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기시다, 국무위원장 만나고 싶다 밝혀"…기시다 "정상회담 중요"

납치자 문제 거론하지 말라는 북한, 납치자 문제 해결 위해 만나겠다는 일본…접점 찾을 수 있을까?

김여정 북한 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이 일본 측으로부터 정상회담 요청이 있었다며, 납치자 문제를 거론하지 말라는 입장을 내놨다. 일본이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북일 간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접점 찾기에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25일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김 부부장이 본인 명의의 담화에서 "최근에도 기시다 (후미오) 수상은 또다른 경로를 통해 가능한 빠른 시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국무위원장을 직접 만나고 싶다는 의향을 우리에게 전해왔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김 부부장은 "일전에도 말했듯이 조일(북일) 관계 개선의 새 출로를 열어나가는 데서 중요한 것은 일본의 실제적인 정치적 결단"이라며 "단순히 수뇌회담에 나서려는 마음가짐만으로는 불신과 오해로 가득찬 두 나라 관계를 풀 수 없다는 것이 지나온 조일(북일)관계 력사가 주는 교훈"이고 말했다.

그는 "일본이 지금처럼 우리의 주권적 권리행사에 간섭하려 들고 더이상 해결할 것도, 알 재간도 없는 납치 문제에 의연 골몰한다면 수상의 구상이 인기 끌기에 불과하다는 평판을 피할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해 일본이 납치자 문제를 정상회담에서 거론하거나 이를 조건으로 내세울 경우 회담이 어렵다는 점을 시사했다.

김 부부장은 "진심으로 일본이 두 나라 관계를 풀고 우리의 가까운 이웃이 되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면 자국의 전반 이익에 부합되는 전략적 선택을 할 정치적 용단을 내리는 것이 필요하다"며 "공정하고 평등한 자세에서 우리의 주권적 권리와 안전 이익을 존중한다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자위력 강화는 그 어떤 경우에도 일본에 안보위협으로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시다) 수상은 우리 정부의 명백한 립장을 알고 말을 해도 해야 할 것이다. 자기가 원한다고 하여, 결심을 하였다고 하여 우리 국가의 지도부를 만날 수 있고 또 만나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수상은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부부장의 이날 담화 발표에 대해 기사다 총리는 김 위원장에게 정상회담을 요청했는지에 대한 구체적 사실은 확인하지 않으면서도, 북한과 정상회담이 중요하다고 밝혀 회담 성사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뒀다.

일본 공영방송 NHK는 이날 참의원(상원) 예산위원회에서 해당 보도에 대한 야당 의원의 질의에 대해 기시다 총리가 "아직 보도에 대해 알고 있지 않다"며 "납치 문제 등 여러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상회담이 중요하다. 기존에 말한대로 북한에 대한 다양한 압박을 해오고 있다"라고 답했다고 보도했다.

북일 간 정상회담 분위기는 지난 1월 5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기시다 총리에게 '기시다 후미오 각하'라는 표현을 쓰며 노토반도 지진에 대한 위문 전문을 보내면서 시작됐다. 당시 당 기관지 <로동신문>은 6일 해당 전문을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 추모식에서 발생한 테러와 관련해 김 위원장이 이란에 보낸 위로 전문과 2면에 나란히 게재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의 전문에 대해 2월 5일 중의원 예산의원회에 출석한 기시다 총리는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을 위한 북일 협상을 진행한다는 관점에서 김정은의 의도를 신중하게 분석할 것"이라며 "이 메시지(김정은 위로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적확한 대응이 요구된다"고 답했다. 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는 기존의 원론적인 답변보다는 구체적인 대응 방식이 제시된 셈이다.

이어 2월 15일 김여정 부부장은 본인 명의의 담화에서 "기시다 수상의 발언과 관련하여 일본 언론들이 조일(북일)관계 문제에 대해 종전과는 다른 립장(입장)을 표시한 것으로 된다고 평가한데 대해서도 류의(유의)한다"며 화답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이후 2월 16일 일본 <지지통신>은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김여정 부부장이 담화에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방북을 언급한 것과 관련해 유의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해 접촉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것으로 해석됐다.

김 부부장의 담화가 나온 2월 15일 이후 한 달이 넘어가는 동안 북한에서 일본에 대한 비난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북한 매체에는 매년 3.1절 마다 일본이 과거사를 반성해야 한다는 내용의 기사도 게재됐으나, 올해는 이러한 기사도 나오지 않았다.

미국이 북일 간 접촉에 긍정적 메시지를 보냈다는 점 역시 정상회담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2월 15일(현지시각) 정박 대북고위관리는 일부 외신들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는 북한의 모든 외교 노력을 지지한다"며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한 일본의 노력을 지지한다"고 말했다고 <중앙일보>가 보도했다.

이어 2월 20일(현지시각) 사브리나 싱 미 국방부 부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일본 정부가 북한과 정상회담을 진행하려는 외교적 접근을 지지하냐는 질문에 "우리는 북한에 대한 외교 활동을 지지한다. 그들이 원한다면 외교적 접근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며 "우리는 그 지역의 안정을 보길 원한다. 그것(외교적 접근)이 대화로 이어진다면 확실히 환영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양측의 접촉 분위기는 조성됐으나 실제 정상회담까지 이어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날 김 부부장이 납치 문제를 거론하지 말라고 밝힌 것을 보더라도 양측이 회담 개최를 위한 합의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난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납치 문제 뿐만 아니라 식민지 배상 책임과 관련한 사안도 회담 성사의 큰 장애물이다. 북한이 납치자 문제 해결에 대한 대가 및 식민 지배 배상을 이유로 일본에 상당한 지원이나 경제협력 사업을 요구할 경우, 기시다 내각과 자민당, 일본 사회가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높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양측이 이미 실무접촉을 시작했고, 접촉이 잘 풀리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담화를 내놓은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하고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현 단계 북한은 수면하에 비밀 접촉과 수면 위의 공개 압박이라는 이중 전략을 펼치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정치적 결단 등 공개 압박전략은 아직 실무접촉에서 의미있는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북일 양측이 접촉에서 납치자 문제와 배상 책임 사안을 연계해 의견을 나눴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일본이 원하는 납치자 문제의 해결 수준과 북한이 원하는 배상 액수를 두고 줄다리기를 벌이던 와중에, 북한의 의도대로 잘 풀리지 않으면서 김 부부장이 공개적인 담화를 발표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로동신문=뉴스1(왼쪽), AP=연합뉴스(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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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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