 내쫓는 건 단지 물리적 공간에서의 축출만을 뜻하지 않는다. 이는 '사회'라는 공간에 평등하게 참여할 자격을 부정함으로써 이들의 자존감을 짓밟고 모욕하는 통치 행위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소비 사회에서 경제력 상실은 사실상 사회적·정치적 자격 박탈을 의미하기 때문이며, 바로 비자의적 퇴거는 이들이 부적격한 존재임을 환기시키며 낙인을 강화한다. 즉, 공공 공간에서의 퇴거는 가난한 이들에게 수치심을 주는 형벌로 기능하는 것이다.

동시에 도시 경관에서 빈민을 비가시화하려는 '사회적 배제'의 정치로도 볼 수 있다. 이는 홈리스를 '깨끗한' 공공 공간을 '더럽히는' 불결한 존재이자, 도덕적으로 열등하며 공공 질서를 위협하는 '사회악'으로 인식되도록 만드는 지배 담론의 효과로 작동한다. 이렇게 문제화되면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이들을 사회와 분리시켜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게 될 테고, 역사적 경험을 비춰보건대 단속과 퇴거의 다음 단계는 수용과 격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쯤에서 다시 서울시의 약자동행 담론에 내포된 허구성을 생각해보자. 함께 길을 걷는다는 건 같은 지면 위에서 서로의 보폭과 속도를 맞추며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입장의 동일함이 관계의 최고 형태"라는 말이 있듯이, 약자동행이 정치적 수사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평등한 관계를 지향하는 가운데 이들의 자리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태도가 전제되어야 한다. 한데 안타깝게도 서울시장의 태도는 그런 의미의 동행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약자들의 목소리에 세심히 귀 기울이지 않을 뿐 아니라 이들의 정당한 요구를 세상물정 모르는 미숙한 자들이 무리하게 떼 쓰는 투정으로 치부하며 가르치려 든다. 불평등한 권력관계 속에서 온정주의는 이처럼 강제성과 억압성으로 발현되기 마련이다. 권력 약자에게 불리한 형태와 방식으로 짜여진 기존의 법과 제도, 규칙과 관행을 그대로 둔 채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정한 범위와 수준 내에서 지원할 테니 감사히 받기만 하라는 시혜와 동정의 정치로 과연 '사회적 포용'의 도시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지난 무상급식 주민투표 경험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은 자신의 굳은 복지철학이라고 하니 아마 앞으로도 '빈민다움', '수급자다움', '노숙인다움'의 기준에 부합하는 이들에게만 동행할 약자의 자격을 부여하는 선별적 포용의 정치가 계속될 듯 하다. 서울이 가지는 특수한 위상을 고려할 때 단지 한 지자체에 국한된 문제로만 보기 어렵다는 게 우려스러운 지점이다(물론 다른 지자체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실상은 배제의 정치에 다름 아닌 약자동행이 행여나 다른 지역들이 따라야 할 모범 사례로 여겨지거나 확산되지 않도록 그 기만적 정치의 실체를 폭로하고 비판할 필요가 있겠다.

아울러 지역사회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갈 권리를 침해하고 박탈하는 퇴거 문제에 대해서도 함께 관심을 갖고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공간이든 권력투쟁의 과정을 거쳐 구성되는 정치적 산물이라는 사실에 주목하자. 지금처럼 부동산 개발업자의 시각에서 이윤 추구에 유리한 방향으로 도시 공간이 재편된다면 공간에 대한 시민들의 자유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시민들이 함께 모여 시위할 수 있는 광장이 자꾸 축소되는 상황을 그러한 예로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공간의 민주적 속성을 약화시킨다는 점에서 홈리스 강제 퇴거 문제와 그 본질이 크게 다르지 않다. 바로 이것이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공간을 누릴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는 도시를 만드는 여정에 우리가 동행해야 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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