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단과 오물이 오가는 한반도, 비무장지대 동물은 무슨 죄?

[정욱식 칼럼] 평화의 재발명 (20) 국제규범에서 공존 지혜 찾아야

국제정치 용어 가운데 '긴장 완화를 위해 긴장 고조시키기(escalate to de-escalate)'라는 게 있다. 정치군사적으로 대결 상태에 있는 쌍방이 서로를 자극하는 행동을 함으로써 역설적이게도 긴장 완화를 도모하려는 책략을 뜻한다. 쌍방 간에 대화와 소통이 마땅치 않거나 내키지 않을 때 종종 동원되곤 한다.

이게 효과를 보려면, 양측 모두 사태 악화를 원하지 않으면서 내가 먼저 자제하거나 상대가 자제하면 이에 호응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상대로 하여금 내가 원하지 않는 언행을 하지 않도록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나의 자제로부터 비롯된다는 상식에 호소하는 방식이다.

'대북 전단 살포→대남 오물 살포→대북 확성기 방송→대남 오물 재살포'로 이어진 최근 남북의 '강 대 강' 대결 구도의 출구도 이 지점에서 찾아야 한다. 다행히 그 징후는 나오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9일에 2시간 정도 한 이후에는 지금까지 스위치를 내려놓고 있다. 대북 전단 살포 단체들과의 접촉에도 들어갔다.

지속적인 오물 살포를 경고했던 김정은 정권도 9일 밤 이후로는 대남 풍선을 날리지 않고 있다. 대남 확성기 설치도 확인되었지만, 아직까지 대남 방송도 청취된 것은 없다고 한다.

다만 아직까진 일시 중지 상태에 있다. 언제든 재발과 상황 악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일부 대북 단체들의 전단 살포가 대남 오물 살포의 필연적인 이유는 아니더라도 발단의 빌미가 된 것은 분명하다.

이에 따라 윤 정부는 마땅히 대북 단체에게 자제를 요청하고 이러한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행정력을 동원해 제지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다. 작년 9월 헌법재판소가 "표현의 자유 침해가 지나치다"며 위헌 판정을 내린 것도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의 처벌 조항이지 행정력을 동원해 이를 제지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의지에 따라 대북 전단 살포를 막을 수 있다는 뜻이다. 국회의 입법 조치도 필요하다.

또 앞선 글에서 다룬 것처럼 대북 전단 살포와 대남 오물 살포는 여러 국제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대북 확성기 방송도 유엔 헌장 정신에 위배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은 동물복지기준 및 생물다양성협약 가입국이다. 조선도 생물다양성협약에 가입해 있다. 그런데 천혜의 자연 환경과 생물다양성의 보고인 비무장지대를 사이에 두고 전단과 오물을 살포하고 큰 소음을 내는 것은 이러한 협약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 '비무장지대 동물은 무슨 죄인가'라는 탄식이 절로 나오는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남북 사이에서 벌어진 일들은 서로가 자제의 미덕을 상실하면 얼마나 불편하고 불안하고 상대에 대한 혐오감과 적대감을 자극하는 상황을 연출하는지 충분히 일깨워줬다. 상당수 외신들이 '해외 토픽' 감으로 다루면서 국제적으로도 한반도가 이상한 땅이라는 것을 거듭 각인시켜주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다면 이제는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억제가 불가피하더라도 '상대가 안전해져야 나도 안전해질 수 있다'는 상식을 가져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기존의 남북관계가 무너졌다면, 남과 북이 모두 가입한 국제 규범에서 공존의 지혜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구질서는 무너졌고 신질서는 가늠조차 하지 못하는 현실을 보면서 던져보는 질문이다.

▲ 2010년 비무장지대 모습. ⓒ사진가 이상엽 사진전 <이상한 숲, DM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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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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