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공립대 통합, 신기루를 쫓다

[대학교육 공공성 강화해야 한다] ⑦ 권역별 서열화와 국립대 간 격차가 심화될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학령인구 감소와 지방소멸 위기에 대한 대안으로 시작한 지방대 육성이 대학 간 통합의 거센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통합이 시대적 과제'라는 당위성과 재정지원이라는 당근이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2004년 '대학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조개혁방안'을 발표하며 국립대와 사립대의 통폐합을 통해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하고자 했으나 실패한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오히려 글로컬대학30과 RISE(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 사업이 선도하고 있는 국공립대의 '담대한' 통폐합은 국립대의 축소와 권역 간 서열화를 부채질 할 것이다. 지방대 육성과 지역균형발전이 재정지원 사업을 통해 가능하다고 보는 것 자체가 근시안적 발상이다.

이미 통합된 경상국립대(경상대-경남과학기술대), 한경국립대(한경대-한국복지대) 외에 작년 글로컬대학30 사업에 선정된 대학 가운데 △충북대·한국교통대(2027년) △부산대·부산교대(2027년) △안동대·경북도립대(2026년) △강원대·강릉원주대(2026년)가 통합을 추진 중이다. △부경대·한국해양대와 △경북대·금오공대의 통합은 철회되었지만, 올해 글로컬대학은 대학 간 벽 허물기가 더욱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예비선정된 대학 중에서 통합을 추진하는 국공립대학은 △충남대·한밭대 △금오공대 △창원대·도립거창대·도립남해대 등이다.

특히 강원특별자치도의 경우에 춘천교대가 강원대와 통합논의를 시작함으로써 'again 1도 1국립대'가 가시화되고 있다. 1952년 연세대 총장 출신 백낙준 문교부 장관이 관철시킨 1도 1국립대학안에 따라 1980년에 춘천농업대학(1947년 개교)에서 강원대로 바뀌게 되었다. 작년에 글로컬 사업에 강원대와 강릉원주대가 통합모델로 최종 선정되어, 올해 각 대학평의원회의 의결 절차를 마치고 2026년 3월 강원대(KNU)로 통합한다. 45년 만에 다시 1도 1국립대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다. 강원대는 노무현 정부 시절 캠퍼스별 특성화를 추진하겠다며 삼척대와 통합하였지만 공약했던 캠퍼스별 특성화는 허상에 불과했고 이제는 신기루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발 빠르게 실행 계획서 제출까지 마친 강원대-강릉원주대 통합은 여전히 지역시민과 학내 구성원이 반발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캠퍼스의 서열화와 통합에 따른 불이익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교직원과 학생의 캠퍼스 간 이동은 없을 것이며, 졸업증명서에 캠퍼스를 표기하는 것을 약속함으로써 불만들을 잠재우는 사전 정지작업을 진행하였다. 하지만 캠퍼스 특성화라는 장밋빛 청사진은 통합을 위한 구조조정이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 캠퍼스 간의 서열화 문제로 인해 더 큰 갈등이 표출될 것이 자명하다.

또한 학사 재구조화를 위해 강원대는 탑클래스 통합학과를 추진하고 있다. 장학금 지급 등 당근 제시를 통해 캠퍼스 간 벽을 허물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학과로 성장시킨다는 전략이다. 몸집부터 불리고 보자는 식의 학과 통합을 통해 매머드급 학과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대규모 통합에서 제외된 학과는 이합집산을 통해 소규모 통합이나 특성화의 방향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는 규모가 더 큰 캠퍼스의 학과와 통합하기 위한 눈물겨운 사투의 결과물이다.

한편 지난달 7일에는 글로컬대학사업추진단 운영 규정이 공포되었다. 이 규정에는 추진위원회, 운영위원회, 성과관리위원회의 구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원안에는 '당연직 및 외부위원'만을 구성하는 것이었지만, 의견수렴 절차를 통해 내부위원이 참여할 수 있도록 수정하였다. 학내 구성원들의 참여기회를 확대하고 의사수렴의 절차를 보완함으로써 사업집행이 민주적이고 투명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요구한 결과이다. 이는 통합에 필요한 로컬 거버넌스의 부재를 방증하는 단편적인 사례에 불과하다. 향후 지자체에 권한이 이양되면 지자체와 대학의 거버넌스는 더욱 중요해진다. 하지만 현실은 역량미달과 지자체의 재정자립도에 따라 오히려 국립대의 역할과 위상이 축소되고, 권역별 서열화가 가속화됨으로써 국립대 간의 격차도 심화될 우려가 크다.

이상과 같은 통합의 장밋빛 전망이 지닌 허상은 통합을 준비하는 모든 대학의 문제일 것이다. 통합보다 중요한 시대적 과제는 고등교육의 공공성 회복과 국가균형발전이다. 학령인구 감소라는 위기를 사립대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한국의 특수한 교육지형을 새롭게 개편하는 전환의 계기로 삼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리고 최소한 서울대와 비슷한 수준의 재정을 투입함으로써 대학이 지역에서 '대학-산업-지역'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마중물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글로컬대학30과 RISE 사업으로 고등교육정책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포기하고 지자체에 책임을 전가하려는 불순한 시도를 막아야 할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