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한국은 다양성의 나라로 갈 수밖에 없다"

[6411 투명일기] ⑦ 섹 알 마문 다큐멘터리 감독

경희대학교와 노회찬재단은 2023년 1학기부터 200여 명의 학생이 듣는 교양강좌 '후마니타스 특강 : 6411의 목소리와 노동존중 사회'를 협력 운영하고 있습니다. 수업은 노회찬재단이 <한겨레신문>과 공동으로 진행 중인 연재 칼럼 '6411의 목소리' 필자를 매주 한 명씩 모셔 한 학기 동안 특강으로 운영합니다. '존재하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 6411 당사자들이 청년들에게 전해주는 자신의 삶과 노동 이야기를 <프레시안> 지면으로 중계합니다.

일곱번째는 섹 알 마문 다큐멘터리 감독의 이주노동자 이야기입니다. 그 자신이 이주노동자인 그는 고용허가제 하에서 사업장 이동의 권리를 갖지 못한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차별과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한국이 '다양성의 나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주노동자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결국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라고도 강조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섹 알 마문입니다. 저는 1998년에 한국에 처음 들어와 이주 노동자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2000년부터 '한국에서 이주 노동자들의 현실이 되게 안 좋고 그런 현실이 좀 바꿔봐야 된다' 그런 목소리 내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과 함께 이주 노동 인권운동을 시작했고, 2004년에 제 아내를, 한국인 아내를 만나 결혼했고, 2012년부터는 아예 공장 일을 그만두고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국사회의 차별을 이주 노동자들도 잘 알지 않을까?' 의문스럽고 '그럴 걸 알면서 왜 우리나라에 올까?'라는 질문이 생길 수도 있는데요. 그 답이 저도 궁금했어요. 제가 이 나라를 떠나지 못하는 데 대한 답이 가족이 같이 살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가족이 없고 일만 하러 온 사람들은 왜 이 나라를 떠나지 못할까요? 미등록 이주 노동자 중에는 한 번 나가면 다시 못 오니까 15년, 20년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왜 이 나라에 살까?'라는 질문에 대한 궁금증에서 2018년에 다큐멘터리를 하나 만들기도 했어요.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에서도 활동하고 있어요. 한국에서 노조를 만들면 필증을 받아야 하는데 2005년에 처음 이주노동자 노조를 만들면서 필증을 받기 위해 (노동청에) 노조 설립 신고를 했는데 필증이 나오지 않았어요.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인데도요. 왜냐면 우리 조합원 중에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있었거든요. 한국 사회에서 얘기하는 '불법 체류자'인데, 저희는 '불법 체류자'라는 단어는 쓰지 않아요. 사람 앞에 '불법'이라는 단어가 맞지도 않고, 대단한 불법을 저지른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미등록 이주노동자'라는 말을 쓰고 있어요. 거의 10년을 법 싸움을 해 2015년 대법원에서 이주노동자 노조는 합법이라는 판결이 났어요. 드디어 이주노동자도 한국에서 자기 권리를 주장하면서 일을 할 수 있게 된 거죠.

한국에 이주 노동자들이 얼마나 살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어떤 나라 출신 사람이 많고, 한국에 와 일하는 그 노동자들이 제일 힘든 점, 우리 사회에서 받는 차별, 그런 것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 세계노동절을 사흘 앞둔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메이데이 집회에 참가한 이주노동자들이 강제노동 금지와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고용허가제 도입 전 이주노동자의 역사

이주 노동자들이 언제, 어떻게 우리나라에 왜 왔을까요? 우리나라가 경제가 많이 좋아졌고, 우리가 알고 있는 3D업종에 한국인 노동자, 선주민 노동자들이 일을 안 하니까. 그래서 노동자가 부족하니까 이주 노동자들을 데려 올 수밖에 없는 거죠. 역사적인 자료를 보면, 86 아시안게임이나 88 올림픽을 하면서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경제적으로 발전된 나라고, 일손이 많이 부족하고, 그 나라에 가서 일할 수 있다고 소문이 나요. 90년 정도까지도 이주 노동자들에게, 특히 아시아,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한테는 일본이나 대만이 (이주할 나라) 1위였어요. 거기 가면 내가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한국이 타깃이 돼요. 한국도 80년대 지나면서 조그만 공장들이 많이 생기고, 공장에 일손이 부족하니까 이주노동자들이 들어와 미등록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어요.

