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22대 총선 참패 이후 대국민소통을 강화하겠다며 나선 첫 국정브리핑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뜬금없이 '동해 석유가스전 탐사시추' 계획을 발표했다. 기후위기 시대에 산유국을 꿈꾸는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비판과 함께 탐사업체 '액트지오'에 대한 의혹들이 이어졌다. 이에 앞서 5월 31일, 산업통산자원부는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기본) 실무안을 발표했다. 2024년~38년까지 전력수급 기본방향을 담은 11차 전기본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데이터센터 증설 등으로 2038년 전력수요가 23년 대비 최소 31%(30.6GW)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신규 핵발전소 건설계획을 밝혔다. 한편 핵발전 확대 일변도이던 윤석열 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 간담회'를 열어 10여 개 에너지 대기업들에게 적극적인 정부 지원도 약속했다.
가장 더운 6월이라며 폭염에 대한 뉴스는 반복되지만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더디기만 하다.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재생에너지 확대를 이야기하면서도 핵발전 확대와 더불어 화석연료까지 개발하겠다고 나서는 상황이다. 마치 방향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다. 하지만 정부 정책은 '이윤을 위한 에너지 체제'라는 명확한 전략 아래 추진되고 있다. 다만 '에너지 전환보다 이윤'이라는 속내를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자본주의 산업화의 첨병, 국가 전력체계
'이윤을 위한 에너지 체제'는 당연히 윤석열 정부 차원의 정책을 넘어선다. 길게는 1960년대 시작된 국가 개발독재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61년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군사정부는 자본주의 산업화를 위한 국가 인프라로서 전력체계 구축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당시 존재하던 전기회사 3개를 통합해 '한국전력'을 만든다. 당시 미국의 차관원조와 자문에 기초해 진행된 국가 전력체계의 특징은 남동부 지역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을 송전망을 통해 남동임해 중공업단지와 서울수도권 경공업단지로 공급하는 것이다. 즉 전력 생산의 일차 목표는 자본주의 산업화‧공업화를 위한 '저렴한 전기에너지'의 공급이었던 것이다. 농촌지역에 전기가 들어간 것은 1970년대 새마을 운동 이후였다.
국가재건최고회의는 1961년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인프라로서 '전원(電源)개발 5개년 계획'을 동시에 추진했는데, 당시 군사정부의 경제개발‧전원개발 계획들은 문자 그대로 군사주의를 전체 사회로 확장하면서 추진되었다. 자본주의 산업화‧공업화는 대외원조와 초기 자본축적을 통해서 시도되는데, 바로 초기 자본축적에 중요한 요소가 '저렴한 에너지 공급'이었다. 분단상황과 반공주의 아래 군사작전을 하듯 발전소, 송전망 건설 사업이 진행되었고, 이는 노동자와 지역주민, 자연에 대한 엄청난 착취와 수탈, 폭력을 통해 관철되었다. 전력다소비 기업에 혜택을 주는 에너지 공급체계, 모두를 위해 일부가 희생해야 한다는 '국책사업' 논리가 이때 자리를 잡았다.
