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제재 구속력 강조 한국, 가자지구 휴전 결의안은 구속력 없다?

황준국 유엔대사 "결의안 법적 구속력 없어"…외교부 "국제사회 합의 반영, 성실히 이행돼야" 해명

황준국 주유엔 한국대사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전쟁이 발발한 이후 반 년 만에 채택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안에 대해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결의안에 기권한 미국이 안보리 회의에서 이와 유사한 입장을 표했는데,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민간인 사망자가 3만 명을 넘어가는 와중에도 미국 입장만을 따라가겠다는 정부의 태도에 대한 비판과 함께, 북한에 대한 안보리 결의안의 구속력을 강조해야 하는 한국 정부 입장을 고려했을 때 스스로 외교적 입지를 좁히는 발언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3월 25일(현지시각) 안보리는 한국을 포함한 비상임이사국 10개국이 내놓은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결의안을 전체 이사국 15개국 중 14개국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공격 이후 이날까지 휴전과 관련한 결의안을 도출하지 못한 안보리는 전쟁 발발 이후 약 반 년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즉각적인 휴전'(immediate ceasefire)을 '촉구'(call for)하는 내용을 담은 결의안을 내놨다.

안보리의 상임이사국이자 거부권을 가지고 있는 미국은 이 결의안에 반대하지 않고 기권했다. 앞서 미국은 유엔 안보리의 휴전 결의안을 번번이 거부한 바 있다. 린다 토마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이날 결의안에 미국이 요청한 사항이 포함되어 있지만 "모든 것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찬성표를 던질 수 없었다면서 "이 구속력 없는 결의안의 중요한 목표 중 일부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사회 관계망 서비스인 'X'(이전 트위터)의 본인 계정에 "이 결의는 실행되어야 한다. 실패는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며 당사자들 및 국제사회의 결의안 이행을 강조했다.

안보리의 비상임이사국들 역시 구속력을 가진다는 입장을 내놨다. 회의 종료 이후 10개 비상임이사국들이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페드로 코미사리오 모잠비크 대사는 모두발언을 통해 결의안 통과의 취지와 의미를 언급하며 결의안 준수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코미사리오 대사의 발언이 끝나자 한 기자는 그린필드 미국 대사가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말했다면서 이에 대한 입장이 무엇인지 물었고, 코미사리오 대사는 한 단어 씩 매우 천천히 "모든 안보리 결의는 구속력이 있다. 그리고 모든 회원국은 그러한 결의를 이행할 의무가 있다" (All security council resolutions are binding, and every member states are under the obligation to implement those resolutions.)라고 언급해 해당 결의안의 구속력을 강조했다.

그런데 이후 황준국 주유엔 한국대사가 발언대로 나서서 "아마도 법적으로 보면 이번 결의는 구속력이 없을 수 있다. 이 결의에는 '결정한다(decide)'라는 표현이 사용되지 않았고 유엔헌장 7장을 인용하지 않았다"며 미국 대사와 유사한 입장을 내놨다. 그는 "도덕적으로는 국제사회의 합의를 반영한 것이므로 이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 3월 25일(현지시각)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전쟁이 발발한 이후 반 년만에 처음으로 휴전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가운데, 황준국(가운데) 주유엔 한국대사가 이 결의안에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유엔TV갈무리

황 대사의 이같은 발언을 두고 결의안의 구속력에 대한 '이중잣대'를 적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이 북한을 제재하는 안보리 결의안의 준수를 강조하면서 이번 결의안에 대해서는 특정 단어가 없다는 이유로 법적 구속력을 부정하면, 구속력 여부에 대한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28일(현지시각) 대북 제재 이행을 감시하는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 임기 연장이 러시아의 거부권으로 부결되고 위원회 활동이 15년 만에 종료되면서, 대북 제재 유지에 상당한 빈틈이 생길 것이 우려되는 가운데 황 대사의 발언이 나왔다는 것도 문제다.

위원회 패널이 종료되면서 정부는 러시아를 포함해 다른 국가들에게 안보리 결의안을 통해 도출된 대북 제재를 준수하라고 설득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그런데 대북 제재와 같은 형식인 다른 안보리 결의안에 대해 구속력이 없다고 하면, 결의안을 지키라는 한국 정부의 요구는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외교부는 황 대사의 발언이 결의안을 성실히 이행돼야 한다는 뜻이었다고 해명했다. 9일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유엔 헌장에 따라 안보리는 회원국에 대해 구속력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라며 "유엔헌장 25조에 따라 회원국은 안보리의 결정을 이행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가자지구의 휴전을 촉구한 첫 번째 안보리 결의 2728호는 휴전에 대한 안보리의 강력한 촉구를 담은 것으로 국제사회 합의를 반영한 것인만큼 성실히 이행 돼야 한다"며 "유엔대사의 언급도 그러한 취지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황 대사가 안보리 결의 문안에 '결정한다'(decide)는 단어가 없기 때문에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밝힌 것에 대해 이 당국자는 "(황 대사의) 전체 언급을 보면 (결의안이) 국제사회의 합의를 반영한 것이므로 이행돼야 한다는 점도 말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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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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