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노역 이뤄진 日 사도광산, 윤 정부 반대 없이 유네스코 유산 등재 성공?

<교도통신> "이코모스, 보충 설명 요구하는 정보조회 권고…최종 판단에서 등재 허용된 사례 많아"

일본 정부가 조선인 강제 노역이 이뤄졌던 곳인 사도(佐渡)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고 신청한 가운데, 유네스코 자문기구가 정보조회(Refer) 결정을 내렸다고 일본 문화청이 밝혔다.

윤석열 정부의 주일본 한국대사가 등재에 절대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는 일본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한국 정부가 별다른 반대 입장을 내놓지 않을 경우, 해당 시설의 등재는 꼭 올해가 아니더라도 내년 이후에는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6일 일본 문화청은 유네스코의 자문‧심사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International Council on Monuments and Sites·이하 이코모스)가 사도광산 시설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일본 정부에 보충 설명을 요청하는 '정보조회'를 권고했다고 밝혔다.

일본 <교도통신>은 "(자문기구의) 권고 구분은 4단계로, (정보조회는) '등록'에 이은 두 번째 평가"라며 "(정보조회 판정을 받아도) 최종 판단을 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가 허용된 사례가 많아 (등재의) 가능성이 열렸다"고 밝혔다.

통신은 "올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7월 21~31일에 인도에서 열려 정부는 '등록'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이러한 일본 측의 희망은 지난해 결과를 놓고 보면 가능한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외교부에 따르면 2023년 세계유산위원회에서는 총 47건의 등재 신청 중에서 42건이 등재에 성공했다. 이 중에서는 자문기구가 보류, 즉 일본의 표현인 '정보조회'를 권고한 8건 중에서 8건 모두 등재로 결정됐고, 반려를 권고한 9건 중에서도 6건이 등재로 결정된 적이 있다.

이코모스가 '정보조회'를 요구한 이유에 대해 통신은 "에도시기보다 후대의 유산이 더 많은 일부 지역을 세계유산등재 구성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일본의 설명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또 이코모스는 부대권고에서 "채굴이 이뤄졌던 모든 시기에 관한 전체 역사를 현장에서 포괄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시설을 갖출 것을 권고한다"는 부분이 명시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시설에 대해 일본 정부는 유산 등록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한국 정부가 반대했었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입장이 다소 완화됐기 때문이다.

지난 5월 12일 일본 <산케이신문>은 "2022년 5월 한일관계 개선에 긍정적인 윤석열 정권이 탄생하면서 한국 측 태도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윤덕민 주일 한국대사가 하나즈미 히데요 니카타현 지사를 만나 사도광산에 대해 "부정적인 역사도 있는 것"이라며 "전체 역사를 표시할 수 있는 형태로 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했다면서 윤 대사가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에 대해 “절대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 때와는 분명히 다른 대응이다.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에 대한 등재 추진을 시작했던 2022년 1월 문재인 정부는 2015년 조선인들의 강제 노역 피해가 있었던 군함도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면서 강제 노역 사실을 적시하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는 일본이 또 다시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나선 것에 대해 유감 표명 및 즉각 중단을 촉구한 바 있다.

지난 2022년 1월 28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총리관저에서 기자들에게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관련 "올해 신청해서 조기에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등재를 실현하기 위한 지름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며 등재 작업을 본격화했다.

그러자 당일 외교부 대변인은 "정부는 우리측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제2차 세계대전 시 한국인 강제노역 피해 현장인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추진키로 결정한 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하며, 이러한 시도를 중단할 것을 엄중히 촉구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어 "정부는 작년 7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일본 근대산업시설' 관련 일본의 위원회 결정 불이행에 대해 심각한 유감을 표한 바 있음을 상기하며, 일본 정부가 2015년 세계유산 등재 시 스스로 약속한 후속조치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함을 재차 강조한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유네스코가 2021년 7월뿐만 아니라 2018년에도 일본에 약속을 이행하라는 내용이 담긴 결정문을 채택했지만 일본은 이를 따르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와 달리 전체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명시적인 반대를 하지 않고 있어, 일본의 유산 등재는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또 일본이 유네스코 운영의 주요한 자금을 지원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도 이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 일본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사도 광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사진은 사도 광산 중 하나인 도유(道遊)갱 내부의 모습. ⓒ교도통신=연합뉴스

한편 외교부는 "자문기구 권고는 △등재(Inscribe) △보류(Refer) △반려(Defer) △등재불가(Not Inscribe) 등 4가지 수준으로 구별되는데, 일본 매체에서 보도된 '정보조회'(Refer)는 신청국이 보완 조치를 취하도록 (자문위가) 신청국에게 다시 회부한다(refer back to the State)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어 7일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이 사안과 관련해 일본과 협의를 해오고 있다면서 사도광산에 "강제동원된 한국인 노동자에 대한 관련 사실, 전체 역사를 사도광산 유산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라고 밝혔다.

일본이 정부의 조건을 수용하면 유네스코 등재에 찬성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이 당국자는 "일본과 협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찬성‧반대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건 패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일본이 어떻게 하냐에 따라 달려있다. 일본에 일관된 요구를 전달했고 그에 따라 찬반 여부가 달려있다"고 답했다.

일본이 이미 지난 2015년 군함도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할 때 강제노역 사실을 적시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는 상황에서, 같은 사안이 또 발생하고 있는데 이전과 유사한 수준으로 요구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지적에 이 당국자는 "이번에는 일본이 제대로 이행할 방안을 찾으려고 한다"며 "일본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아니고 이행을 하지 않은 전력이 있으니 우리도 위원회 권고가 '공수표'가 아니고 국가가 발행한 어음, 국채같은 것으로 하려는 것"이라면서도 구체적인 방안은 밝히지 않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이코모스의 권고가 참고사항이 되긴 하지만, 실제 결정은 21개 회원국 간 협의로 이뤄진다. 어느 국가도 명백하게 반대하지 않으면 등재가 가능한데, 정부는 이코모스의 부대 권고 등을 언급하며 "일본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매우 실망스러울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했다.

그는 "우리 입장이 전혀 반영되지 않으면 우리는 컨센서스(합의)를 막고 투표로 가는 것"이라며 "국가 간 문제를 대화로 해결하지 못하고 대립적 상황으로 가면 유네스코의 전반적 관행이나 분위기 등을 해치게 되고 패배하는 쪽의 손실이 크다. 누가 이길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투표로 가는 모험을 피하고 합의를 도출할지가 관건"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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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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