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현대사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폭력으로 격심하게 얼룩지고 왜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념시대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하면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 이상의 고통을 후대에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굴곡진 역사를 직시하여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펼쳐 보이는 일, 그 중심에 민간인학살로 희생된 영령들의 이름을 호명하여 위령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름을 알아내어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존재하게 하는 일입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잊힐 위기에 처한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기억하고 그 이름에 올바른 위상을 부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에서는 시인들과 함께 이러한 의미가 담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 연재는 문화법인 목선재에서 후원합니다) 편집자
그해 여강은 붉게 흘렀다
여주 여강에는 양을 키우던 양섬이 있다.
제비여울로 돌아오는 돛단배 아름다워 여주팔경이 되었지만
강 비늘 출렁일 때마다
6.25 전쟁 중에 죽은 억울한 영혼들이 서걱서걱 억새로 흔들린다.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 후 이듬해 2월까지
여주 골골은 온통 붉은 소문으로 가득했다.
능서 어디쯤에서는 원수가 된 두 집안이 서로 밀고해 쑥대밭이 되었고
가남 태평리 다리 부근에서는 남편에게 새참 주러 가던 아낙이
미 공군기 폭격으로 죽었고
옆 마을 신해리는 할아버지 장죽 담뱃불 때문에 폭격을 맞았다.
인민군 총부리가 무서워 사람들 불러 모은 이장은
부역했다는 이유로 국군한테 온 가족이 몰살당하고
인민위원장이 살던 마을에서 잡혀온 사람들은
빨갱이마을에 살았으니 분홍물이라도 들었을 것이라며 죽임 당했다.
6개월 인민군 치하에서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은
목숨 부지했다고 빨갱이몰이로 마구잡이 생죽음 당했다.
가남면 태평리 공동묘지, 가남지서 뒷산 박산고개
금사면 옹기정 뒷산
흥천면 계신리 강변, 복대리 공동묘지
능서면 왕대리산, 매류리 고령토 구덩이
대신면 보통리 강변, 장풍리 골짜기
북내면 버시고개 골짜기, 대왕사 계곡
여주읍 여주향교 뒷동산과 얼음창고, 하리 강변
점동면 봉골산과 가시락골
인민군에게서 해방됐다고 좋아했던 사람들을
국군들은 무자비하게 죽이고 그 시체들을 양섬으로 실어 날랐다.
이쪽도 저쪽도 믿을 수 없이 그저 죽어야 했던 사람들은
제비여울 돛단배처럼 여강을 따라 흐르고 흘러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죽음의 바다로 떠났다.
풍문에는 3천명도 넘게 학살되었다 하고
학살이 자행되지 않은 마을은 없다고 했다.
여강은 한 번도 멈춘 적 없지만
흐르고 흘러 한 번도 같은 강인 적 없었지만
그해 여강은 유독 붉게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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