한국 정부도 우리가 잘 사니까, 아직까지 기술적으로 좀 힘든 나라 사람들을 데려와서 일을 시키자면서 92년도에 산업연수생 제도를 만들어요. 이주노동자들이 원래 살던 나라로 돌아가서 공장을 차리든 그 나라 발전에 기여하게 하자는 취지도 있었죠. 그런 좋은 취지로 제도를 만들고, 5, 6개 정도 나라에서 이주노동자를 데려왔어요.

그렇지만 산업연수생 제도는 한마디로 현대판 노예 제도라고 볼 수 있었어요. 이주노동자에게 기술을 가르쳐주고 일하는 시스템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데려와서 바로 3D업종에 투입해 버렸거든요. 연수생으로 왔지만, 기술을 배우는 게 아니라 노동자로 10시간, 12시간 넘게 일하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연수생이니까 노동법 적용도 못 받는 상황이 돼버린 거예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말을 배우지고 못하고, 일이나 기술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상황에서 잘 모르는 기계를 다루다 보니 사고도 많이 났어요. 누구는 손가락이 날아가고, 누구는 팔이 날아가고, 누구는 기계에 끼여 죽고, 그런 사례가 많이 나왔어요. 월급 문제도 심각했어요. 아르바이트를 해보면, 학생이라면서 최저임금도 안 주려고 하고 어떻게든 돈을 뺏어 먹으려고 하는 악덕 사업주들이 지금도 있잖아요. 전에는 더 심했어요. 너네는 노동자 아니라면서 퇴직금도 안 주고, 빨리 기술을 배우려면 일을 많이 해야 한다고 야간 일을 시키면서 수당도 안 줬어요. 현장에 많이 있어야 빨리 기술을 배워 너네 나라에 돌아갈 거 아니냐면서 일하는 자리에 묶어놓기도 했어요. 결국 1995년에 이주노동자들이 명동성당 앞에서 "우리도 사람이다", "우리가 인간답게 살고 싶다." "우리를 살려줘라"고 구호를 외치면서 시위를 했죠.

연수생으로 인정받는 시간도 1~3년 정도로 짧았어요. 그것도 참 심각했어요. 왜냐면 산업연수생 제도를 통해 오는 사람들이 브로커를 통해 많이 왔거든요. 당시만 해도 브로커에게 2000만 원을 줬는데, 그러면 한국에 와서 3년 동안 2000만 원을 벌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연수생으로 일하면 한 달에 20~50만 원 벌어요. 바깥에 가면 더 많이 벌 수 있죠. 그래서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되게 많아지는 거예요.

1997년에 IMF 위기가 오고 한국경제가 안 좋아질 때 이주노동자 상황도 나빠졌어요.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공장에서 돈을 안 받고 그냥 밥만 같이 먹으면서 일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들었어요. 이주노동자들도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IMF 위기가 지나면서는 회사들이 다시 문을 열기 시작했죠. 저도 1998년에 처음 왔어요. 브로커에게 700만 원 정도 줬어요. 산업연수생 제도가 아니라 관광비자로 들어왔어요.

2002년 고용허가제가 도입되다

IMF 위기가 지나면서 다시 회사들이 문을 열기 시작했어요. 당시에 제가 처음 왔어요. 브로커를 통해서요. 한 700만 원 정도 들었어요. 산업 연수생 제도가 관광 비자로 왔죠. 저도 학생이니까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나왔다면, 비행기 돈만 있으면 올 수 있었을 거에요. 그런데 동남아시아 많은 국가에 한국 비자 발급이 그렇게 쉽게 안 돼요. 놀러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거죠.

