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대북 전단 발송에 김여정 "원래 9일에 대응 종료하려 했는데 상황 달라져"

윤석열 정부, 현 상황 원인된 대북 전단 살포 제지 안하고 확성기 방송 재개…남북 긴장 부추기나

남한 탈북민 단체들이 북한에 전단을 보내자 북한이 오물 풍선 발송을 재개하고 정부는 5년 만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다시 가동했다. 이에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담화를 통해 남한의 전단 발송과 확성기가 같이 진행될 경우 새로운 대응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9일 김 부부장은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배포된 담화에서 "우리의 대응 행동은 9일 중으로 종료될 계획이었지만 상황은 달라졌다"며 "만약 한국이 국경 너머로 삐라(전단) 살포 행위와 확성기 방송 도발을 병행해 나선다면 의심할 바 없이 새로운 우리의 대응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 부부장은 8~9일 이틀 간 1400여 개의 기구를 이용해 휴지 7.5톤 가량을 살포했다며 "뒤져보면 알겠지만 우리는 빈 휴지장만 살포했을 뿐 그 어떤 정치적 성격의 선동 내용을 들이민 것은 없다"고 말했다. 남한의 대북 전단이 북한 체제를 비방하는 정치적 내용을 담은 것과는 다르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어 "확성기 방송 도발을 재개한다는 적반하장격의 행태를 공식화하는 것으로써 계속하여 새로운 위기 환경을 조성했다"며 "대한민국의 지저분하고 유치한 처사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말했다.

김 부부장은 "쉴 새 없이 휴지를 주워 담아야 하는 곤혹은 대한민국의 일상이 될 것"이라며 "서울이 더 이상의 대결 위기를 불러오는 위험한 짓을 당장 중지하고 자숙할 것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8~9일 북한의 오물 풍선 발송은 6일 이후 남한의 민간단체들의 대북 전단 발송 이후 재개됐다. 앞서 지난 2일 김강일 북한 국방성 부상은 담화를 통해 "우리는 한국 것들에게 널려진 휴지장들을 주어담는 노릇이 얼마나 기분이 더럽고 많은 공력이 소비되는지 충분한 체험을 시켰다"며 "국경너머로 휴지장을 살포하는 행동을 잠정중단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어 그는 "한국이 공화국삐라살포를 재개하는 경우 발견되는 량과 건수에 따라 우리는 이미 경고한대로 백배의 휴지와 오물량을 다시 집중살포하는것으로 대응할 것"이라며 대북 전단이 날아오지 않는다면 오물 풍선도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현 상황의 출구전략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부는 민간단체의 전단 살포를 막지 않았다. 지난 6일 탈북민 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박상학 대표는 대북전단 20만장을 북쪽으로 날려보냈다며 이 과정에서 경찰의 제지는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8일 탈북민 단체 겨레얼통일연대는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7일 밤 대북 전단 20만 장을 강화도에서 살포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7일 오후 9~10시 경 대표와 회원 등 13명이 대형 풍선 10개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비판하는 내용의 전단 20만 장을 비롯해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등이 담긴 이동식저장장치(USB) 600개도 함께 담아 보냈다고 전했다.

이에 북한은 8~9일 오물이 든 풍선을 두 차례 남한으로 날려 보냈다. 9일 오전 합동참모본부(이하 합참)는 "현재(9일 오전 10시)까지 북한측은 330여 개의 오물풍선을 띄운 것으로 식별되었고, 현재 공중에서 식별되고 있는 것은 없다"며 "현재까지 우리 지역에 낙하된 것은 80여 개이고, 확인된 풍선의 내용물은 폐지, 비닐 등의 쓰레기이며, 분석결과 안전에 위해되는 물질은 없었다"고 밝혔다. 또 합참은 이날 저녁에도 북한이 오물 풍선을 부양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는 북한이 제시한 출구전략인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발송 제지는 고려하지 않은 채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로 상황에 대응했다. 합참은 "우리 군은 이번 북한의 오물풍선 살포에 대하여 경고한 바와 같이 오늘 오후 확성기 방송을 실시했다"며 "확성기 방송 추가 실시 여부는 전적으로 북한의 행동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현 상황의 원인이 되고 있는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제지하지 않는 이유는 지난해 9월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전단 살포에 대한 처벌 조항을 담은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24조 1항에 대한 위헌 결정 때문이다.

정부는 당시 헌재가 대북 전단 살포를 '표현의 자유'로 규정했다며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헌재의 결정문에는 ① 전단 살포를 처벌하는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에 위헌이지만 ② 현행 '경찰관 직무집행법' 등에 따라 전단 살포 현장에서는 접경지역 주민의 위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가 이뤄질 수 있고 ③ 전단 등 살포 이전에 관계 기관에 대한 신고 의무를 부과하는 등의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이 모두 담겨있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는 헌재 결정문의 주요 대목들 중 '표현의 자유'만을 강조하며 전단 살포를 사실상 방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에서 오물 풍선이 날아오는 상황이 헌법상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으로 평가할 수 있음에도 대북 전단을 막는 것이 아닌 확성기 방송 재개를 대응 방식으로 택하면서 남북 간 대결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 김여정(오른쪽) 북한 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이 남한 탈북민 단체의 대북 전단 발송 및 정부의 확성기 방송 재개와 관련한 담화를 발표했다. ⓒ연합뉴스

한편 대북 확성기 방송은 지난 2018년 4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마련된 판문점 선언 이후 약 5년 만에 재개됐다. 확성기 방송은 남북 간 정치적 상황에 따라 재개 및 중단을 반복했는데, 2000년 사상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방송이 다소 완화되다가 2004년 고위급회담에서 방송 중단을 합의했다.

그러나 2010년 천안함 침몰 사건이 발생하면서 남한은 북한에 대한 제재 조치 중 하나로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가 보름 만에 양측이 합의해 방송이 중단됐다.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한 대응으로 확성기가 재가동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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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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