'혁신과 성장'으로 간판을 바꾼 '이윤을 위한 에너지 체제'
1990년대에 한국 정치는 군사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해갔지만, 경제는 자본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커녕 신자유주의가 전면화되었다. 오히려 공공이 담당하던 에너지, 교통, 통신 등 기반시설에 대한 민영화‧사유화 바람이 거세게 불었고, 이제 자본은 '이윤을 위한 에너지 체제'의 전면에 나서게 된다. 2001년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외환위기 이후 집권한 민주당 정권의 신자유주의 민영화 프로젝트에 따른 것이었다. 구조개편으로 한전은 '송전, 배전, 판매'를 담당하고, 기존의 발전부문은 6개 발전공기업으로 분할되어 전력시장에 새롭게 들어온 대기업 민자 발전사와 경쟁하게 된다.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은 이윤추구에 혈안이 된 발전공기업 경영의 결과였다. 발전공기업들은 인건비 절감을 위해 위험 작업을 외주화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을 대폭 늘렸고 생명안전과 직결되는 모든 사항들은 아껴야 할 비용이 될 뿐이었다. 이제 민자발전의 비중은 전체 전력 설비의 40%를 넘는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급등한 에너지 가격에도 민자발전사는 역대급 이윤을 기록했고, 이들의 전기를 비싼 값에 구매해야 했던 한전은 수십조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한편 이러한 에너지 산업의 민영화 흐름이 기존 전력산업의 권위주의적 개발정책과 결합해 자행된 폭력의 현장이 '밀양'이다. 수익과 매출실적 압박에 내몰린 에너지 공기업들은 이명박 정부 시기에 대대적인 해외 자원에너지 사업에 나서게 된다. 2009년 한전은 아랍에미리트와 원전 수출계약을 맺는데, 수출 모델이 된 신고리 3호기가 2015년까지 가동되지 않으면 지체 보상금을 물도록 계약한 것이다. 신고리 3호기가 가동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송전선로가 완성되어야 했고, 2014년 밀양 송전탑 반대 농성장에 행정대집행이라는 이름의 국가폭력이 자행됐다.
'에너지 시장화, 상품화'에 날개를 단 '2050 탄소중립'
지난 20여 년 동안 이어진 에너지 산업의 민영화, 시장화 흐름은 2019년 정부의 '2050 탄소중립' 정책으로 날개를 달게 된다. 재생에너지를 비롯한 녹색산업을 자본의 신성장 동력으로 보고, 적극적인 자본 유치와 투자 촉진을 통해 신자유주의 녹색전환을 이루겠다는 것이었다. 정부 지원으로 돈이 되니 크고 작은 태양광 발전사업자들이 뛰어들었고, 지자체의 무분별한 사업허가로 산비탈이 깎이고 태양광 패널로 논밭이 뒤덮였다. 대규모 발전시설인 해상풍력의 경우, 현재 사업허가를 받은 77개 가운데 71개가 대기업과 해외 투기자본이다. 이대로라면 2038년까지 120GW로 늘리겠다는 재생에너지 대부분을 민간자본이 소유하고 운영하게 된다.
이에 더해 2021년에 시행된 '기업PPA' 법안을 통해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가 기업에 직접 전력을 판매하고, 지난 6월 14일부터 시행된 '분산에너지 특별법'으로 지역에너지사업자가 특정 지역 내에서 직접 전력 판매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모두 재생에너지, 지역분산형 에너지 활성화를 명분으로 내걸고 있지만 이를 '에너지 시장화‧상품화'를 통해 이루겠다는 게 핵심이다. 누구에게나 존엄한 삶을 영위하는데 필수적인 '에너지'는 사회공동체 성원 모두에게 평등하고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생산되고 공급되어야 한다. 하지만 '에너지 시장화‧상품화'는 그 어떤 사회적‧민주적 통제도 거부하면서 오직 시장논리에 따라, 구매력에 따라 차별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하고 이를 통해 더 많은 이윤축적과 시장확장을 목적으로 할 뿐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윤을 위한 에너지 체제'는 기후위기 대응이나, 생태적 지속가능성과는 근본적으로 양립 불가능하다. 오직 이윤과 시장 확대 가능성이 모든 행동을 결정하게 된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 9차 전기본에서 2034년까지 총 30기의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계획을 밝힌다. 그런데 9차 전기본에는 포스코, 두산, SK, GS 등 에너지 대기업들이 참여한 7기의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계획도 포함됐다. 윤석열 정부 역시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겠다면서, 핵발전소 건설과 석유가스전 개발에도 뛰어드는 것은 해당 산업계의 이해를 충실히 따른 결과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2023년 에너지 전망보고서'는 큰 폭의 재생에너지 확대에도 불구하고 2030년까지 화석연료 사용은 지속해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렇듯 재생에너지가 대폭 확대되고 있지만, 결코 온실가스 감축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더 큰 폭으로 에너지 소비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확대된 재생에너지는 늘어난 에너지 소비를 충당하기에도 부족하다. 반도체 산업확장, 데이터센터 유치를 위해 무려 30.6GW나 에너지 공급을 늘리겠다는 게 바로 '이윤을 위한 에너지 체제'의 작동방식이다. 기후정의운동은 이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할 것인지(RE100), 화석연료로 공급할 것인지 묻는 프레임 자체를 바꿔내야 한다. 생태적 한계를 넘어 이윤을 위해 무한 팽창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에너지 체제에 맞선 투쟁으로, 체제전환을 시작해야 한다.