한국에 와 미등록으로 일하다 2002년 월드컵 때 한국 정부가 고용허가제를 만들겠다고 발표했어요. 고용허가제를 통해 새로 이주노동자를 받겠다며 지금까지 한국에서 일하면서 살던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모두 돌아가라고 했어요. 2003년에 명동성당에 이주 노동자들이 100여 명 모여 1년 동안 자기 권리를 주장하면서 농성투쟁을 했어요. 우리는 여기서 일하면서 살던 사람들이다. 내쫓지 말고 비자를 주라. 당시에 모인 이주노동자들이 7~8년 이상 한국에 살던 사람이었어요. 언어도 알고, 한국 문화도 알고 기술도 어느 정도 알던 사람들이죠. 그 사람들을 보호해주지 않고 새로운 사람들을 데려오려고 계획을 세웠던 게 아직도 의문스러워요.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게 당연한 논리에요. 기술을 알고 말을 알면 자기 권리 주장을 하니까 우리는 그런 사람들 필요 없다는 거죠. 시킨대로 일을 하고 시킨대로 살아가는 사람을 원하는 거죠. 한국 정부도 당시나 현재나 마찬가지였어요. 자기 기업만 생각하고 이주노동자의 권리 보장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여튼 고용허가제는 2003년 8월에 처음으로 도입됐고, 그러면서 우리나라에는 지금까지 이주노동자들이 고용허가제라는 제도를 통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나라에 이주자가 얼마나 될까요? 결혼 이민자, 학생, 이주노동자 등을 다 합치면 인구의 5% 정도에요. 그 중 이주노동자 비율은 15만 명 정도고요. 이 안에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포함돼 있어요. 다양한 통로를 통해 한국에 이주하려는 사람들이 있지만, 고용허가제라는 제도를 통해 한국에 들어올 수 있는 나라는 네팔, 스리랑카, 파키스탄,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 미얀마 등 16개 국가에요. 주로 제조업, 농업, 건설업에 들어가고요. 배를 만드는 데도 많이 들어가 있어요.

고용허가로 한국에 이주노동자들이 들어오면 처음에 3년 동안 비자를 발급받고요. 사장이 원하면 또 1년 10개월 동안 비자를 연장할 수 있어요(5년 이상 거주 외국인에게는 영주권 신청 자격이 주어진다_편집자 주). 처음에 본국에서 한국어 시험을 통과하고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오면 계약을 맺겠다는 사업자가 있을 때까지 계속 기다리게 돼요. 만약 계약을 맺겠다는 사업주가 없다면 다시 시험을 보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해요. 한국에 오고 싶다고 그냥 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경쟁도 심해요. 아무래도 이주노동자들이 살던 나라보다는 월급도 더 주고, TV나 드라마를 통해 한국에 대한 판타지를 갖게 되기도 해요.

고용허가제 이후에도 노예 같은 삶은 계속됐다

입국해서 3년 동안 일을 하면서 회사는 3번 바꿀 수 있어요. 사업주와 노동자가 합의가 돼야 하죠. 여기에서 문제가 시작돼요.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인 자기 사업장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이주노동자에게는 박탈돼 있는 거잖아요. 만약 한국에 어떤 공장에 갔는데 먼지가 너무 심해요. 나는 그 먼지 속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고 아파요. 사람마다 몸 컨디션이 다 다르잖아요. 그런데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를 사람이 아니라 인력으로만 봐요.

보통 어떤 일을 하든 처음에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실제로 해보면 다를 수도 있고요. 안 좋은 이야기를 들어도 '설마 나한테 그런 일이 일어나겠어'라고 생각하죠. 이주노동자도 마찬가지에요. 처음에 한국에 올 때는 회사를 바꾸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3년 동안 한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사장님이 원하면 1년 10개월 또 하고, 돌아갔다 오면 또 같은 회사에서 3년 있을 수 있다. 들어올 때 이런 생각을 하고 와요.

