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강력한 대북 제재", 그 참담한 실패를 말한다

[정욱식 칼럼] 평화의 재발명 (12) 대북 제재의 종말

역사상 가장 강력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가 역사상 가장 실패한 사례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비난 대북 제재 이행을 감시하는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이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15년 동안의 활동이 종료된 것을 두고 하는 말 만은 아니다. 북한의 1차 핵실험으로 대북 제재가 본격화된 2006년 이후의 상황을 종합해보면, 제재 만능주의는 실패를 예고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북 제재의 목적과 현재의 상황을 비교해보면 이러한 진단이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재의 1차적인 목적은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개발과 증강을 차단하는 데에 있다. 그런데 이들 무기 프로그램과 관련된 북한의 능력은 비약적으로 성장해왔다. 왜 그럴까?

유엔 안보리 차원의 제재와 한미일 등의 독자 제재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생산에 필요한 부품과 기술, 그리고 외화 수입 차단에 초점이 맞춰져왔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북한의 자체적인 역량을 과소평가한 것이었다. 북한은 우라늄 광산부터 농축과 재처리, 그리고 핵무기 제조와 실험에 이르기까지 '핵무기 주기'를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탄도미사일도 1990년대 중반까지는 주로 소련제 미사일을 역설계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가 그 이후로는 자체적인 개발 능력 확보에 주력해왔다.

또 대북 제재는 북한의 경제난을 가중시켜 '핵무장이냐, 체제 붕괴냐'는 양자택일을 북한 정권에 강제하겠다는 취지도 품고 있었다. 실제로 북한은 경제 제재가 강력해지면서 비명도 질렀고, 규탄도 퍼부었으며, 때론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도 했었다.

하지만 2019년이 지나면서 김정은 정권은 제재 완화와 해제를 더 이상 요구하지 않고 '정면돌파'하겠다고 선언했다. 주목할 점은 북한이 제재와 관련해 "좋은 기회"라는 표현을 상반된 의미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이는 북한의 셈법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잘 보여주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 직후에 "더 이상 좋은 기회는 없을 것"이라는 취지의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여기서 "좋은 기회"는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민생과 관련된 제재를 풀어주면 영변 핵시설의 완전한 폐기와 장거리 로켓 발사 중단에 응할 수 있다'고 제안한 것을 뜻한다.

트럼프가 이를 거부하면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었는데, 이후에도 북한은 이 협상안이 미국에 "좋은 기회"라며 셈법을 달리해달라고 촉구했었다. 하지만 미국은 오히려 제재를 강화했다. 북한의 약점을 잡았다고 판단해 더 강하게 밀어붙인 것이다.

그러자 북한은 제재에 굴복하는 것은 "나라의 존엄"을 파는 것이라며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그리고 2021년 1월 8차 노동당 대회에선 제재를 자력갱생과 자급자족을 실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겠다는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선언했다. 최근에는 "기적"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경제발전 성과와 전망에 강한 자신감을 피력하고 있다. 제재로 북한의 경제난을 가중시켜 비핵화를 압박하겠다는 제재의 목적이 실패했다는 또 하나의 근거이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제재의 최후의 목적, 즉 제재를 협상 의제로 삼아 북한의 셈법을 바꿔보겠다는 접근도 만시지탄(晩時之歎)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해 지난 3월 정박 미국 대북고위관리 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는 북한과 제재 문제를 얘기해볼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바이든 행정부를 포함한 미국의 역대 고위관료가 북한을 대화로 유도하기 위해 제재가 의제가 될 수 있다고 선제적으로 밝힌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그런데도 북한은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렇듯 대북 제재의 성적표는 참담하다. 북러 관계의 밀착으로 대북 제재의 구멍이 커지고 있다는 우려로는 이러한 실패를 만회할 수 없다. 지정학적 환경의 대전환으로 러시아가 대북 제재 체제로 복귀할 가능성도 거의 없고, 설사 그렇더라도 달라진 북한의 셈법과 강해진 북한의 자체 역량을 바꿔내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제재 자체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어떤 나라가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한다고 해서 무고한 피해를 양산할 수 있는 경제 제재를 가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제재가 마치 전쟁의 대안인 것처럼 간주하면서 제재에 중독되어온 이유가 실은 협상을 꺼려했기 때문은 아닌가? 제재 부과의 기준과 근거는 공평하고, '내로남불'은 없는가? 무엇보다도 제재는 실효성이 있는가?

대북 제재와 관련해서도 실효적인 접근을 고민할 때이다. 한반도형 군비통제와 제재 완화의 접목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한반도형 군비통제는 비핵화는 '무언의 궁극적인 목표'로 남겨두면서 우선은 상호 위협 감소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뜻한다.

이는 비핵화를 말할수록 비핵화에서 멀어지는 현실을 직시하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의 동결과 감축, 이에 대한 군사적 상응조치로 세계 최대 규모 한미연합훈련 축소 및 미국의 전략 자산 전개 중단, 그리고 한미일의 군비증강 자제 등을 추진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군비통제 협상이 탄력을 받으면 민생과 관련된 대북 제재를 완화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제재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이는 제재가 목적을 배반하면 그 적용에 있어서 유연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안보리의 대북 결의에도 북한의 긍정적인 행동에 따라 제재를 변경·유예·완화·해제한다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북한이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를 중단하고 협상에 나섰을 때에도 이러한 내용은 제대로 적용된 적이 없다. 대북 제재가 유지·강화되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군비통제 성과에 따라 제재를 완화하는 접근이 필요한 때이다.

▲ 지난 2017년 9월 11일(현지 시각)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새로운 대북 제재 결의안 2375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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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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