'이윤을 위한 에너지 체제'에 함께 맞서 싸우는 이들
지난 5월 28~29일 이틀 동안 부산에서 공공운수노조 발전HPS 지부의 첫 파업투쟁이 펼쳐졌다. 발전공기업 중 하나인 한국남부발전의 하청업체로 전국 곳곳의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공공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한 총고용 보장',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정의로운 전환 이행!'을 요구하며 싸움에 나선 것이다. 발전산업 민영화로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위험하고 힘든 일로 내몰리던 노동자들이 정부의 대책 없는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 맞서 공공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한 총고용 보장을 주장하며 투쟁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곁에는 정의로운 전환을 외쳐왔던 기후정의활동가들의 힘찬 연대투쟁이 함께했다.
정부는 대규모 해고가 불가피하다며 석탄화력발전소 수십 기를 폐쇄하면서 신규 민자 석탄화력발전소를 가동하고, 핵발전소 수명연장과 신규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발전 노동자들이 '공공재생에너지'라는 구체적인 대안을 통해 전환의 경로를 제시한 것이다. 이틀간의 파업투쟁을 마친 발전HPS 노동자들은 '밀양 송전탑 행정대집행 10년' 투쟁 집회에 함께 하며 노동자와 지역주민들의 삶을 살리는 에너지 체제로 전환하자고 외쳤다. '이윤을 위한 에너지 체제' 아래 빼앗기고 짓밟혀온 이들이 함께 모여 이 체제에 맞서 싸울 것을 결의하자,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했다.
공공재생에너지 운동, '이윤을 위한 에너지 체제'에 맞선 싸움의 다른 이름
'공공재생에너지 운동'은 공공이 직접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환에 나서, 공공 소유‧운영의 재생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운동이다. 그런데 이런 에너지 시스템은 지금의 체제에서는 불가능하다. 지난 70여 년 동안 개발독재, 신자유주의 민영화, 에너지 시장화와 상품화라는 다양한 작동방식이 착종되며 유지되고 있는 '이윤을 위한 에너지 체제'가 강력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체제가 기후생태위기를 초래했음에도 오히려 에너지 산업을 혁신하고 키워야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며 끝없이 팽창하며 모두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 정부와 자본이 이 에너지 체제의 주연과 조연을 번갈아 가며 맡으면서 말이다. 이 세상의 정언명령이 된 '이윤추구'에 맞선 투쟁으로부터 새로운 에너지 체제를 향한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
공공재생에너지 운동은 그동안 자본축적의 선도자, 보조자 역할을 자임했던 '공공'을 탈환하고 재구성하자고 제안한다. 단지 공공의 재생에너지 확대와 소유‧운영을 넘어,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사회생태적 재생산을 목표로 공공이 에너지 생산과 소비의 전면적인 재배치와 계획‧조정자로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반드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우리 모두에게 던진다. '무엇을 위한 에너지 생산인가', '어떻게 에너지를 생산할 것인가'.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이윤'이 아닌 모두의 평등하고 존엄하며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에너지라는 원칙에서 출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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