그런데 사람 머릿속이랑 실제 상황은 다르잖아요. 한국에 와서 현장에 가 보니 '이 일을 내가 할 수 있는 거 아닌데 어떻게 하지?' 생각이 들면, 사업주한테 "나는 이 일을 할 수 없어요. 다른 공장에 가게끔 허가해주세요"라고 이야기를 하게 돼요. 그런데 사업주는 안 보내줘도 된다는 걸 알고 있어요. 벗어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가 고용허가제도 노예제도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일을 그만 둘 수도 없는데 어떻게 자기 권리를 주장하겠어요. 보통 노동자들은 왜 이번 달 월급이 월급이 덜 나왔고, 야간수당이 안 나왔냐고 항의하면서 다른 공장에서 일하겠다고 할 수 있잖아요. 이주노동자들은 그런 말을 못해요. 사업장을 바꿀 권리가 없으니까요. 매일 노동 현장에서 차별받고 여러 문제가 있는데 바뀌지 않는 것도 고용허가제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주노동자도 사람이기 때문에 일할 곳을 선택할 권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 권리를 주지 않고 있으니까요.

사업주가 원하지 않아도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옮기는 방법이 있기는 있어요. 사업주가 3개월 월급을 안 줬거나, 회사가 문을 닫았거나 하는 때죠. 성희롱을 당했을 때도 사업장을 옭길 수 있는데, 내가 그 증거자료를 확보해야 해요. 게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3개월 안에 자기가 새로 일할 사업장을 구하지 못하면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돼요. 그 3개월 동안은 임금을 체불하거나 성희롱을 당한 회사에서 일하지 않는 이상 월급을 못 받겠죠. 그런 곳에서 누가 일하고 싶겠어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남아있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래서 우리는 집회도 하고 하면서 고용노동부나 한국 정부에 요구해요. 이주노동자들에게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주면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면 정부는 대놓고 이야기해요. 이 제도는 사업주를 위한 제도다. 제도 때문에 한쪽 집단만 힘들어하고, 권리 주장도 모하고, 차별 받는다면 그 제도를 바꿔야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문제를 알면서도 바꾸지 못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권리를 박탈당해 아파도 못 쉬고, 컨테이너에서 사는 이주노동자들

이제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을 옮길 권리도 없는 취약한 상황에서 일하면서 겪는 문제를 말씀드릴게요. 아파도 쉬기가 어려워요. 이주노동자들의 의사는 병원에 있는 의가 아니라 사업주라고 농반진반으로 많이 이야기해요. 의사가 진단서나 소견서를 서줘도 사업주가 '너 아프네' 하면 아픈 사람이 되고, '꾀병 부리네' 하면 멀쩡한 사람이 되니까요. 그래도 항의를 못 해요.

20대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가 편지를 쓰고 자살을 한 일도 있었어요. 작년에만 해도 많은 이주노동자가 자살했어요. 왜 그럴까요? 이 사람들이 꿈을 갖고 여기 왔는데, 현장에 가니 자기랑 안 맞고 회사를 바꾸고 싶고, 바꿔주지 않으니까, 그런데 다른 노동자들은 직장을 옮기는 걸 보니까 '다른 사람은 하는데 나는 왜 못해?' 박탈감을 느낀 거에요. 이주노동자만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불행해지잖아요. 그래서 이런 일들이 벌어져요.

또 숙소 문제가 되게 심각해요. 이주노동자들은 대부분 공장 안에 컨테이너를 놓거나 해서 만들어진 기숙사에 살아요. 4년 전에 한 이주노동자가 겨울에 난방이 되지 않는 컨테이너에서 자다 돌아가신 일이 있었어요. 화재가 나서 돌아가신 이주노동자도 많아요. 이런 기숙사에 두면서도 사업주들은 20, 30만 원씩 임대료를 받아요. 누가 30만 원 주고 그런 곳에 살고 싶겠어요. 3D 업종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많은 일을 하고 있어요. 먼지가 심각한 곳도 많고요. 어떤 공장은 24시간 돌아가요. 그 먼지 많고 시끄러운 공장 안에 있는 방에서 사는 이주노동자도 있어요. 그런데 이주노동자들은 안 산다고 말을 못해요. 3년 지나면 계약을 누구랑 해야 해요? 사장이에요. 다른 회사에 가려고 해도 허가를 누가 해줘요? 사장이에요.

시민사회단체에서 문제제기를 많이 했죠. 숙소 문제 심각하다. 한국 정부가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에는 사람이 살게 하면 안 된다면서 숙소 사진을 받겠다는 대책을 냈어요. 그런데 사업주가 숙소를 제공하지 않겠다고 하면 사진을 안 받아요. 그런데 이주노동자들이 내일부터 당장 일해야 하는데 낯선 곳에서 살 데를 구하기가 어렵잖아요. 그러면 사장이 어떻게 하냐? '기숙사는 없는데 너 살고 싶으면 여기 컨테이너나 비닐하우스에서 살아'라고 해요. 그럼 또 거기 사는 수밖에 없어요. 한국 정부가 기계가 아닌 사람을 데려오는 거잖아요. 우리는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라고 홍보하잖아요. 그럼 이주노동자들이 사는 숙소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사업주에게 좋은 기숙사를 제공할 의무를 지게 하는 대책을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이주노동자평등연대가 연 기자회견에 참가한 이주노동자들이 기숙사 문제 해결과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국 한국은 다양성의 나라로 갈 수밖에 없다"

이주노동자의 현실이 바뀌지 않는 데는 우리 사회의 인식 문제도 있다고 생각해요. 혐오 발언도 많잖아요. 그런 말 중에 '이주노동자가 우리 일자리를 빼안긴다'는 말도 있어요. 전혀 사실이 아니에요. 우선 이주노동자로 들어오는 사람의 수가 그렇게 많지 않아요. 애초에 한국정부가 이주노동자를 데려올 때는 국내에서는 일할 사람이 없는 곳이 어딘가 고민해서 최대한 적은 수를 데려와요.

그런데도 현장에서는 선주민과 이주민 간에 싸움이 일어나요. 왜일까요? 건설 현장을 예로 들어볼게요. 한국에서는 일하려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그러니까 한국 정부가 이주노동자를 투입해요. 그럼 사업주가 어떻게 하겠어요? 최저임금만 주고 쓰겠죠. 한국인 노동자를 쓰려면 더 많은 돈을 줘야 할 거고요. 그러니까 이주노동자가 일자리를 뺏는다는 말이 나와요. 결국 한국 정부가 이주노동자를 데려와 놓고 이들의 권리 보장이나 처우에는 신경을 쓰지 않다보니, 불필요한 싸움으로 벌어진다고 볼 수 있는 거죠.

저는 한국이 결국 다양성의 나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싫더라도 이걸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국제결혼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많아요. 이 아이들도 한국인 아이들이에요. 저처럼 이주노동자로 들어와 한국에서 사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고요.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이민 때문에 많은 문제가 생겼죠. 그런 사례를 보면서 우리도 어떻게 함께 살아갈지 고민할 수밖에 없을 거에요. 그렇게 해서 20, 30년 뒤에는 지금 생기는 여러 문제가 생기지 않을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주노동자를 그냥 인력으로만 생각하면, 문제가 계속될 수도 있어요. 제가 많이 하는 이야기 중 하나는 통일 이야기에요. 통일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어떤 사람들은 한국이 경제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펴요. 싫었어요. 통일을 말할 때 내가 거기에서 경제적으로 얼마나 이득을 볼 거냐만 생각하면 통일이 돼도 함께 좋은 사회에서 살 수 없을 거에요. 이주노동자도 마찬가지에요. 기업이 돈 버는 것을 도와주려고 데려오면 안 돼요. 어떻게 하면 함께 좋은 사회에서 살지 고민해야 이민과 관련된 여러 문제를 풀 수 있을 거에요.

이주노동자를 위한 일이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라는 점도 말하고 싶어요. 우리가 언제 포기하냐면 다른 누군가를 위해 뭔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에요. 다른 누군가를 위해 행동하는 게 아니라 내가 사는 사회를 위해, 나를 위해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포기하지 않게 돼요. 조금이라도 좋은 사회가 만들어졌을 때 나도 내 몫을 제대로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그 행동이라는 것이 꼭 이주노동자 집회에 와 구호를 외치는 것만도 아니에요. 그것도 할 수 있지만 내가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도 많다고 생각해요. 지금 당장은 행동에 나서지 않더라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생각만 갖고 있으면 언제든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물론 제 말이 다 맞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어떤 부분에서 안 맞는 주장을 했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함께 고민해야 우리가 겪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제 생각을 말씀드렸습니다. 같이 한 번 이주노동자 문제를 고민해봤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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